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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가들의 냉소를 뒤엎고 날로 대중적 지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문국현 대선 예비 후보에 대하여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민주노동당 심상정 대선 예비후보다.

 

이에 대해 문국현은 일언반구 대꾸도 없다.기자들이 묻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그의 내면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므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는 또 얼마 전 한나라당이 그에 대하여 폄훼성 논평을 내 놓았을 때에도 별다른 대꾸없이 그것이 무엇이든 논평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한나라당 후보와 대비되는 자신의 비전과 구상, 그리고 정책 알리기에 열심이다. 오히려 자신과 한나라당 후보간의 논쟁의 장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가 어떤 감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감정배설적인 언어로 서로 물어 뜯는 과거의 정치판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언행이 상당히 신선한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얼마든지 비판하라. 논쟁의 장만 활성화되면 충분한 정책 콘텐츠로 눌러 주리라’ 뭐 이런 생각인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문국현 지지자들과 심상정 지지자들의 호기심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도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심상정 "사람입국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생산요소"... 맞는 말인가?

 

심상정이 문국현에 대하여 언론에 대고 처음 포문을 연 것은 8월 28일 <오마이뉴스>를 통해서였다. 심상정의 이 글에는 그의 문국현에 대한 생각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문국현 사장이 출마했다. 이른바 범여권이 또 한바탕 출렁일 모양이다". 문국현 입장에서는 아주 고맙게도 그는 문국현의 출현이 결코 미풍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그 다음 두 문단에서도 그는 문국현에게 아주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약간 길지만 줄이기 어려우므로 그대로 인용한다.

 

"문국현 후보는 실로 이명박 후보와 다르다. 불도저로 나라를 파헤친 사람과 산에 나무를 심어온 사람('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생명의 숲')이 같을 수 없다. 또한 현대의 무대뽀식 경영과 유한킴벌리의 평생학습 및 윤리경영은 사뭇 다르다. '한반도 대운하를 만들어 7-4-7을 이루겠다'는 이명박의 구호에 비하면 '창조적 지식근로자의 중소기업론'이 훨씬 현실성이 있다.

 

이명박의 경제는 가짜고 스스로의 경제는 진짜라고 한 것도 설득력이 있다. 그는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사람입국위원회에서 자신의 '뉴패러다임 모델'을 실행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그가 자랑하는 생산성 향상의 실적은 대부분 4교대제(노동자들을 4개조로 나눠 2개조는 일하고 1개조는 쉬고, 나머지 1개조는 교육훈련을 하는 시스템)가 설비투자의 가동률을 극대화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노동시간을 줄이고 교육훈련을 늘린다는 발상도 신선하다."

 

그러나 심상정이 보기에 문국현의 참신성은 여기까지라고 한다. 심상정이 보기에 문국현은 "영혼이 타락한 CEO와 비교해서 참신한 CEO이지 진정 노동자의 아픔을 아는 지도자는 아니"며, 문국현의 "사람입국은 여전히 노동자 등 대중을 생산요소로 바라볼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문국현은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말하면서 러시아와 미국의 자원, 한국의 경영능력, 북한의 노동력 식으로 모든 사람을 생산요소로 바라보는 CEO의 관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굳이 말하자면, 그의 뉴패러다임 모델도 '기계'라는 요소의 생산성과 '노동'이라는 요소의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구체적이라 했는데 심상정의 이 말은 대단히 추상적이다. 문국현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취급받는 과로상태를 벗어나도록 근로시간을 줄이고 대신 노동자의 자기계발 시간과 노동자의 교육훈련시간을 늘려서 생산성을 높이자"고 하니까 심상정이 "노동자를 생산요소 취급하느냐"고 따진다면 상당히 어리둥절할 것이다.

 

흔히 우스개 소리로 '삽질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이해하는 바로 그 의미는 "포크레인 시대에 포크레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직하게 삽질이나 하고 있다"는 의미, 즉 변화된 시대에 우수한 생산도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의미, 또는 "머리가 나빠서 몸이 고생한다"는 것이다.

 

생산도구·생산기술 발전을 왜 거부하나

 

문국현의 구상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하루에 10시간씩 삽질만 해 보아야 기업을 위해서도 노동자를 위해서도 큰 도움이 안되니까 이것을 4조 2교대제로 바꾸어서 8일 중 하루를 연구개발, 교육훈련 시간으로 빼내서 포크레인 정도의 우수 기계를 스스로 만들자. 그래서 공동노력으로 포크레인 정도의 우수기계가 개발되면 기업도 좋고 노동자도 좋고 급여도 높고 근로시간도 줄어 들고 국내외 시장도 넓어진다. 이게 바로 기업과 노동자의 상생협력이다.

