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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산
ⓒ 이승철
"인왕산을 거쳐서 왔어야 하는 건데 오늘 등산 너무 약하지 않을까?"

지난 화요일(7월 31일) 북악산을 찾은 날은 전날까지 내렸던 비 때문에 오히려 날씨가 쾌청한 편이었다. 높지 않은 나지막한 산이어서 인왕산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악을 거쳐 삼청공원으로 내려가자는 주장을 했던 친구가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 있는 창의문(자하문)에서부터 시작한 등산은 그러나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창의문 앞에서 버스에서 내리자 50여 명의 단체 등산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뚫고 입구에서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자 번호가 표시된 문화재 탐방 목걸이 표찰을 내준다.

"이 북악산 죽을 때까지 올라보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올라가다니 감개가 무량하구먼, 허허허."
"뭐 그렇다고 감개가 무량하기까지. 허허허."

사실 너나없이 감회가 새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같으면 감히 청와대 뒷산을 이렇게 등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다 세상이 좋아진 덕분이지.

등산로는 등산로가 아니라 옛 성벽 길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군대나 순라꾼들이 오르내리던 길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를 경비하는 군인들만 오르내리던 길이었었다. 길 왼편의 성벽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오른편에는 나지막한 목재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울타리 안쪽은 울창한 송림이 멋지고 싱그러운 모습이다. 이 소나무 숲은 조선시대부터 조성하여 가꾸어온 소나무들이어서 역사가 꽤 오랜 전통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그런데 성벽 안쪽으로 오르는 길은 바닥에 돌을 깔아 놓고 돌층계로 된 길이어서 딱딱하여 느낌도 좋지 않고 상당히 힘이 든다.

"이 돌계단 길 너무 힘 드는데 어디 다른 길은 없겠지?"

어디 다른 길이 있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힘든 길이 싫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힘들어도 그냥 오르는 수밖에. 더구나 성벽 옆에는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그늘이 지지 않아 땡볕 길이어서 더 무덥고 힘든 것이다.

▲ 정상으로 오르는 성벽길
ⓒ 이승철
▲ 오르막길에서 뒤돌아본 인왕산
ⓒ 이승철
오르막길은 경사도 상당히 급한 편이어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이 장난이 아니었다.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가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자 오른편으로 정자 하나가 나타났다. 등산객들을 위하여 쉼터로 만들어 놓은 시설이었다. 이 돌고래쉼터에서 잠깐 땀을 식히고 올라가기로 했다.

"야, 이거 이쪽으로 곧장 올라오기를 잘했군, 인왕산까지 거쳐 왔더라면 너무 힘들 뻔했는걸."

조금 전까지 아쉬워하던 친구가 오히려 잘됐다고 한다. 산행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등산 경력도 제법 쌓여 어지간한 산은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 편인데, 이 작고 낮은 산에서 유난스레 힘들어하는 일행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쉼터에서 잠깐 쉬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자 일행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조금 쉬고 나자 기본 실력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성벽에는 사이사이에 적을 방어할 때 화살을 쏠 수 있게 만들어진 틈새와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그렇게 잠깐 더 올라가자 오른편에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앞쪽으로는 도심을 건너 남산이 지척이고, 북쪽으로는 북한산이 아스라하다.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보자 하얗게 보이는 성벽을 따라 인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어라, 이 산 이름이 백악산이었어?"

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에는 정말 '백악산(白岳山)'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북악산이 옛날에는 백악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함께 불리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잠깐 땀을 들이고 내리막길로 나섰다.

정상과 쉼터, 그리고 길에서는 등산복 차림의 젊은이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경비를 담당하는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에게 등산복 차림을 하게 한 것도 등산이나 유적지 탐방을 나선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 힘들게 오르막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등산객들
ⓒ 이승철
▲ 북악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옛 성곽
ⓒ 이승철
내려가는 길은 너무 쉬웠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위험 요소나 힘들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만에 청운대에 도착했다. 청운대에는 한 사람의 젊은 여성문화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자신을 소개하고 북악산과 성곽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쪽 능선 숲 속에 하얗게 서 있는 바위가 보이지요? 저 바위가 바로 촛대바위입니다."
"그럼 저 바위가 바로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는 그 바위 맞습니까?"

