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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환상으로 다가왔던 섬, 외연도
▲ 방파제 내게 환상으로 다가왔던 섬, 외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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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외연도(충남 보령시 오천면)는 환상의 섬이었다. 몇 년 전 TV에서 본 여름시인학교 때문이었다. 밤바다의 정취와 그것을 즐기는 시인들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난 그때 결심했다. 언젠간 꼭 가봐야지, 하고. 호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자, 외연도가 나왔다.

중부 해안의 가장 끝 섬으로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했다는데, 동네 사람 말을 들어보니 중국은 아주아주 멀단다. 외연도란 이름도 연기에 가린듯 까마득하게 보여서 붙여졌다고 한다. 분위기는 호도가 비교적 한적하고 안정돼 보였다면 외연도는 생동감이 있으면서 부산했다. 마을도 호도보다 두세 배는 커 보인다.

골목길의 아이들과 학교
▲ 아이들... 골목길의 아이들과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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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을 구하러 골목 뒤쪽으로 돌아가자 꽤 시끌벅적했다. 여러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던 것. 요즘은 도시에도 밖에 나와 노는 아이들이 없는데 퍽 신기했다. 우리가 어릴 때 놀던 기억도 나고 정말 사람이 사는 동네구나 싶었다.

민박을 정하고 당산으로 올라갔다. 외연도에는 봉재산, 당산, 봉래산이 있다. 당산은 천연기념물 13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는 산이다. 상록수림은 중국 제나라가 망할 때 전횡장군이 5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정착하면서 심었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이곳에는 전황장군을 추모하는 사당이 있고, 매해 전황장군도 추모하고 풍어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오랜만에 보는 파종 모습 반가웠다.
▲ 쪽파 파종 오랜만에 보는 파종 모습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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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앞에는 비교적 넓은 밭이 있는데, 한 쪽은 여럿이 다른 한 쪽은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쪽파를 심는 중이었는데, 옛날처럼 마늘만한 주황색 종자를 심고 있었다. 요즘은 종자도 수입산을 많이 쓴다고 해 다가가 물었더니, 이 여성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한다. 지난해 간직해 두었던 것을 심는 거라며. 오랜만에 보는 파종 모습, 참으로 반가웠다.

당산 앞에는 학교도 있었다. 아이들이 많으니 당연히 분교가 아닌 어엿한 외연도 초등학교다. 동네 분에게 '여긴 아이들이 많네요' 했더니, 어장이 있으니까 여긴 애들이 많아요, 한다. 어장이 있고 벌이가 괜찮으니까 나가서 살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산다는 것이다.

상록수림... 이곳에 들어가자마자 (모기)테러가 시작되었다. 오른쪽은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연결된 사랑나무.
▲ 사랑나무 상록수림... 이곳에 들어가자마자 (모기)테러가 시작되었다. 오른쪽은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연결된 사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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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나라 전횡장군을 모셔놓은 사당... 여기서 매해 당제가 열린다.
▲ 사당 중국 제나라 전횡장군을 모셔놓은 사당... 여기서 매해 당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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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상록수림으로 당산은 어두웠다. 그러나 당산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테러가 시작되었다. 그 무시무시한 떼는 바로 모기님들. 사랑나무까지 가는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팔을 쉴 새 없이 휘젓고 가야할 정도였다. 사랑나무와 사당만 보고 돌아나오는데도 무차별 헌혈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모기님들 친절도 하시지, 배웅까지 해준다. 한 번 맛 본 피 맛을 놓칠 수 없다는 집념, 정말 지독하게 따라 붙었다.

저녁을 먹고 밤바다를 보고 싶다며 길을 찾아 나섰다. 저녁은 매운탕을 시켰는데 간재미 무침에 미련을 있어 자꾸 물었더니 서비스라며 간재미무침 한 접시가 올라왔다. 인심 참 후했다. 그런데 얼큰한 회무침을 맨입에 먹을 수는 없고, 당연 참이슬을 불렀다. 섬이라 그런가 그 맛이 왜 그리 단지, 평소 두 잔이던 주량이 각각 반병씩으로, 둘이 한 병을 다 마셨다. 우리에겐 기록이었다.

어둡긴 하지만 밤바다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가게 내버려 둘 수 없으니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뒤따라 오는 한 사람. 나는 바다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아무튼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걷는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길이 나오고, 비탈길을 오르자 길이 넓어진다. 비스듬히 난 길을 오르니 벌써 바다가 보이는데 이크, 불빛이 날아 다닌다.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듯 날아다니는 그것의 정체는? 반딧불이다. 이건 하나 둘이 아니다. 밤바다는 고요하고 반딧불은 이쪽 저쪽으로 날아다니고. 내 행동이 만용이라는듯 못마땅해 하며 따라 오던 한 사람, 신이 났다. 여기가 반딧불이 서식처라며 신고해야 한단다. 먼저 갔던 반딧불이 고장, 무주보다 더 많다나. 동네 사람들한테 반딧불 얘길 했더니 '농약을 주지 않아서' 란다.

