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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보통선거에 대한 열망을 토론하기 위해 모여있는 홍콩시민들.
ⓒ 진주
오는 25일은 홍콩, 공식명으로 말하자면 홍콩특수행정지역(SAR)의 대표인 행정장관 선거가 있는 날이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한국과 매우 가까운 곳이지만 우리에게 홍콩은 쇼핑의 천국쯤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거리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도 약 2천~5천 명의 홍콩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기 위해 나왔다. 그렇다면 홍콩은, 민주주의가 없단 말인가?

세 부류의 홍콩사람들

지난 일요일의 시위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참여형태인 보통선거권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홍콩은 사법회, 입법회, 행정회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입법회는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 그 위원들이 구성된다.

단순하게 투표권 수로 따지면 홍콩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한 번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대다수의 홍콩민들이다(여기서 홍콩민이란 홍콩에서 7년 이상을 거주하여 주민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사람들은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된 반면, 홍콩은 거주기간이 기준이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도 주민권을 가지고 있다).

총 60명의 위원들로 구성되는 입법회는 30명의 지역별위원들과 30명의 직능별위원들로 나뉜다. 30명의 지역별위원들이 바로 유일하게 18세 이상의 홍콩민들의 손에 의해 뽑혀진다. 이 선거만이 유일한 보통선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두 번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직능별위원과 지역별위원에 대한 선거권을 동시에 갖는다. 직능별위원인 30명은 재정, 기술, 산업, 법률, 교육, 보험, 정보기술, 상업, 농어업, 관광, 노동 등 30개 분야로 그 직능이 나뉘어져 있으며, 각 부문에 해당되는 사람들만이 위원을 선출할 선거권을 가진다.

선출 형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개별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우로 예를 들어 변호사들은 개별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여 법률계 대표위원을 선출한다. 다른 한 방식은 협회나 회사단위로 투표가 이루어지는데, 노동계의 경우 각 노조가 하나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즉 모든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선출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홍콩의 수장인 행정장관은 800명으로 이루어진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된다. 이 800명은 행정장관, 직능별위원, 지역별위원 등을 포함한 3개의 투표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세 부류는 홍콩인들을 계층화하는 하나의 지표로 보인다.

홍콩을 움직이려는 800명의 사람들

800명의 선거인단은 기본적으로 기능위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의 입법회에서 업무를 수행했던 자문위원들도 투표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전국인민대회에 참여하는 홍콩대표단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지역별 위원들은 낄 틈이 없다. 이 800명은 단순히 행정장관을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홍콩의 입법과 행정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차기 행정장관은 바로 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뽑힌다. 대략 그 구성원들의 성향을 본다면, 기능위원을 이루고 있는 세력 있는 엘리트 전문가 집단과, 기존에 입법회에서 세력을 행사했던 사람들 및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에 보다 가까운 소위 대표단으로, 각계각층의 홍콩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을 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곤층, 저임금노동자들, 실업층, 홍콩의 많은 이주노동자들, 그 밖의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누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구성된 입법회는 우리의 입법부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법을 제정하며, 예산을 세우고, 정부의 정책을 감시한다. 정부의 정책은 행정회에서 수립하지만, 행정회는 실제 행정장관이 정책을 수립하는 데 조언 역할을 할 뿐, 정작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행정장관이다.

▲ 지난 18일 시위에서 홍콩 시민들이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거대한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진주
홍콩은 '열림'과 '참여'가 없는 비민주적인 사회

아시아법률센터의 연구원인 웡카이싱은 기본적으로 선거 자체가 보통선거 방식으로 이루어져 모든 홍콩인들에게 참여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주요하게 주장되고 있는 보통선거권에서 나아가 어떻게 권력을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홍콩의 선거방식에 있어 선거인단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두 가지 형태를 제안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선거인단 자체를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방식인데, 사실상 선거인단을 보통선거로 선출할 바에야 바로 행정장관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게 낫지요."

