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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변함없이 중고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영어 사교육 시장에서 학원생들에게 영어공부와 봉사활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고 학생봉사활동 동아리를 만든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처음에 시작했던 '군산관광문화유적지' 영어 홍보 동영상 제작은 학생들 작품치곤 꽤나 창의적인 활동으로 평가받았다. 지역을 알리는 홍보영상물 제작을 통해, 새로운 봉사활동의 영역을 만들었고, 영어학습도구를 실생활에 접목시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냈다. 

이 활동을 지속하니, 학생들이 직접 개발하는 동아리 활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학교에서 주어진 봉사활동은 교실 청소, 쓰레기 줍기, 도서실 책 정리, 우유급식 나르기 등 대체로 정해진 틀 안에서 하는 수동적인 활동들이 많았다. 중고등 학교에서 지정한 봉사시간(연간 18시간 이상)을 채우기에는 학생들의 활동이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흥미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또한 대입에서 교과 외 활동으로 봉사활동을 주요 평가 사항으로 한다고 하니 당연히 학교 밖 동아리 활동의 단체와 영역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동아리의 가장 주된 목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학생들이 만든 봉사활동이 반드시 지역민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둘째는 봉사활동으로 인해 자신의 진로나 재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셋째는 대입 진학을 위해 시간 채우기 봉사활동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의 진정한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해마다 학생들은 신학기 3월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자원봉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도 듣고, 한 해 동안 본인들이 활동할 영역에 대한 사전 지식도 공부한다.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제2조(기본 방향)에 나와 있는 자원봉사의 원칙 -무보수성, 자발성, 공익성, 비영리성, 비정파성, 비종파성-도 소리 내어 외쳐본다. [시행 2017. 7.27.]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이런 행사는 모두 생략했다. 다만 올해도 접촉이 적은 소집단활동(중고책 기부장터와 초등생과 만나는 스토리텔러, 내 동네 플라스틱 줄이기)만 한다.

5월 첫날, 중학생 친구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독후활동을 나누는 스토리텔링팀의 활동 현장에 나갔다. 오늘 활동인, '어버이날을 맞아 손편지 쓰기'를 설명하니, 중학생 멘토들은 어린이 멘티의 손편지 작성을 도와주었다. 요즘에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평소에 본인들도 손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짝꿍이 만드는 손편지를 더 예쁘게, 정성스럽게 만들도록 설명하고 이끌어주는 모습이 가상했다.
 
정산(중1)학생이 짝꿍인 김재연(유치7세)의 손편지를 도왔어요
▲ 스토리텔링팀의 손편지 정산(중1)학생이 짝꿍인 김재연(유치7세)의 손편지를 도왔어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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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는 이름이 뭐야? 몇 학년이야? 난 글씨를 잘 못 써. 어떻게 하지?"
"중학교 1학년이야.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내가 글씨를 쓰면 네가 위에다가 따라 쓰면 돼. 아주 쉬운데 해볼까?"


봉사자인 학생(군산산북중 1 정산)과 어린이(유치원 7세, 김재연)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이가 요청한 '엄마 운동 많이 하세요. 아빠 쉬는 날 같이 놀아요'라는 글씨를 봉사자가 썼다. 어린이는 글씨 위에 따라 쓰는 동안 봉사자 형은 글씨를 따라 함께 읽어주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이 동아리의 스토리텔링팀을 알게 되었어요. 외동아들인 데다 제가 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아서 항상 미안했는데, 이렇게 형을 만나 책 활동 시간도 갖고, 친절한 형아와 얘기하는 시간이 정말 고마워요.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 만나는 것이 아쉽네요."

어린이의 엄마는 동아리 학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진정으로 우리 학생들이 지역민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이어서 못내 기특했다.

올해 초, 고1이 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질문 중 봉사활동에 대하여 상담을 했었다. "2024 대입(현 고1)부터 봉사활동을 축소 반영하고, 특히 학교 밖 봉사활동실적은 기재할 수 없나는데, 동아리 활동을 해야 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얘들아, 학교 봉사활동만 인정해준다고 하니 너희들 생각이 헷갈리기도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하면 어떨까? 당연히 학교 활동을 먼저 하고, 우리 활동은 시간이 되는 범위에서 단, 규칙적으로 하자. 너희들을 기다리는 어린이 친구들도 있고. 선택은 언제나 너희들이 정하는 거야."

정부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른 조치로 학교가 아닌 개인봉사활동실적은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하니 어느 학생 어느 부모가 질문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동아리에 참여하며 평소에 나의 소신을 잘 알고 있는 학생, 학부모들조차도 이럴진대 봉사활동을 단지 시간 채우기로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봉사활동이란 무엇일까. 정말로 '자신과 타인을 위해 스스로 원해서 받드는 행위'로 생각될까.

몇 년 전 청소년 자원봉사자의 수가 세계 1위라는 소리가 있었다. 대입에 봉사활동을 평가한다니, 학생들은 대입 지상주의를 선포한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을 잘 수행했다. 그러다 보니, 봉사활동마저도 부익부 빈익빈의 그래프가 그려졌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래서 교육정책은 이 오점을 채우려고 별의별 세부사항을 지적하며 바꾸고 또 바꿨다. 그러니 어찌 학생들이 봉사활동의 진정한 가치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겠는가.

올해 봉사단에 참여한 학생들은 40명이다. 고등학생은 소수인데 그나마 이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계속 활동했던 터라 대학입시 적용 여부를 떠나 꾸준히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동아리 운영의 목표는 대입에 있을 수 없다. 남을 위한 봉사라는 거대한 표어도 필요 없다. 단지,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의미로운 활동을 즐겁게 실천할 뿐이다.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의 눈과 미소를 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를 향해 자신들의 손길과 재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글씨를 모르는 유치부 어린이에게 어떻게 하면 편지를 쓰게 할까를 생각하고 도와주었던 중1 학생이 자신이 한 봉사활동이 대학입시 측정 도구가 될까 말까를 고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얘들아 오늘도 고마워. 어린이 친구들을 부모님께 잘 데려다주고 자기 주변의 쓰레기 깨끗하게 치워줘서. 다음 달에는 동시낭송을 할 거야. 너희들도 어렸을 때 읽었던 동시집 보고 멋진 시 한 편씩 읽어봐. 올해도 재밌게 봉사활동 하자."

태그:#청소년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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