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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농민, 화성시 시정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이상배(농민, 화성시 시정자문위원회 부위원장)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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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화성이란 무슨 의미일까? 100만 개의 입이 있다는 뜻이다. 100만 화성의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가 있고 정치가 있다. 그 출발에 농업이 있다. 100만 화성의 입을 책임지는 존재들이 농민이고 농업이고 농촌이다. 100만 화성시대의 농업 농촌 농민을 상상한다.

우리사회는 십수년 째 세계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다. 출산율 0.6%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할 수 없는 수치란다. 비만의 사회적 비용은 11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청년 당뇨가 예삿일이 되고 있다. 난임이 늘고 있다. 탈노동시대이며 탈농업시대이다. 죽음의 사회이고 우울의 사회이다. 부동의 사회이고 단절의 사회이다. 지방소멸과 인구절벽은 우리 미래를 좌절시킨다. 한국사회는 기후위기 이전에 내부적 위기 요인에 더 절박하다.

이 지점에서 100만 화성의 농업을 상상한다. 갈수록 첨단화되고 대형화된 대학병원이 죽음사회를 치료할 수 있을까? 자본화된 종교가, 직업학원이 된 대학이 이 죽음의 사회를 넘어 생명의 사회를 손짓할 수 있을까? 죽음의 사회를 회복할 최선의 길은 생명 중심의 살림농업이다. 디스토피아 한국사회를 농업 농촌 농민이 품고 먹일 때이다. 우울한 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토닥일 때이다. 살림의 농업, 살림의 농촌, 살림의 농민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입과 마음을 분리시켰다. 입으로 위장만 채우려 했지 마음까지 채우려 하지 않았다. 집의 밥상은 식당으로 옮겨졌고, 엄마의 도시락 정성은 집단 급식으로 갈아입었다. 최고의 교육매체가 먹는 것인데, 이제 교육에서는 부차적인 도구가 됐다. 교육은 교육이고, 먹는 것은 먹는 것이 됐다. 집단사육으로 비추기도 한다.

죽음사회의 시작은 먹는 것을 등한시한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된 것은 아닐까? 입이 열려야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입과 마음은 하나이다. 전인적 생명은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마음으로까지 도달할 때 완성된다. 경전을 읽고 내가 빛이요 우주라는 것을 깨닫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광합성의 농산물을 먹으며 빛을 먹는 것이며 하늘을 먹는 것임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일을 농업 농촌 농민 외에 누가 할 수 있을까? 100만 화성 시대의 농업 농촌 농민이 갈 길이다.

창세기 이야기의 선악과 금기는 먹는 것으로 의식을 고양하는 이야기이다. 에덴 정원의 과실을 마음껏 먹되, 그 먹는 행위가 전인적 의식을 고양하게 하라는 역설적 이야기이다. 예수는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저녁을 하며 먹는 빵을 자신의 살이요, 마시는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 하며 기념하게 했다. 이 외에도 성서는 먹는 것으로 의식을 고양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농부의 눈에 성서는 먹는 것으로 인간을 길들이는 책으로 읽힌다. 동물을 먹거리로 길들이듯 말이다. 인간도 동물이니 마땅하다. 필자가 조금 아는 것이 성서여서 인용했지만, 동서고금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인간이 음식으로 배만 채운다면 소, 돼지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음식을 통해 내 의식이 고양되고 내 마음이 배부를 수 있는 것이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다.

한 사회의 품격은 먹는 것을 대하는 태도로 가늠할 수 있다. 밥이 하늘이라 대하는 사회와 밥이 커피보다 하찮게 여기는 사회는 분명 다르다. 음식으로 배만 채우는 가벼움에서 전인격을 고양할 때 전인적 생명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생산주의 농업에서 생명중심의 문화주의 농업으로 전환할 것을 시대는 농업 농촌 농민에게 요청하고 있다.

치유농업이라는 말은 상식이 됐다. 사회적농업, 교육농업, 영성농업, 이야기농업, 예술농업, 놀이농업, 경관농업, 그린투어리즘, 유기농업, 자연주의농업, 저탄소농업, 할머니할아버지농업 등 따뜻한 문화까지 먹이는 문화농업이 회자되고 있다. 살림농업이 죽음의 한국사회를 생명의 사회로 여는 초석이라 생각한다.

공익형 직불금과 농민기본소득도 이런 농민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요청하며 지급되는 공적자금이다. 농민의 공공적 역할에 상응한 만큼 공익형직불금도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농민기본소득의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 인간사회의 아픔을 품고 먹이는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100만 화성의 농업 농촌 농민이 됐으면 한다. 농민의 정성과 이야기가 100만 개의 입을 통해 100만 개의 마음에서 소화되어 100만 송이 생명꽃으로 피어나는 세상을 상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성시민신문, #이상배, #100만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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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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