"다른 하나는 홍콩의 기본법에 따른 것인데, 선거인단에게 후보자를 추천하는 권리만 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800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어느 정도가 한 후보를 추천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현재로서 800명 가운데 100명 정도가 민주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성격이 강한 선거인단 내에서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지요. 또한 추천 후보자에 대해 중국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입법회나 행정회나 모두 홍콩이 영국령에 있었을 때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로 지속되고 있다. 현 행정장관인 도날드 창은 지난해 입법회 구성의 변화를 시도했었다. 입법회 위원의 수를 지역별 위원과 직능별 위원을 동일하게 5명씩 증가시키는 방안이었다. 이 가운데 직능별 위원 5명을 지역이사회(District Board)로부터 선발하자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친민주주의 계열에서 강하게 반발하였다. 왜냐하면 지역이사회가 홍콩민들에 의해 선출되기도 하지만 행정장관이 임명하는 수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참여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문제는 웡카이싱이 말한 것처럼 권력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홍콩은 표현의 자유가 있고, 폭력이 난무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되는 법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이다. 그러나 사회의 지배세력, 법을 세우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여러 정책들을 입안하여 실행하는 데 있어 다수의 참여가 제한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입법과 정책 결정은 행정장관에게 집중되어 있고, 많은 부분들은 직간접적으로 중국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기본법을 개정하려고 할 때, 현 입법회 의원들 과반수의 발의가 필요하며 그 뒤 중국정부에 그 개정초안을 보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도록 되어 있다. 웡카이싱은 현재 중국정부의 입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입법회와 행정장관의 행보에 있어 보통선거의 도입이든 법개정의 문제에 있어서든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급하게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진행할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사안들이 진행되는 메카니즘의 문제이다. 홍콩정부 내에서 한번 걸러진 모든 사안들은 다시 중국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사회를 지배하는 정부 세력들은 홍콩민중들을 믿지 않습니다. 보통선거를 실시함에 있어서 그들이 매우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히 홍콩 민중들이 받아들이고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현 사회지배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홍콩이 영국령이었을 때에는 영국이 임명한 햐얀 얼굴의 영국인이 통치자로 군림했었고,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는 행정장관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인으로 바뀌었을 뿐 홍콩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다.

▲ 25일 선거를 앞두고 있는 도날드 창 현 행정장관(왼쪽)과 그에 도전하는 시민당 알랜 랭 후보.
ⓒ EPA=연합뉴스
두 명의 후보자, 그들은 누구 목소리를 담고 있을까

차기 행정장관 후보자는 현직인 도날드 창과 시민당 출신의 알란 랭이다. 홍콩법에 따라 행정장관은 정당에 가입할 수가 없다. 도날드 창은 자유당도 민주당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그들의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중국정부의 신임을 업고 중국정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업무를 무난하게 처리해 나가는 행정가로 평가받고 있다.

알란 랭은 변호사 출신으로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홍콩사회의 민주주의를 외치고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대변한다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경험기반이 아직은 취약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홍콩사회, 1970년대의 경제발전과 중소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실한 산업발전이 이루어졌던 사회가, 8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경제개혁으로 인해 모든 공장들은 북쪽으로 북쪽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공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서비스 산업에 의지하며 금융, 관광산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홍콩. 그러나 그 서비스 산업도 세계화된 자본시장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숙련된 노동력으로 홍콩 경제발전에 기여했던 노동자들은 이제 중년이 되었고, 일할 공장이 없어진 현실에서 이들은 기술 없는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홍콩의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의 질이 회복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은 서민아파트와 저렴한 의료서비스이지만, 서민아파트는 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한다. 퇴직과 연금제도가 취약하기 때문에 고령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삶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TV토론을 벌이고 있는 두 후보.
ⓒ EPA=연합뉴스
2005년 12월 25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며, 2006년 7월엔 5만8천 명, 그리고 2007년 3월은 5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인권운동가 브루스 반 보리스는 이 수치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나는 홍콩사회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는 보통선거가 실시되고 있지만,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는 아닙니다. 홍콩은 아직 전체적인 보통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인권지수는 싱가포르보다 훨씬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5년과 2006년 홍콩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뜨겁게 표현했고, 모든 사회세력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번 시위의 중점 사안이었던 행정장관 직접선거는, 시위에 참여하든 시위에 참여하지 않든 지금은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이 되면 홍콩사람들은 참여할 겁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보통선거의 실시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보통선거를 기본으로 하여,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자유롭고 다양한 기회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중문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며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린양은 홍콩의 젊은이들이 정치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좋은 학점과 자격증을 따서 보다 안정된 공무원직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게 주요 관심사란다. 창업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한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잡지 못하면 결국 가게 점원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린양도 홍콩이 보다 민주적인 사회로 되어가길 바라고 있다.

"홍콩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단순히 보통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넘어 훨씬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도날드 창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은 그저 하나의 직업으로 자신들의 업무를 수행할 뿐이에요.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과 보통서민들의 삶은 동떨어져 있고, 그들은 관심있게 들여다보지 않아요. 그래서 직접선거나 다양한 참여방식을 통해 삶의 질적 차이를 줄이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웡카이싱에게 물었다. 그 역시 하나의 투표권만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만일 행정장관 선출에 대한 투표권이 있다면 누구에게 던질 것인가.

"내가 만일 투표권을 갖고 있다면, 현재로선 알란 랭에게 표를 던질 겁니다. 그가 열린 정치에 대한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란 랭보다 더 나은 정치 지도자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다 열린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다양한 경험과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통찰력이 있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후보자로 나오고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홍콩민 전체가 그들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로 보다 빨리 나아가야 합니다."

이번 선거는 도날드 창이 재선될 거라는 게 확실히 되고 있다. '만만디(慢慢地)'를 좋아하는 중국사회, 혹시 이같은 문화가 홍콩사회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도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염려스럽다.

태그:#보통선거, #홍콩, #행정장관 선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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