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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겠단 건 다시 돌아오겠단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굳이 여행까지 가서 글을 쓰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 여행기의 의미는 어느 졸업예정자, 취준생, 여자, 집순이, '혼행러', 그리고 채식주의자가 먹방부터 감성까지 여행에서의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아 돌아오겠단 거창한 선언에 있다.​​​​​​ -기자말

3월 중순, 인도 남부의 여름은 이미 시작됐다. 온몸을 무기력하게 하는 습한 더위 때문이었는지, 스리랑카를 떠나 인도로 온 뒤로 지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관광지를 보러 다니지도, 유명 맛집을 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숙소에만 박혀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로운 나라에 와 잠시 적응하며 쉬기 위함이라 위안했지만 사실 힘이 나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이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는 것과 무기력하게 지내는 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빨리 인도를, 아니 인도 남부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여행 책자를 펼쳤다. '인도 체험 17선'이란 첫 목차가 눈에 띄었다. 그 중, 상상했던 인도와는 다른 모습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수로였다. 하필 이 덥고 정 안 가는 남부라니. 하지만 사진으로 본 수로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이것만 보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말만 쉬운 일이었다. 케랄라 수로가 위치한 인도의 남서쪽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개고생'이었다. 17시간 기차를 타고 내리자 그사이 벌레에 물렸는지 다리부터 등까지 온몸이 두드러기로 부어올랐다.

먼지가 쌓인 선풍기 바람으로 목은 따끔거렸고, 온몸이 수축한 듯했다. 허름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또 기차와 택시를 타야 했다. 물론 언제나 있는 대기 시간과 지연은 덤이다. 이쯤 되니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보겠다고 이 고생인가' 싶으며 후회가 됐다.

드디어 수로 유람 당일. 다시 수 시간을 기다린 후 드디어 '코타얌'에서 '알레피'까지 가는 2시간 30분짜리 공영 페리가 출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거구나. 이걸 보려고 내가 3일에 걸쳐 여기까지, 인도의 끝자락까지 왔구나.'

쥐라기 공원부터 클레멘타인까지
 
인도 남서쪽의 '케랄라 수로'
 인도 남서쪽의 "케랄라 수로"
ⓒ 조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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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녹조라떼'와는 전혀 다른 녹색 수로는 21세기의 지구 어디쯤이 아닌 영화 <쥐라기 공원>을 떠오르게 했다. 멀리 보이는 열대목과 그 앞으로 흐르는 녹빛의 수로, 그 뒤로 보이는 평원은 이국적인 공간보다도 이질적인 시대에 가까웠다.

열대목의 하나가 마치 초식공룡 브로키오사우르스로 보이기까지 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테다. 물과 나무, 평원과 하늘의 조화에 '세계 10대 낙원'이라는 평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원보다는 '지상의 평화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리긴 하지만 말이다.
 
인도 남서쪽의 '케랄라 수로'
 인도 남서쪽의 "케랄라 수로"
ⓒ 조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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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가 마을과 가까워지면 집이 한두 채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언뜻언뜻 빨간 지붕, 노란 지붕이 보였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어린 시절, 피아노학원에서 배웠던 동요가 스물넷의 내게서 다시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햇볕에 물이 반짝였다. 이러한 때, 가만히 눈을 감고 배 기둥에 기대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은 때로 더없이 큰 위로가 되곤 한다.

배에서 내려 수로를 끼고 산책을 하는 것도 작은 기쁨이었다. 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부레옥잠으로 가득한 수로는, 이곳이 풀밭인지 물가인지 헷갈리게 했다. 마침 부레옥잠이 꽃을 피우는 시기인지 간간이 분홍 꽃들이 작게 펴고 있었다. 때문에 분홍 초록의 물꽃밭을 옆에 두고 거니는 듯 그 풍경이 너무나도 예쁘고 평화로웠다.

나는 이제야 인도의 수백가지 얼굴 중 하나를 본 것 같았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작은 수로 마을의 활기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인도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미 유명한 북부만이 아닌 남부로도 눈을 돌려 보는 것이 좋겠다. '쥐라기 공원'부터 '클레멘타인'까지,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태그:#인도, #인도여행, #수로유람, #인도남부, #케랄라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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