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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제88주기 추모식에서 명노승 회장이 추모식사를 했다.
▲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제88주기 추모식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제88주기 추모식에서 명노승 회장이 추모식사를 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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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서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88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이번 추모식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관계자와 유족만 자리에 참석했다. 추모식은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명노승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은 추모사에서 "의사님의 숭고한 애국정신은 우리가 마주할 어떠한 도전에도 힘을 모아 헤쳐 나갈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윤봉길 의사님께서 염원했던 나라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또한 명 회장은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는 일본의 침공으로 굴욕을 겪던 중국 장개석 주석을 감동시켜 당시 고립무원의 폐쇄위기에 있던 상해임시정부를 구했다"며 "의사님을 5년 동안 가르친 성주록 선생은 '하늘이 쓸 사람이 있으면 땅이 응하여 태어나게 하는 법'이라 말하셨다"고 전했다.

윤봉길 의사는 조국 독립의 길을 찾던 중,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의열투쟁에 참여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에 일본군의 상해 점령 경축식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렸다. 그는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했고, 파편은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요시노리 일본 육군 대신과 가와바타 사다지 일본 거류민 단장은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 시게미쓰 공사 등 일본군 주요 참모들이 중상을 입었다.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거행한 윤 의사의 의거였다.

윤 의사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됐다.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고문을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25세 나이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윤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태그:#매헌윤봉길,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순국,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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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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