해식애가 발달한 북쪽 해안... 오른쪽은 큰 명금, 왼쪽은 작은 명금. 언덕 양쪽으로는 반딧불이 서식지다.
▲ 명금... 해식애가 발달한 북쪽 해안... 오른쪽은 큰 명금, 왼쪽은 작은 명금. 언덕 양쪽으로는 반딧불이 서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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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그 바다로 갔다. 바다의 이름은 명금. 오른쪽은 큰명금이고 왼쪽은 작은 명금이다. 바닷물이 동해안 못지않게 맑고 투명했다. 그리고 해안은 커다란 바위와 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짐을 줄이느라 돗자리를 가져오지 않아 걱정했는데 바위가 위낙 크고 평평해 돗자리가 필요 없었다. 파도는 꽤 센 편이었지만 반듯한 바위가 깔린 해안은 어디나 엉덩이를 대고 앉을 수 있었다. 누워도 될만큼 큰 바위도 있었다. 맞은 편 모퉁이로는 매(바위) 두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큰명금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매바위가 보인다.
▲ 매바위 큰명금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매바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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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많은 해변답게 작은명금으로 가는 길에는 바위가 촘촘히 깔려 있었다. 작은 명금도 마찬가지로 바위와 몽돌로 이루어진 해안이었다. 굳이 큰명금과 비교하자면 큰명금은 바위가 둥글둥글한데 반해 작은 명금은 바위가 삐죽삐죽한 모난 모양이었다.

큰명금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 섬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 바닷가 아이들 큰명금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 섬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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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명금을 보고 돌아오는데 섬아이들이 몰려와 수영을 하고 있었다. 보호자는 없지만 무척 행복해 보였다. 섬 아이들이 행복한 건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뭍으로 나와 살아도 늘 바다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와 그들이 생각하는 바다는 의미가 다를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점심 먹을 식당에 보관하고 이번엔 다른 바다를 찾아 나섰다. 동네끝으로 걸어나가자 커다란 까나리액젓 통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호도에서 본 까나리액젓통이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면 이쪽은 아주 큰 기업형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엄청나게 크고 많은 까나리액젓 통들...
▲ 까나리 액젓 통... 엄청나게 크고 많은 까나리액젓 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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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도 크게 형성돼 있다더니 까나리액젓도 무척 많은 양을 생산해내는 모양이었다. 어장도 까나리액젓도 이곳에서는 산업인 셈.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 아이들도 많아졌을 거고.

한전도 있었다. 한전을 끼고 옆으로 돌아나가자 좁은 길이 나왔다. 언덕에 올라서니 내려가는 길, 이번에는 가파르다. 동아줄이 연결돼 있어 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본다. 고라금이라는 바다다. 여기도 역시 바위와 몽돌해안. 오른쪽 끝으로 상투바위가 보였다.

고라금 오른쪽 끝에 있는 상투바위...
▲ 상투바위 고라금 오른쪽 끝에 있는 상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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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모여 있었던 바다가 어디인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모두가 황홀해하던 그 외연도가 어느새 환상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환상! 그것은 아마도 깨지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내 환상속의 외연도는 무인도처럼 고요하고 개끗한 섬이었다. 태곳적처럼 조금도 오염되지 않고 누구도 밟아 본 적 없는 처녀지 같은 바다 말이다.

그러나 내 눈으로 본 외연도는 그렇지 않았다. 동네도 생각보다 크게 형성돼 있었고, 공장처럼 거대한 까나리액젓단지도 있었으며, 어선도 무리를 이루어 정박해 있었다. 생전 처음, 여행이란 어쩌면 머릿속에 있는 환상을 일상으로 바꾸어 놓는 작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 외연도 풍어당놀이

약 300여년 전 조선 중엽부터 마을 뒤 당산 동백수림내에 중국 제나라 전횡 장군의 사당을 모셔 놓고, 섬주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당제를 올린 후 용황제와 함께 주민전체가 모여 화합다짐을 하는 행사. 매해 음력 정월 대보름에 열린다.

* 외연도 가는 여객선은

대천항에서 오전 8시 10분과 오후 2시에 있으며 요금은 16800원
소요 시간은 2시간 정도걸립니다.



태그:#섬여행, #외연도, #보령, #상록수림, #풍어당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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