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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우에노 시장 내,1001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회전초밥 식당입니다.
ⓒ 이효연
얼마 전 일본 여행길에 찾았던 우에노 시장 안에 있는 회전초밥집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회전초밥집이 대중화되어 이런 식당을 보고 희한해 한다거나 깜짝 놀랄 일은 없었습니다만, '역시 일본에 오긴 왔구나'하고 느끼게 한 것 중 하나가 회전초밥집이 도심 곳곳에 많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번화가 골목에 가면 두세 집 정도가 연속으로 보일 정도로 많이 있었으니까요.

샐러리맨이나 근처 상인들, 지나가는 행인들이 주로 혼자 혹은 둘씩 많이 찾아오더군요. 슬쩍 곁눈질해 보니 대부분 초록접시(한화로 약 1800원 선)만을 비울 뿐 그 이상 가는 가격의 접시엔 손을 대지 않습니다. 보통 한 사람당 초록접시 4~5장 정도를 비워내고요.

▲ 화려한 모양새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손님들의 군침을 삼키게 하는 초밥들
ⓒ 이효연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돌아가는 회전초밥 컨베이어 벨트며 접시의 색깔과 문양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시스템도 우리와 똑 같습니다. 연두 접시에 담긴 것이 190엔으로 가장 저렴했고 그 다음이 230엔 정도, 그리고 가장 비싼 것이 400~550엔 정도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800원에서 5천원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우리네 회전초밥집은 뭔가 별미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비교적 고가의 식당 컨셉트라면 일본의 회전초밥은 일상적으로 서민들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정도의 분위기였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초밥집에서 흔히 나오는 광어나 우럭 같은 생선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광어, 농어와 같은 생선이 아주 비싸다고 하더군요. 비싼 고급 회전초밥집에서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제가 갔던 곳들은 그랬습니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된장국을 서비스로 내오고 리필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돈을 받습니다. 우리가 흔히 '미소시루'라 부르는 일본된장국에서부터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미역국 등 여러 종류를 준비해 놓아 손님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 일본식 달걀말이는 특유의 달콤한 맛 때문에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 이효연
이 날도 남편은 출장 일정 때문에 일본인 동료들과 회식을 했고 저는 딸아이와 둘이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회전초밥집을 찾았습니다. 아, 그런데 같은 초록 접시에 담긴 것이라도 기왕이면 생선 초밥이나 새우 초밥같은 것을 먹어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아직까지 '본전 개념'이 없는 딸아이는 들입다 계란말이만을 몇 개 째 먹어댑니다.

'1800원이면 계란이 한 판인데…'하는 생각에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안나야, 이 새우초밥 맛있겠다, 와우! 이 생선 좀 보세요"하면서 꼬셔대도 소용없습니다.

으이그, 한국에서도 비싼 부페 식당에 데리고 가면 '평소 못 먹어본 요리는 저리가라'하고 꼭 김밥이랑 잡채 같은 것으로 배를 불려 성질을 나게 하더니만 일본에 와서도 '새는 바가지'는 어쩔 수 없더군요. 하는 수 있나요? 제 입맛에 맞는 걸 먹는다는데….

▲ 저렴한 접시로만 골라 담느라 좀 더 멋진 초밥 사진을 찍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 이효연
초밥에 올려진 생선회는 대부분 다 싱싱했습니다. 워낙 꾸밈을 좋아하는 일본 요리의 특성이 여기에서도 잘 드러나더군요. 간단한 초밥 위에도 이것저것 장식 고명을 많이 올렸습니다.

아이 아빠 말에 따르면, 언젠가 출장 와서 한 번 가 보았던 한 회전초밥집에서는 만든 지 30분이 지난 것은 손님이 보는 앞에서 무조건 버린답니다. 신선함을 최우선으로 삼고, 손님들에게 그만큼 자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퍼포먼스'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아, 물론 손님이 원하는 경우 그런 초밥들을 거저 주기도 한답니다.

