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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대답들은 무슨 질문에 대한 대답일까? 기자가 한 질문은 "총학 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를 왜 지지하는가?"였다. 고대학생들이 한 대부분의 대답인 "글쎄요... 뭐 별다른 이유는 없는데요"를 제외한 발언 중 그나마 참신한(?) 몇 개의 대답들 중 하나였다.

'몇 개 진영이 나온 줄 아느냐'라는 질문이나 '조금이라도 선거공약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물론 고대 학생들 전부를 모아놓고 이야기해 본 것은 아니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는 싫다. 하지만 고대 교내 곳곳에서 열띠게 벌어지고 있는 11월 27, 28일 총학생회장 선거전은 운동원들의 재기발랄하고 활기찬 선거운동에 비해 운동대상인 학생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11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학생회 선거기간. 과거 학생운동이 활발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 무렵 대학에서 학생회 선거는 대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어 나간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치기구라는 학생회의 위상은 어떤 것일까?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아니 학생회의 위상 따위를 고민해 볼 사람은 대학 내에서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제 대학 내에서 총학생회장 선거는 당선자가 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유효투표율인 50%를 채우기 위해 재투표에 재투표를 하는 모습은 차마 안쓰럽기까지 하다. IMF와 교육구조조정을 위한 대단위 학부제 개설 등으로 과 학생회 마저 위태롭고 이제 그 여파가 총학까지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단순히 그런 외적인 요소만으로 이런 '학생회의 몰락'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학생회의 몰락 = '권'의 몰락 ?

이번 고대 학생회 선거에서는 비운동권진영 후보가 2팀 출마했다. 선거후보진영이 5개 팀임을 감안할 때 당선여부를 떠나서 괄목할 만한 성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이런 소위 '비권'후보들의 맹렬한 도전은 더이상 '학생회=운동권'이라는 낡은 도식이 성립할 수 없음을 나타내주는 좋은 예이다.

특히 학생들의 기존 학생운동진영에 대한 감정은 안 좋은 정도를 지나 의도적인 무시 혹은 혐오감까지도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특히 취업대란 등으로 현실에서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학생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운동진영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학생운동주체들과 학생들간의 괴리감은 필연적으로 학생회를 학생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기현상을 만들어 내었고 이는 곧바로 학부제 실시 등과 학생회 붕괴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학생회에서의 이탈현상은 이미 3,4년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지만 아직 학생운동 쪽에서는 겉도는 담론 수준의 대책으로 전전한다는 인상이 짙다.

"학생회건설추진위인가 하는 것 이미 몇년 전부터 이름까지 있던 거 에요. 학생들이 학생회에서 멀어져 간다는 것이 굳이 이런 위원회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위원회를 만들어봤자 평소에도 관심 없던 학우들이 여기에만 관심을 가져줄 이유라도 있을까요?"
인문학부 이모 양의 불만이다. 이미 4년 전에 나왔던 학우들 곁으로 다가가는 학생회 건설의 모토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여기에는 기존 학생운동권의 권위적인 접근방법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예전처럼 학생운동 쪽에서 인간적인 접근을 하는데 소홀한 감이 있습니다. 예전 학생운동은 학우들의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인간적인 접근을 우선시 했는데요, 지금은 오히려 학생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태도가 더 짙게 보인다고 할 수 있죠."

이제 지도학번이라 볼 수 있는 동양사학과의 이모 군은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이번 몇몇 선거운동진영에서는 이런 기존 학생회의 권위적 문제에 많은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투쟁을 거부한다.- 대안으로서 비권은 있는가?

정경대학쪽의 후문에서 한창 전단배포를 하고 있는 한 비권진영의 후보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해보려고 했지만 선거법상 외부 언론과의 인터뷰가 교외선거운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거부하기로 내부결정을 하기로 했다고 해서 성사할 수 없었다.

대신 받아든 공약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투쟁을 거부한다."

어쩌면 기존 학생회 밑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암중 말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출마한 비권의 2진영은 과연 기존의 학생운동진영을 대체할 만한 대안으로서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상당하다. 다만 이번 비권진영에서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고민을 과감하게 삭제해버린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한 비권후보의 선거공약집은 사회적 고민에 대한 내용 대신에 구체적인 학내문제에 대한 장밋빛 공약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일반 학우들 중에는 오히려 이런 비권후보의 모습에 더 적극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구체적이고 저희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

후문에서 이 후보의 전단지를 받아든 한 학우는 느낌을 이와 같이 평했다. 사실 상당수의 비권후보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은 딱히 어떤 점이 마음에 든다기 보다는 기존 학생운동진영보다는 낫다는 막연한 반대급부를 가지고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정경대의 한 학생은 " 정확히 고등학교 학생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권진영을 폄하하기도 하였다.

쏟아지는 공약들

이번 총학선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대다수의 후보진영들이 모두 학내문제를 화두에 세우고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공약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부 무엇을 하겠다는 말만 있고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회피하는 실정이다. 각 진영 후보들이 내세우는 구체적인 공약은 전부다 학교측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학생회를 바라보는 학교측의 자세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학교측에서 공사 하나를 해도 학생회와는 일절 상의하나 안 해요. 아예 취급을 안 하는 거죠. 결국 학생회는 나중에 문제점을 알면 그때서야 대자보 써붙이면서 이에 항의하는 게 고작입니다."

