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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거리에 프랑스 대선후보들의 선거 벽보가 늘어서 있다.
ⓒ 한경미

28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경,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19구의 상가가 밀집한 주거지역.

모두들 한 주일의 업무를 마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나온다. 빵집에 가서 바게뜨빵을 사고 옆의 정육점에 가 주말에 구워먹을 고기를 사는 파리지앵들. 길거리에는 5월 1일 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해 벌써부터 은방울꽃을 파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섭씨 26℃를 웃도는 거의 여름이 무색하리만큼 화창한 토요일 아침, 장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회당의 후보인 루아얄에게 표를 던지라는 전단이었다. 그렇지, 프랑스 대선 결선이 이제 1주일밖에 안 남았지.

화창한 토요일 아침, 파리의 거리에서는

거리를 조금 더 내려가니 역시 사회당원들인 듯한 사람들이 전단을 나누어주는데 경찰 2명이 다가오더니 뭐라고 하는 듯 하다.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본다. 공공장소인 길거리에서 전단 나누어주는게 금지되어 있으니 그만 두라는 얘기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하는 사회당원들.

"아니 지금 한참 대선 캠페인 기간인데 전단을 나누어주는게 금지라니 그게 무슨 얘기요?"

경찰이 하는 말.

"아무튼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사항이니 이렇게 길에서 전단을 배포하지 마십시오."

옆에 있던 다른 사회당원이 하는 말.

"아니 지하철에서 금지되어 있다는 건 들어보았어도 길거리에서 금지되어 있다는 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네."

이렇게 경찰과 사회당원들이 실랑이를 하고 있자니 옆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두명씩 발걸음을 멈춘다. 한 시민이 "무슨 일인데 그래요?"라고 거들자, 사회당원은 "아니 글쎄, 이 경찰 양반이 대선 전단 배포가 금지되어 있다고 그러지 뭐예요"라고 볼멘소릴 한다.

▲ 사회당원들과 단속경찰 간 실랑이의 원인이 되었던 사회당 대선 전단.
ⓒ 한경미
그러는 사이에 전단을 배포하고 있었던 여자 분이 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전단 배포증을 꺼내 경찰에게 보여준다. "이 배포증이 있는 사람은 전단을 배포할 수 있소. 보시오." 그러면서 자기 신분증까지 꺼내들고 보여주려고 한다.

그 때 모여든 군중 중에 한 중년 남자가 그 사회당원에게 "아니 왜 신분증은 경찰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보여주지 마세요"라고 한다.

"모든 걸 확실하게 하려고 그래요."
"그래도 신분증까지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경찰들이 지금 신분검사 하는 것도 아닌데."

한 경찰이 전단 배포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앵무새처럼 다시 반복하자 이 사회당원 여자가 묻는다. "그 법이 몇 조 몇 항인지 말해보시오."

그러자 아까 중년의 남자가 다시 끼어든다.

"그런것 따질 것 없어요. 설령 법이 있다 한들 법이라고 다 지켜야 합니까?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는 법 따위는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난 사회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여당인 대중운동연합을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렇게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는 걸 보니 참을 수가 없군요."

"자유를 구속하는데, 법이라고 다 지켜야 합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이제껏 상황을 지켜보던 한 여자가 하는 말.

"아니 그 사람이 아직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나가면 어쩌자는 거지."

그 사람은 당연히 여당 대통령 후보인 사르코지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덧붙이기를, "그러니 그이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큰일 나겠소."

옆에 섰던 젊은 청년도 한 마디 거든다.

"아마 대중운동연합이 사르코지 전단을 뿌렸다면 가만히 두었을 겁니다."

그러자 사회당원 여자가 대꾸하는 말. "저 위에서 아까 대중운동연합도 전단을 뿌렸어요. 근데 지금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네."

경찰이 다시 끼어든다. "그들도 법으로 저촉되니까 사라진 거지요."

▲ 지난 4월 1차 투표당시, 파리 19구의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 오전 11시 15분의 이른 시각인데도 유권자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 한경미
그 사이 중년의 남자 사회당원이 사회당 선거구역에 전화를 건다. 정말로 전단배포가 금지되었는지 확인하는 듯한 눈치다. 그러는 사이에 인원은 계속 모여들고 모두들 사회당을 두둔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모아지니까 두 경찰의 위세가 갑자기 수그러진다.

한 경찰이 슬그머니 무더기에서 빠져나가더니 저쪽에 가서 휴대폰을 꺼내든다. 자기도 윗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눈치다. 한참을 통화하더니 다시 군중 쪽으로 다가와 말을 바꾼다. "됐습니다. 전단 뿌리셔도 돼요. 사실 전단 뿌리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아까와는 다른 말을 하는 경찰. 그래도 어색한 기색이 없다.

"사르코지 전단이었으면 내버려뒀을걸"

나중에 합세한 여자 사회당원이 어이없어 한다. "이봐요, 젊은 경찰양반, 내 나이 64세이고 내가 25살부터 사회당원으로 일한 사람이요. 내 이제껏 대선 기간 동안에 전단배포 금지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요."

그러자 뒤늦게 도착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상황을 알아채고 한 마디 한다.

"내 원, 드골 시절부터 이제껏 대선을 지켜본 사람인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네." 그러면서 혀를 끌끌 차며 사라진다.

파리 시내 한 지역에서 대선을 1주일 앞두고 경찰과 시민들이 한차례 실랑이를 벌인 장면이었다.

태그:#프랑스대선, #사회당, #전단, #선거벽보, #루아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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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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