"오호~ 거기가 어디냐? 앞장서라!"고 했지만 아이 아빠와 일정이 맞지 않아 안타깝게도 이번에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버리는 것들 나 달라"고 해서 실컷 먹고 오고 싶지만 막상 가 보면 조금 계면쩍은 생각에 선뜻 그리하게 될지는 자신이 없네요. 주방장이 '알아서' 드시라고 내밀면 못이기는 척 하고 날름 받아먹겠지만.

▲ 수전에 대고 컵을 누르면 따뜻한 물이 나와 녹차를 풀어 마실 수 있습니다.
ⓒ 이효연
눈길을 끈 것은 두세 자리 건너 하나씩 마련된 뜨거운 물을 받아 마시는 수전입니다. 컵을 대고 살짝 누르면 뜨거운 물이 나오지요. 뜨거운 물을 컵에 받은 후에 가루 녹차를 풀어 녹차를 만들어 마시는 겁니다. 가격은 무료입니다.

자아! 이제부터 일본여행 중 제가 만든 웃지 못할 화려한 에피소드가 공개됩니다.

▲ 작은 양념병에 담긴 가루녹차입니다. 생긴 모양새는 꼭 와사비(고추냉이) 분말 같습니다.
ⓒ 이효연
이것(사진 위)은 바로 다름 아닌 가루 녹차입니다. '푸를 녹, 차 차'라고 이렇게 친절하게(?) 한문으로까지 '綠茶(녹차)'라 써두었지 않습니까? 그 아래 흰 종이에 적은 것은 일본어로 적힌 것이라 몰라서 그랬다고 치고.

아무래도 말 안 통하는 외국에 나와 아이 데리고 식당을 찾다보니 조금 긴장을 했나 봅니다. 이 '녹차'란 글씨가 왜 그 당시에는 도통 눈에 안 들어왔는지 말이에요. '이것은 무엇에 쓰는 가루인고?'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이리 보고 저리 보다가 나름대로 '통밥'을 굴려보았죠. '아하! 역시 초밥의 종주국답게 와사비(고추냉이 분말)도 가루를 내서 스페셜하게 가져다 놓았군!'하며 간장 종이에 저 녹차가루를 한두 스푼 풀어 초밥을 찍어 먹어보았습니다.

'어라? 그런데 왜 매운 맛이 안 나는 거야? 너무 조금 넣었나?'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와사비를 푼 간장물의 농도가 진해져 거의 '잼 에 가까운 정도였지만 매운 맛은 전혀 나지 않더군요.

한동안 갸우뚱 하다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일본 사람들은 와사비 가루를 이렇게 밥에 발라 먹나 보다'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생선회를 살짝 들어올려 밥과 생선회 사이에 탈탈 털어 넣어도 봅니다. 그래도 맛에는 변함이 없었고요.

옆에서 저의 이 해괴한 짓을 한참동안 말없이 곁눈질로 지켜보던 일본 아저씨가 나중에 녹차 가루를 컵에 타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것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상황은 엎질러진 물!

다음날 만난 메구미상(일본 친구)에게 이 얘기를 전해주니 데굴데굴 우스워 죽겠다고 넘어갑니다. 하긴, 저도 어떤 외국인 친구가 된장을 피넛버터인 줄 알고 빵에 듬뿍 발라 먹었다고 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마는….

일본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라면, 일본 음식 메뉴 몇 개 정도는 꼭 일본어로 외우거나 적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생각만큼 영어 표기가 일반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불어 회전초밥집에 가시게 되면 눈을 크게 뜨고 두루두루 살펴보아 저 같은 낭패는 보시지 말라는 뜻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 해프닝을 고합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남긴 일본 우에노 거리의 회전초밥집, 저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에서 회전초밥집을 찾았던 것이 그러고보니 꽤 되었네요. 그간 많이 변해 혹시나 가루 녹차를 저렇게 내오는 식당이 있는지 혹시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된장국은 무료로 제공하는지도 궁금하구요. '망신스런 기억'을 남긴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날의 가루 녹차의 맛과 향은 참으로 향긋하고 좋더군요.

이 기사는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회전초밥, #일본, #우에노, #이효연, #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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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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