듣고 있던 등산객 중 한 사람이 그녀의 설명 중에 불쑥 묻는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쇠말뚝을 제거하고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모양이 촛대처럼 생겼습니다. 내려가시다가 한 번 들려 보세요."

그러나 그녀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상냥한 모습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아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가씬지 아줌마인지, 이곳에 와서 이렇게 문화해설을 하려면 산을 자주 올라올 텐데 왜 그렇게 뚱뚱합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엉뚱한 말을 툭 던졌다. 70세쯤으로 보이는, 그러나 건장한 노인이었다. 순간 설명을 하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듯했지만 그녀는 곧 평상심을 회복하고 흔들림 없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 노인은 다행히 더 이상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과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저 아래쪽을 보십시오, 왼편으로 성벽이 구부러지며 튀어나온 곳이 보이지요, 그곳을 곡장이라고 합니다. 구부러진 성벽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에도 문화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설명이 끝난 다음 우리 일행들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 촛대바위
ⓒ 이승철
▲ 숲속에 보이는 커다란 한옥이 삼청각
ⓒ 이승철
"그 노인네 정말 주책이더구먼, 어떻게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지? 그 문화해설사 참 침착하고 대단하잖아? 그런 기분 나쁜 말을 듣고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설명을 계속하는 걸 보면."
"그러게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말을 더 조심해야 대접받는 법인데…."

일행들도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이어서 다른 노인의 무례한 행동이 몹시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친구는 그러나 그 자리에서 노인이게 그러면 되느냐고 바로 잡아 주려다가 오히려 그 여성 문화해설사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하고 처지가 난처할 것 같아 참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곡장이었다. 곡장은 성곽이 바깥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구조로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방어하기 좋도록 만들어 놓은 특별한 곳이었다.

"그런데 저 아래 골짜기에 보이는 커다란 한옥 건물은 뭐죠?"
"네. 저 건물은 삼청각입니다. 삼청각 아시죠?"

성북동쪽의 골짜기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한옥 건물이 바로 그 유명한 삼청각이었다. 삼청각은 1972년에 건립되어 1980년까지 당시 군사정권의 요정정치가 벌어졌던 산실로 대표되던 곳이다.

여야 고위정치인들의 은밀한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으로서 제4공화국 유신정권 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사향길로 접어들어 1990년대 중반에는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바뀌었으나 결국 경영난으로 1999년 말에 문을 닫았다.

그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울시에서 인수하여 지금은 공연장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운영을 맡고 있는 곳이다. 현재의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이다. 여섯 채의 한옥은 건물마다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으며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 숙정문 누각
ⓒ 이승철
곡장에서도 다른 여성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난 다음 그늘 밑에 앉아 과일로 간식을 들며 잠깐 쉬었다가 다시 성벽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숙정문에 이르니 이곳에도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숙정문은 1963년도에 사적 제10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서울의 성곽을 이루는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 9월에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는데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 또는 북문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로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었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도성의 북문이지만 남대문이나 동대문 같은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지난해 4월부터 개방된 곳이다. 지금의 숙정문은 1976년도에 복원한 것이다.

숙정문을 지나 조금 더 내려오자 말바위전망대 쉼터다. 이곳을 나오며 문화재 탐방 표찰을 반납했다. 이곳에서 성북동 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삼청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벽을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다가 오른편 숲 속으로 연결된 오솔길로 들어섰다.

▲ 무궁화가 피어 있는 삼청공원 산책로
ⓒ 이승철
"야아, 이제야 산길을 걷는 맛이 나는구먼."

딱딱한 돌 바닥의 성벽 길만 따라 걷다가 오솔길의 흙길로 들어서자 일행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평소 등산할 때마다 이런 흙길을 즐겼기 때문이리라. 삼청공원의 산책로 옆에는 무더위 속에서 피어난 무궁화가 화사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들을 반겨주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승철 기자는 '다마스커스 가는 길'이라는 여행기사와 함께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라는 등산 기사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북악산, #청운대, #삼청각, #성벽길,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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