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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8월

선아 "이번 수업 끝나고 중앙광장 파파이스에서 조모임 하자."
유진 "파파이스보다는 인문대 옆 스타벅스는 어때?"
대학생들이 학교 안 던킨도너츠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오후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풍경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학교 건물들은 꾸준히 유명 점포들로 채워지고 있다.

2004년 완공된 고려대학교 타이거플라자는 스타벅스·던킨도너츠·스테프핫도그·사누키보레' 등 다양한 점포로 가득 차 있다. 다른 대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 서울대 (투썸플레이스·카페소반), 연세대 (그라지 커피숍), 한양대 (파파이스·로즈버즈), 전남대 (스타벅스)등 다른 대학도 각각 들어서 있다.

교내 상업시설에 대한 의견은 '학교 수익창출과 학생 편의증진'을 근거로 한 찬성과 '학교공간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반대 쪽으로 나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학교에 상업시설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아예 대학교 자체가 상업시설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쇼핑몰·편의점으로 산학 협동?

▲ 대학교 캠퍼스 내에 들어선 여러 상업시설들이 들어서있다.
ⓒ 김한내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일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자율화 추진계획' 33개 과제를 발표했다. 그 중 눈에 띄는 점은 '학교 기업'에 대한 기준을 완화해 금지 업종을 102개에서 21개로 크게 줄인 것이다.

이번 조치로 숙박업·노래방·술집과 같은 업종들을 제외한 영화관·쇼핑몰·백화점·약국·편의점 등은 허가를 받았다.

학교 기업은 교내 특정 학과와 연계하여 관련 제품을 제조·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교육인적자원부는 2004년부터 이를 도입했다.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정책과 유정기 사무관은 "대학이 직접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학교의 등록금 의존도를 점차 낮추고 발전기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산학협력 분야를 다양하게 넓히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계획은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학교가 이번에 완화된 업종들과 연계하게 되면 사업 취지인 '산학협력'과 어긋나게 된다. 쇼핑몰·백화점에 특정학과와 연계된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계획은 지금까지의 상업화 논란과 확실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는 특정 업체가 캠퍼스 안으로 들어간 것이라면, 이제는 거꾸로 학교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사업체를 일구고 그것이 캠퍼스 내외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서울 도심에서 '고대 백화점'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한 대학교가 미용사업을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OO대의 미용실은 'OO뷰티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규모의 체인을 가지고 있는 미용업체들과 당당히 경쟁을 하게 된다.

▲ 지난 2005년 고려대학교 캠퍼스. 학내 곳곳에 'GLOBAL PRIDE'가 적힌 개교 100주년 깃발이 내걸린 가운데 앞쪽에 보이는 건물 '타이거 플라자'에 스타벅스 커피숍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 2011년 8월

선아 "나 오늘 공강 세 시간이나 되는데 뭐하지?"
유진 "너 머리하고 싶다며? 연세미용실 가봐. 연대 백주년 기념관에 있는데 싸고 잘한다더라."
선아 "아, 정말? 그런데 나 입을 옷이 없어서…. 성균관백화점이나 가봐야지. 거기 티셔츠 세일한다더라."
유진 "알았어. 그럼 쇼핑 잘 하고 저녁에 건국치킨에서 봐!"
지금까지는 성공 사례 적었는데...

교육인적자원부 임연준 사무관에 따르면 2007년 현재 168개 대학에서 학교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까지 학교기업의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특정 학교의 대표적인 몇몇 학과만이 경쟁력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성공한 학교들은 충분한 재정과 전담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경희대 한방재료가공학과의 건강보조식품 '경희대 오가피 홍삼대보원'이 그 예이다. 전북대 동물자원학과와 연계한 '전북대 햄'도 연간 5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반면 제주대가 2004년 7월부터 진행했던 '바이오텍 기능성식품공장'은 제주도 특산품인 감귤을 이용한 식품 개발을 목표로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 5월 폐업신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생명과학기술혁신센터(TIC) 김세재(50)소장은 "본원 연구원들이 고유 업무와 함께 '바이오텍 기능성식품공장'의 운영을 맡았기 때문에 식품사업에만 전력을 다하기는 역부족이었다"며 전문 인력의 확보가 학교기업 성공의 필수조건임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또 "학교는 전문적 경영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적인 기업 활동은) 더욱 어렵다"고 덧붙였다.

"망하면 등록금 인상되는 거 아냐?" "'명문대만 득볼텐데"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송아무개(21)씨는 "학교기업이 외부로 진출하는 것은 찬성"이라며 "학교 이미지에 맞게 적절히 추진한다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의 수업료가 학교기업 자금으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 윤정득(27)씨 또한 "학교기업은 별도로 예산을 측정해 반드시 그 안에서 경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유형선(24)씨 역시 "새로운 수익 창출의 창구라는 측면에서 찬성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방만하게 운영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학교의 책임있는 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익창출이라는 학교기업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식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동시에 학교기업의 자금이나 운영의 측면에 일정 정도 제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교육부의 '대학자율화 추진계획'에는 학교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그로 인한 학교 구성원들의 피해를 막을 대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구대학교 건축학과 2학년 이지혜(22)씨는 "기업활동은 항상 실패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 "부실한 경영으로 인한 손실을 보존하기 위해 학생들의 등록금이 인상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유정기 사무관은 "교육부는 정책만 만들었을 뿐 시행은 개별학교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 왼쪽은 경희대 한방재료가공학과의 건강보조식품 '경희대 오가피 홍삼대보원'. 오른쪽은 전북대 동물자원학과와 연계한 '전북대 햄'의 델리매장 1주년 기념행사와 상품(네모 안).
상아탑으로서 대학의 본질을 망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3학년 김민수(21)씨는 "점포 하나 세우는 것으로 수익창출이 쉬워지기 때문에 학교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학교기업 운영에 집중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가 기업운영에 집중하면 교육기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기업이 대학 서열화와 맞물릴 수 있다는 현실적인 비판도 제기됐다.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 4학년 박영민(22)씨는 "인지도가 있는 학교는 학교기업 홍보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는 수익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학교기업 자율화로 인한 혜택은 소수학교에게만 집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 33개조의 본격적인 도입에 앞서 학교기업화에 대한 논란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김한내·황승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학교기업, #상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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