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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낮을 이불처럼 따습게 만들어 주었던 햇살도 사라지고 어스름 어둠이 스르르 내려앉는 날, 살얼음이 얼 것 같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깊어만 가는 겨울밤이었습니다.

얼마 전, 직원의 자녀 결혼식이 있어 뒤풀이를 한다고, 음식을 직원체육이 있는 어제 떡, 수육, 샐러드, 가오리 회 무침, 과일 등 맛있는 먹을거리를 사모님이 하나 가득 싸가지고 왔었습니다. 한참 운동을 하고 난 뒤 먹는 것이라 꿀맛처럼 먹었건만, 그래도 박스에서 담아내지도 않은 음식들이 너무 많이 남아 난감해 하셨습니다.

@BRI@요즘 먹을거리 지천이다 보니 많이 먹지도 않고, 집에 가져 가 봤자 둘뿐인 식구에 어쩔 줄 모르시기에

"저! 사모님, 이 음식 푸드 뱅크에 보내면 어떨까요?"
"푸드 뱅크요?"
"네. 우리 집 가는 길목에 보면 요양원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쿠 그렇게 해 주면 좋지요. 가져가 봤자 음식쓰레기로 버려야 할 판인데…."
"그럼 제가 갔다 드리고 퇴근할게요."
"너무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차에 음식을 실으면 냄새 가득 나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쌩쌩 달려 요양원으로 들어서니, 사무실에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캄캄한 적막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딸아이의 봉사활동으로, 또 시골에서 채소를 너무 많이 가져오면 가끔 가져다주는 곳이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뭘 이렇게 가져왔어요?"
"할머니들 간식이나 하시라고."
"고맙습니다."

양로원에는 100여명의 갈 곳 없는 할머니들이 신부님을 중심으로, 푸드 뱅크를 운영 해 가면서, 지방자치단체로 부터 약간의 지원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로 학생들은 청소하는 일을, 자원봉사자들은 빨래, 할머니 목욕시키기 등 부모님 돌보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나눔을 실천하는 주부들이 많습니다.

식당에서 빈 그릇을 비우고 인사까지 나누고 돌아서 나오는 데, 들어갈 때에는 보지 못했던 박스 두개가 현관 앞에 놓여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저기! 현관에 박스 두 개가 있던데."
"누가 가져다 놓고 갔다 봅니다."
"와~ 정말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더니 그런 사람이 있나 봐요."
"가끔 저렇게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원 두 사람이 박스를 들고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구멍 난 곳으로 보기엔 밀감 같기도 하였습니다. 새콤달콤하게 할머니들의 입을 즐겁게 해 줄것이란 생각을 하니, 내 마음까지 행복 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이 담긴 물건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말이면 반짝하고 떠들 썩, 내 이름 석자 내어가면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무도 몰래 비록 많고 크진 않지만,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은 참 살아볼만한 따뜻한 세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가지기 위해 두 손을 움켜쥐기 보다는, 이름없는 천사의 행동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가득 했으면 합니다. 내 이웃을 돌아보는 연말이었음 참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미디어에도 송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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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가 되고 싶은 작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뭇잎 보다 작은 행복 내 발밑에 떨어진 행복 줍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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