 

그렇다면 '생산성 향상'이란 무엇인가. 생산도구가 '삽'에서 '포크레인'으로 일취월장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산도구나 기술이 동일한 상태에서 기업이 노동자의 작업시간이나 작업 강도를 높여서 생산성을 높이는 경우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시간과 작업 강도가 동일한 상태에서 생산도구나 생산기술이 일취월장하여 생산성이 높아지는 경우이다. 그런데 심상정이 전자를 거부한다면 나도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그가 후자를 거부한다면 나는 그에게 별로 해 줄 이야기가 없다.삽질과 포크레인 이야기 이외에는.

 

심상정이 문국현에 대해 정보가 부족해서 오해한다면 나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문국현이 '생산성 향상'이란 용어를 쓴다고 해서 그가 근로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생산요소 취급한다고 우기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노사 대타협의 모범 사례이지 노동자들이 경쟁업체보다 20% 급여 더 받기 위해서 '생산성'이 아니라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목매다는 그런 사례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심상정의 문국현 비판 중 FTA 관련 비판은 타당한 측면이 있으나 그가 대안이라고 내 놓은 '풀뿌리 공동체론'은 지나치게 지엽적이다.

 

심상정은 "이 땅의 수많은 각종 협동조합·사회적 기업·비영리기구가 스스로 사회적 일자리를 창조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적 서비스와 필수재를 공급하는, 그런 공동체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하는데, 사회적 일자리라는 것은 각국의 조세부담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회적 일자리를 강조하는 것은 복지수요에 대응하고 복지분야 고용을 늘려서 영세자영업자 과잉상태도 해소해 보자는 두세 가지 목표에 사회적 일자리가 부응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을 보면 전체 취업자 중에서 보건복지인력 비중이 우리보다 10%가 더 높은데(2001년의 경우 한국 2.25%, 영국 10.62%, 핀란드 13.86%, 덴마크 16.40%), 이렇게 보건복지 고용인력이 많다 보면 고용의 10%인 230만 명 정도가 복지분야 고용으로 흡수되므로 영세자영업 종사자 과잉 상태가 현격하게 해소되는 것이다.

 

한 해에 40만~50만개의 영세자영업자가 창업하고 또 그만큼 폐업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회적 일자리가 복지수요도 충족시키고 고용흡수효과도 크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의 가장 큰 관건은 어떻게 이들을 고용할 세수를 확보하느냐이다.

 

세수를 늘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주어진 GDP 성장률 또는 주어진 생산성 향상률 하에서 세율을 높이는 방법, 즉 증세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GDP 성장률 또는 생산성 향상률 자체를 높여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물론 양자는 택일의 문제는 아니고 둘다 추구해야 하지만 보다 더 저항이 적고 현실적인 대안은 후자라 할 것이다.

 

심상정, '생산성' 용어에만 너무 민감하다

 

나는 심상정이 '생산성'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왜 그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1인당 GDP'나 '1인당 생산성'이나 수치는 물론 다르지만 아주 유사한 개념이다. 전자는 "GDP(총부가가치+순생산물세)/인구 수"이고 후자는 "총부가가치/취업자 수"이니 경제성장률 높이자는 이야기는 생산성 높이자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이다. 심상정이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을 통해 생산성 높이고 경제성장률 높이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아닌데 왜 '생산성'이란 용어에 그렇게 민감한지 모르겠다.

 

심상정과 문국현은 '사회적 일자리 확충', '평생학습 강조'에서는 거의 대부분 의견일치를 보이는 것 같다. 지역클러스터 구축에 대해서도 의견차이는 없는 것 같다. FTA에 대해서는 문국현이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심상정의 발언은 백번 옳은 소리지만 말이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재원마련 방안에서 문국현은 증세, 감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을 아끼고 있으나 불가피한 증세는 거부하지 않겠다는 입장 같고 심상정은 구체적으로 사회복지세를 거론하며 증세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별 충돌이 없으나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과 이를 통한 세수 확보에 대해서는 심상정이 함구하고 문국현은 구체적인 대안들을 분명히 내놓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달라 보인다.                       


태그:#문국현, #심상정, #사회적 일자리, #생산성, #풀뿌리공동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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