이전에 문대에서 과학생회 일을 맡아봤던 한 학생은 총학생회 후보들의 숱한 공약들의 실천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를 표시했다. 무엇보다 학생들 자체가 이런 공약의 실현가능성에 회의적이었고 이런 회의감은 곧바로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일부 운동권 진영에서는 민주노동당, 사회당과 선거운동을 연계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선 여부를 떠나 이미 투표율 자체가 50%수준을 오락가락하는 총학선거에서 당선되었다고 전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이 한 정치 집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현 학교현실상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군다나 민주 노동당과 사회당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인지도는 매우 낮으므로 결국은 총학주도의 특정정당 지지에 대한 또다른 '계몽활동'이 불가피 할 것이며 이는 학생들의 더 심해지는 무관심의 악순환으로 나타날 위험도 있다.

학생들의 무관심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이런 여러 기존학생회 조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 대학생들의 현실인식에 대한 무관심이 이런 이유들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좀처럼 한국교육의 수동적이고 주입식 교육에 대한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마저 기존의 자치능력을 상실한 채 학생들이 학교측에 수동적으로 의탁하는 자세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비판에 있어서는 신랄함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의견개진을 위한 참여를 요구할 때에는 대부분이 몸을 사린다. 한 비권진영 후보의 홍보책자의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 학생운동권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될라치면 수많은 사람들이 열을 내며 이에 동참했다. 여기에 우리가 뭔가 바꾸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도달하여 막상 행동하려 하면 그때서 그 많은 학생들은 몸을 빼기에 급급했다. "

기존 정치권의 선거에서 젊은이들의 방관자적 입장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미 기존 학생회 선거의 무관심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대학이라는 조직이 사회변혁의 주도적 세력으로서 힘을 잃었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이미 대학입학이라는 것이 일반화 된 지금, 대학생이 특별히 주도적인 사회개혁층으로서 의무도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학 입학신입생들의 계층화 현상도 있다.

"이전 고학번 중에는 집안은 가난하지만 실력 하나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꽤 있었지요. 지방출신들도 많았구요. 이들중 다수는 그런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이 치열해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점차 대학생들도 비교적 풍족한 집안 환경을 가진 쪽에서 많이 입학하게 됩니다. 소위 서울 강남 출신이라고 대변되는데요, 우리 학교에서도 계속 늘어가는 추세예요. 이들에게 사회문제라는 것은 그리 절실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요."

동양사학과 조교를 맡고 있는 채준형 군의 의견이다. 더군다나 과거 학생회에서와 같은 구체화된 부조리의 대상이 없다는 것도 이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일으키는 큰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슴없이 반통일 세력 내지 반민주 세력이라는 규정을 단정짓는 학생회에 대해 이들은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 김대중 정권 퇴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황당했어요. 전-노 정권과 틀린 국민의 선택에 의해 뽑힌 정통정부에게 무슨 근거로 퇴진하라 말라 하는 건가요?" 인문학부의 새내기 정모 양은 선배를 따라 나갔던 한 시위현장에 대한 느낌을 이와 같이 설명했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은 있다

자칫 아무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도 사실 기존 학생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라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내세운다. 그 첫번째는 학내문제에 대해 좀더 강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으로 다가온 광역화 모집과 등록금 인상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

단대 산하의 과학생회 내에서조차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단체행동조차도 불사하겠다는 결의가 감지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문제에 대한 총학측의 대처는 매우 미적지근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가장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문제에서 강한 힘을 결집하지 못한 총학측에 학생들은 실망하고 결국은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은 문제지만 학교 내에서 학생회가 자치단체로서의 역량을 보여준다면 학생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많은 학생들은 주장한다.

또한 이제는 과거 사회적 정치적으로만 발산되던 비판문화가 신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시민활동 분야로 넓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 학생활동의 무대를 좀더 다양화시킬 필요가 절실하다. 이전의 획일화된 가치척도보다 좀더 다원화된 가치의 인정 또한 학생회에 요구되는 점이다. 이전에 하향전달식의 권위적인 학생회가 좀더 수평교류가 가능한 구조로 변화된다면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학에서는 지식만 배우면 된다?

대학은 책만을 달달 외우는 학원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대학생들의 신선한 사상과 독특한 시선은 언제나 침체에 빠진 기성세대에 많은 참고가 되곤 했다. 사회적 정치적 수준 또한 그 나라의 대학생들의 수준에서 얼핏 짐작할 수 있다. 토론이 불가능한 문화, 자신의 권리에 대한 무지, 권위적 상하관계, 정치적 무관심으로 인해 다른 이에게 끼치는 피해. 불행하게도 우리대학내에 아직도 존재하는 버려야만 될 악습들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러한 악습들이 그대로 사회생활까지 지속되며 지식으로 가득찬 '우매한 대중'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이 없는 대학은 죽은 대학이며 비판할 줄 모르는 지식인은 가장 위험한 흉기와도 같다. 학생회 선거는 단순한 학생임원진의 선출만이 아닌 사회에서 나와 남을 위해 행해져야할 권리 행사와 책임감수의 연습이다.

잘못 내려진 판단과 선택은 나 자신과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미쳤는지 우리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현 정치상황에서도 점점 높아져가는 대책없는 정치무관심은 우리나라 정치를 비판은 난무하고 책임은 없는 정치판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가운 기온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가고 있는 고대 총학생회 선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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