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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쑥, 보리뱅이, 씀바귀, 고들빼기, 각시취, 청가시나물 등이 얽혀서 자라고 있는 모습.
▲ 나물로 뒤범벅인 풀밭. 풀밭에서 쑥, 보리뱅이, 씀바귀, 고들빼기, 각시취, 청가시나물 등이 얽혀서 자라고 있는 모습.
ⓒ 이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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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에 이 무렵은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와 밀 같은 새 곡식은 아직 수확하지 않아 많은 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하는 보릿고개가 한창인 시기였다. 오죽하면, "사월(양력 5월) 없는 곳에 가서 살면 좋겠다"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그래서 많은 이들이 초근목피를 해야 했다. 평야지대보다는 산골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실제로 산기슭이나 풀밭에서 자라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띠도 이 무렵부터 6월까지 가느다란 기둥 모양의 원추꽃차례로 꽃을 피우는데 '삘기'라고 불리는 어린 꽃 이삭은 단맛이 있어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또는 놀이로 많이 뽑아서 먹었다.

하지만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이 무렵에는 풀이 자랄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온갖 나물들이 지천으로 자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풀잎이나 풀뿌리라도 캐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개떡 보다 못한 / 송구떡 / 보릿고개 넘어 갈 때 /.../ 깜둥 보리밥에 / 된장 간장 / 나물반찬 진수성찬" - 김내식, <산나물 들나물> 중에서

이 무렵 들이나 산에 나가면 거의 아무데서나 어렵지 않게 다양한 나물들을 쉽게 채취할 수 있다. 남녘에서는 춘분 이전부터도 일부 봄나물의 채취가 가능하나 중부지방에서는 역시 춘분 어간부터 채취가 가능하지만 아무데서나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때는 역시 4월 하순부터 5월까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름이 되면 나물이 쇠어서 질기고 쓴맛과 독성이 강해져서 먹기에 적당하지 않다. 냉이, 달래, 쑥, 청보리, 민들레, 질경이, 쑥부쟁이, 꽃다지, 광대나물, 돌나물, 돌미나리, 씀바귀, 고들빼기, 원추리 등의 들나물과, 이들 들나물보다는 좀 더 늦게 나는 참나물, 당귀, 더덕, 고사리, 고비, 참취와 곰취를 비롯한 취나물, 삽주, 두릅 등의 산나물이 흔히 먹는 봄나물이다. 그러나 이밖에도 먹을 수 있는 나물은 무수히 많다.

이런 나물들은 생으로는 쌈이나 생채로 먹고, 삶아서는 무침이나 국으로 먹고, 곡식가루와 섞어서 떡이나 버무리나 전 등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이처럼 나물들은 과거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주린 배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귀중한 먹거리로 구황식품이었고, 오늘날은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과 무기질을 함유해 겨우내 위축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춘곤증을 달래고 미각을 돋우어 주는 훌륭한 건강식품이다.

우리는 풀이나 나무의 어린 순이 더 없이 좋은 건강식품인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알아낸 우리 선조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봄나물은 "우리 몸에 좋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식품 /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는 효능을 갖춘 제철음식 / 몸의 피로 풀어줄 춘곤증에도 효과 있다는 나물"(손병흥, <봄나물> 중에서)인 것이다.

봄에는 특히 늦봄에는 이렇게 나물이 지천이고 과거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그것이라도 캐서 먹어야 했기에 나물 타령도 생겼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먹을 것이 없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나물을 캐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며 불렀을 터지만 그 타령은 너무도 익살스럽다. 지방에 따라 내용이나 이름이 좀 다른 여러 형태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나물타령을 소개하기로 한다.

"한 푼 두 푼 돈나물, 줄까 말까 달래나물, 입 맞추어 쪽나물, 잔칫집에 취나물, 시집살이 씀바귀, 안주나 보게 도라지, 동동 말아 고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이 나물 타령에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보릿고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우리 민족의 해학성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돋보인다.

남녘인 부산의 봄나물축제는 춘분 어간에 열린다. 하지만 북쪽의 산지에서는 나물의 성장이 좀 늦기에 강원도, 경상북도, 경기도 등의 산촌에서 열리는 산나물축제는 대체로 5월 초순이나 중순에 열린다. 경기도 양구읍의 곰취 축제는 대체로 5월 15일 전후로 열린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농촌체험마을인 '양평 생태산촌마을'에서는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까지 산나물채취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일부 봄나물들을 온실에서 작물로 재배하기 때문에 제철이 아니라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제철에 자연에서 난 것과 그 향과 맛을 비교할 수는 없다. 봄에 돋아나는 새순들은 대체로 식용이 가능하나 독성이 좀 있거나 지나치게 쓴 것은 우리거나 삶아서 독성을 제거하고 먹는 것이 좋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나물 축제라도 한 번 가서 나물도 공부하고 자연도 한 번 느껴보는 것은 값진 일일 것이다.


태그:#나물, #구황식품, #건강식품, #나물타령,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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