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생이란 말처럼 많은 사람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이 세상의 철학자와 사상가, 문학가 등 소위 한마디씩의 말을 남기고 있는 현인(賢人)들 치고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시중의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름대로 모두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또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무엇을, 어떤 부분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일까? 그 답을 안다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대안도 마련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고는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그냥 그날그날 살아가는 날짜를 보태어 가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서글프고 한심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아침에는 생각하고, 낮에는 행동하고, 저녁에는 먹고, 밤에는 잠들라.”

W.블레이크는 <지옥의 격언>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결국은 죽기위해서는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고, 인생인 것인가? 글쎄다. 생각할수록 답이 궁해진다. 답답해진다.

그동안 많은 책을 손을 들었고, 한때는 꽤나 긴 시간동안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지만 내 삶의 방법과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 같지는 않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그냥 살아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들은 이를 ‘무덤덤하게’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는 ‘어찌하다 보니’라는 말이 더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인생이란 산마루를 넘는 것과 같다. 좌우 어느 측에도 미끄러운 비탈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방향을 택해도 미끌리어 떨어진다.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떨어지는 것을 몇 번씩이나 목격했고, 이런 데에선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L.비트게슈타인이 <반철학적 단장>에서 강조한 표현이다. 인생이란 그만큼 어렵고, 묘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우리 모두 한번쯤은 이런 쓸데없는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는 것도 좋지 않을까한다.

설사 그것이 시간낭비라 하더라도 내 인생을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는 것은 그 어느 행위보다도 값지다고 생각한다. 즐겁다고 생각하면 천국(天國)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지옥(地獄)일 수도 있다.

살아볼 값어치가 있는 곳이라고 여기면 매우 보람찬 무대일 것이며, 후회로 뭉쳐있다면 그만한 고통도 없을 것이다.

T. 칼라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진다.

“인생이란 단지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며, 그 두 가지를 지양하고 종합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커다란 기쁨도 커다란 슬픔을 불러올 것이며, 또 깊은 슬픔은 깊은 기쁨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이어 “자기의 할 일을 발견하고 자기의 하는 일에 신념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진리를 척도로 하지만, 그러한 그가 가지고 있는 진리보다도 그 진리를 찾기 위해서 맛본 고난에 의하여 개량되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참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연단 위에 올라가 나는 이렇게 인생을 생각하고 살아왔다면서 두 주먹을 부르르 떨 이유도 없다.

삶이란 대단한 것 같지만, 정말 별개 아닐 수도 있다. 눈을 감고, 더 이상 숨을 내쉬지 않는다면 그것이 인생의 끝이며, 곧 죽음이다.

우리는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일해야 한다. 숨을 쉬면서 그 많은 일들을 해내야 한다. 평상시에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숨이 고르지 않다는 것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숨이 가빠지면 몸의 어딘가가 좋지 않거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또 남을 속이거나 자신을 질책했을 때, 몸을 능력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였을 때도 호흡은 거칠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인생이 바람직할 것인가? 나는 어리석게도 아직 이에 대한 생각을 미처 정리해 보지 못했다.

A.콩트는 “감추는 것 없이 사는 것 하나로 살아가라”고 했는데 역시 고개가 끄덕여진다. A.아인슈타인은 “남을 위해서 사는 인생만이 값어치 있는 인생이다”고 했다.

내가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가는 별개로 하고, 그렇게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감추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갈등과 오해의 상당 부분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을 위한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싸움과 번민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말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뾰쪽한 수가 있거나, 답이 제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한가지만은 말해 두고 싶다.

가끔씩이라도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 클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정답은 아직 모르지만 전혀 틀린 답이 아닌 쪽으로 생각해 가는 과정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한다.

인생에 관해 가장 현실적인 명언을 남긴 R. 롤랑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자.

“인생이란 복잡한 것이에요. 무엇보다 먼저 매일같이 먹어야 하고 저녁에는 저녁밥을 먹어야 해요. 그 다음날도 또다시 시작해야 하고, 또 옷도 입어야 하죠. 몸․머리․손․발 등 모두 무슨 착의식이라도 하듯이 입혀야 하잖아요. 그래서 또 돈을 치러야 하고.... 인생이란 결국 돈을 치르는 것이겠죠.”

가슴에 담아둘 만한 이야기인 듯 하다. 인생 자체를 고민하고 답을 찾는 것보다, 롤랑의 말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돈에 여유가 있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삶의 차이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격차가 클지도 모른다.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은 아니겠지만, 없어서 곤란과 어려움을 겪고 몸과 마음이 그것으로 인해 지쳐있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것이다.

현실은 그러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인생이란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굽이치며 넘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해서 아래로 흘러가며 자신의 길을 지키며 나아간다.

땅으로 스며들기도 하지만, 갈증 난 모든 생물체의 목젖을 적셔주기도 한다. 물은 흘러가는 곳이나 담겨지는 것의 모양이 바뀌면 그에 맞춰 지나가거나, 담겨진다.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속성을 바꾸지는 않지만 모양을 바꾸어가면서 자신을 지켜간다.

물은 특정한 온도까지는 가만히 있을 뿐이다. 물을 100℃까지 끊여보라. 99℃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나 1℃만 더 열을 올리면 물은 갑자기 끓어오르면서 증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자신이 견딜 수 있을 데까지 참고 견디어 낸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죽 끓듯이 끓어서야 어디 진지하다 하겠는가?

물은 유약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물은 불보다 강하고 무섭다. 인생도 물의 흐름 같은 게 아닌가 한다. 조용한 흐름도 있을 것이고, 격한 울부짖음도 있다.

흐르다 금방 말라버리는 수도 있지만,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며 큰 바다로 흘러가기도 한다. 바람결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물의 한길 밑은 바람소리를 듣지 못한다.

내 인생의 물결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싶다. 어디까지 왔으며, 또 그동안 얼마나 물결이 거칠어졌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밤중의 조용한 산 계곡 물 마냥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아들과 딸 ,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태그:#인생, #천국, #지옥, #후회, #삶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