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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목적으로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 10년을 맞이한 날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장애인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합니다. 해당 기관들은 장애인복지법 제25조 및 동법 시행령 제16조에 의한 인식개선교육 의무 대상이며, 진행 결과를 30일 이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애인식개선교육 안에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장애체험'입니다.

'장애체험'이란 비장애인들이 안대를 착용하고 지팡이를 이용하여 시각장애를 경험하게 하거나 목발 혹은 휠체어를 타고 보행해보도록 하여 지체장애를 경험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적 불편을 이해하고 사회적 상황이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아보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장애체험'을 두고 "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합니다.

대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측은 신체적 불편함만을 강조하여 장애인을 무능하고 불쌍한 존재로 낙인찍을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도움이 된다는 측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확대할 수 있고, 사회를 장애 친화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개인이 타인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서민체험을 가식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장애체험'에 대해서는 장애인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장애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사람'이 아니라, '불편'만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박탈된 존재들이 아니라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배려해주어야 할 존재로 격하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체험'이라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효과도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았고, 타인을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간접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사회적으로 권리가 침해된 존재들의 삶을 교재로 삼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빈민체험', '노동체험'은 봤지만, 사회적으로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존재들을 체험해보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재벌체험' 같은 것 말입니다. 섣부른 체험은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행복의 기준점으로 삼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36년을 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단 하루 '장애체험'을 통해 36년간의 차별과 불편을 이해하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나를 체험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의 고통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민호시민기자는 대구경북15771330장애인차별상담전화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태그:#장애인, #장애체험, #장애인식개선교육, #장애인권, #장애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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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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