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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이 신부님이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적어도 지금까지 장애인은 사제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는 7월이면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새 신부가 탄생한다. 박민서 부제가 오랜 기다림과 수련 끝에 신부님이 된다. 축하할 일이다.

이 기쁜 순간에 '신학교가 무슨 사관학교인가'라며 뜬금없이 시비 거는 기사를 <오마이뉴스>가 게재했다. 황당한 일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뜻은 충분히 알겠으나 방법과 시기가 잘못됐다. 장애인 신부가 탄생하는 이 기쁜 순간에 "지금에서야 이런 일이 생겼다"고 타박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신부님이 된다는 것은 신학교가 사관학교와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고 뜻 깊은 사건이다. 이제 첫 장애인 사제가 나왔으니 제2, 제3의 장애인 사제가 나올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희망적인 일이다. 박 부제의 사제 서품은 한국천주교회의 열린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오찬호 기자의 해석은 정반대다. "먼저 이번 일을 자칫 한국가톨릭교회가 마음의 문을 연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박 부제의 사제서품은 철저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값진 결과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과연 그런가. 개인적 차원에서 노력해서 사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면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본당 신부와 신학교 교수 신부들, 교구장의 허락, 일반 신자들의 기도, 부모 형제의 이해와 도움 희생이 없이 사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회의 이해와 허락이 없이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가톨릭교회의 열린 자세가 없었다면, 장애인 신부 탄생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찬호 기자의 기사에서도 박 부제가 사제서품을 받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밝힌 정순 신부 역시 가톨릭교회의 사제다. 가톨릭교회의 이해와 도움, 배려, 교육 없이는 어느 누구도 사제가 될 수 없다. 그가 장애인이든 정상인이든 관계없이.

이미 취득한 학력자본으로 사제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고 오찬호 기자는 썼다. 과연 박 부제는 이전에 취득한 신학석사 때문에 신학교에 입학이 허가된 것인가. 학위도 학위지만, 변함없이 하느님을 믿고 장애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꿋꿋하게 사제가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깊은 신앙심 때문에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부제를 거쳐 결국 사제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듣기도 생소한 ‘학력자본’이 사제직을 장담해주리라는 것은 오해다.

오찬호 기자가 사제직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설명하는 영적인 지도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순 명쾌하긴 하나 틀렸다. 사제는 주교로부터 신품성사를 받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미사를 봉헌하며 복음전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다(가톨릭대사전).

신부가 되면 미사를 주례하고 각종 성사를 집전하며 주교로부터 명령받은 소임을 담당해야 한다. 세례를 주고, 고백성사를 주고, 필요하다면 오지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기도 한다. 본당 사목이나 특수 사목도 주교가 명하면 순명해야 하는 게 사제, 즉 신부들이다.

제2, 제3의 박민서 신부가 나올 것... 축하받을 일 아닌가

사실 장애인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들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장애인들의 신학교 입학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박 부제의 사제서품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박 부제 역시 사제가 된 이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훌륭하게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고, 교회의 가르침으로 단련된 사제이기 때문이다.

오찬호 기자의 글을 읽으면 한국 가톨릭교회가 이제 막 사제품에 오르는 박 부제의 장애물로 보인다. 너무 심하지 않은가. 박 부제는 이미 가톨릭교회의 일부이고, 박 부제가 신부가 되면 장애인을 위한 교회의 활동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고 교회 내에서 장애인의 입지를 넓히는 데 큰 몫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얼마나 신나고 바람직한 일인가. 그로인해 제2, 제3의 장애인 신부가 나온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만일 박 부제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지막 순간에 사제 서품에서 탈락했다면 오찬호 기자의 ‘신학교가 사관학교냐’라는 문제제기는 훌륭한 기사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오찬호 기자는 기사에서 한국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 탄생을 축하하는 내용은 거두절미 생략했다. 적어도 청각 장애를 딛고 '신부님'이 되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을 박민서 부제에게 축하의 말 한마디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박민서 부제의 입장을 취재하는 열의 정도는 보여야하지 않을까. 너무 큰 기사를 너무 성의 없이 개인의 의견과 주장만 무리하게 전개한 것은 아닌지 아쉽다.

박민서 부제의 사제 서품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제가 되면 그동안 품었던 큰 뜻을 차근차근 이뤄나가길 빈다. 한국 교회와 사회에 큰 발자국을 남기는 큰 신부가 되길 바란다.

태그:#가톨릭, #천주교, #신학교, #장애인사제, #박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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