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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돈으로 평가해야지...' '생긴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탤런트 김지수나 박소현 같이 그저 수수한 정도면 된다.'

이런 내가 결혼을 했다. 눈에 콩깍지가 씐 후 이쁘다는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년 간 짝사랑한 중국 배우 공리의 사진도 휴지통에 버리고 그녀와 결혼했다.

어느 여성학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결혼하려는 제자에게 그녀는 항상 이런 말을 한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맛을 봐야 아느냐?"

바닷물을 한 번도 맛보지 않은 나는 직접 그 맛을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물론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를 닮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애국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중의 하나도 훌륭한 엄마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1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이 소식이 없다.

예전에는 결혼만 하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 그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자연, 사회적인 환경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가 전체 부부의 약 4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지만 우리와는 무관한 줄 알았다.

요즘은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혹은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서 아기를 갖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처럼 아기 갖기를 간절히 원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아내는 '병원에 가서 한 번 검사를 받아보자'는 얘기도 하고 '친구에게 들었는데 어떤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먹으면 단박'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내는 나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혹시 우장춘 수박 아냐?"
"나는 수박을 먹을 때도 씨만 먹어. 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냐?"

씨와 밭, 어느 쪽에 문제가 있든 아이는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생길 기미는 매달 있었다. 언제나 임신 증상은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상임신? 어쨌든 보름 정도가 지나면 역시 아님이 밝혀졌다.

혹시 좋은 꿈이라도 꾼 것 없냐는 물음에 "응, 꿨어. 젊은 여자들이 날 둘러싸고 가만 두지 않는 거 있지..."

태몽이라도 꾸지 않았냐는 아내의 기대에 찬 물음에 이런 식으로 대꾸하다 머리채를 잡혔다. '바람만 피웠다간 물리적 힘에 의한 원형 탈모증이 될 줄 알아라' (머리 다 뽑힐 줄 알아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내는 그녀의 다짐을 실천한 것이다.

"꿈이라도 용서할 수 없어."

우리는 '앵벌이 부부'이다.(남편 혼자 직장에 다니면 외벌이 부부, 부부가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집은 맞벌이 부부, 우리처럼 아내는 직장에 나가고 남편은 집에 있는 경우는 앵벌이 부부라고 한다.)

물론 그냥 노는 것은 아니다.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 두고 지금은 프리랜서 출판기획가로 있으며 원고지 1매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학보사에 있을 때부터 글이라는 걸 적다 보니, 나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줄담배를 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담배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며 줄기차게 금연을 요구한다. 아내의 논리는 "니코틴에 중독된 정자들이 '고지가 저긴데...' 하며 목적지를 앞두고 픽픽 쓰러진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그리고 금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의 금연법을 따라 실천했다. 마크 트웨인은 담배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담배끊기만큼 쉬운 게 어디 있나.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담배를 끊어."

나는 결혼 후 혼자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물론 아이를 갖기 위해 아내가 한번 일본을 다녀갔고, 나도 '날짜를 맞추어서' 한국을 다녀갔다. 그러나 '결과'는 없었다. 그러자 역시 아내는 담배 탓을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굳은 약속을 했다. 2000년이 오기 전에 금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 약속은 음력 1월로 연기되었지만, 그때는 반드시 금연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일본의 담뱃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이유였다. 드디어 설날이 지나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정말 담배끊었어."
"물론이지."
"거짓말 아냐."
"아냐, 그런데 금단 증상이 일어나."
"어떤 증상인데?"
"자꾸 거짓말을 하게 돼."

결국 담배를 끊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씨앗의 결함'에 대한 아내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부부를 소개해 준 커플인데, 우리보다 6일 먼저 결혼했다. 그런데 벌써 아이가 100일이 지났다. 어느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그 아이의 엄마에게 말했다. '너 결혼했었냐, 아기는 언제 가졌어?'
뒤에서 지켜보던 아이의 아빠, 즉 나의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제가 범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신랑은 언제나 완전 범죄야. 증거 좀 남겨라!"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일이 생각났다. 몇 년 전 출장지에서 만나 알게된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 사람은 당시 나이가 서른 일곱이었는데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무래도 장모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다는 거다. 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은 말야,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임신을 했었어.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없앴거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를 밝힐 수도 없고... 나는 억울해."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걸까. 나도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를 밝혀? 그러나 홀트아동복지회의 자료를 다 뒤져서라도 나의 '무죄'를 밝혀줄 것 같은 아내의 의지를 읽고는 포기하고 만다. 농담이라도 역시 말 안하길 잘했어. 신혼 첫날밤 "다 용서할 테니 과거를 밝혀라"는 회유성 협박에도 넘어가지 않은 나인데...

"나는 하늘을 우러러 '몇 점' 부끄럼이 없다. 여자 손목 한번 잡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아내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녀가 이렇게 나를 매도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과다한 흡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할 일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아 함께 잠자리에 들지 않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담배도 끊고 생활 습관도 바꿔 다음엔 성공해야 되는데...

요즘 나는 아내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예전에 나를 차지하기 위해 연애윤리도 망각하며 아귀다툼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느냐.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싫어 다 물리쳤다. 당신은 행운녀다. 한 마디로 봉잡은 거지..."

상품이라는 것은 경쟁이 있을 때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 그녀는 최후에 웃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광 팔고 잘 빠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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