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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경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무한경쟁시대에 대학생들은 참 바쁘게 삽니다. 스스로 바쁘다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저 역시 대학생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4년 내내 학과공부에만 푹 빠지는 학생, 휴학 없이 졸업하는 학생이 드뭅니다. 제 주변만 하더라도 벌써 유학을 계획하고 있거나, 휴학을 준비하고 있는 선배, 동기들로 가득합니다. 과거와 같이 모두 학비가 부족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유는  ‘영어능력-학벌-학점-공모전-인턴으로 이어지는 취업 5종 세트’, 다시 말해 ‘스펙’이라고 불리는 ‘취업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기 위함입니다.

 

고등학생 3년 내내 대학만 들어가면 입시지옥도 해방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이젠 입학도 했으니 잔디밭에서 선배들이 건네주는 막걸리 한잔도 마셔보고, 커다란 교정에서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걷는 상상을 해봅니다. 온몸으로 사회에 저항도 해보고 싶습니다. 젊을 때 이렇게 생각만 하던 것들을 해보는 낭만적인 생활을 누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학점을 걱정하고, 대외활동을 알아봅니다. 학점이 높은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순수하게 학문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또, 흥미와 인간관계 위주의 동아리 선택에서 좀더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로 선택의 방향이 바뀝니다. 그러는 가운데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언제나 취업을 둘러싼 고민이 많습니다. 가끔은 나와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대학 친구가 나보다 하나를 더 틀리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최근 다양한 지식을 가졌으면서 한 가지 방면에선 최고인 인재를 회사에서 원한다기에 한가지 전공이 아닌 울며 겨자 먹기로 복수전공을 고려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정 인기학과에 학생이 너무 몰려 커트라인이 높아 그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대외활동을 하나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여러 개를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이력서에 꽉꽉 채울 것이 많아질 테니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도리어 학점 하락의 지름길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쌓은 경력들이 과연 유효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청년실업 100만의 취업난 속에서도 골인한 선배들의 말은 거의 바이블처럼 들립니다. 패션잡지에도 대기업에 새로 입사한 사원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당당한 미소 아래에 보이는 화려한 경력들은 제겐 참으로 벅차 보입니다. 여기저기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회를 쫓아 다닙니다. 그들에 비해서 저 자신은 너무도 작고 왜소하게만 느껴집니다.

 

방학에도 공모전, 각종 스터디 등으로 바쁩니다. 와중에 외국어는 꼭 배워야 할 것 같아 연수계획을 잡아보기도 하지만 시간과 비용 부족으로 계획으로만 그칩니다.

 

이렇게 하여 무력감을 잔뜩 얻은 학생에게 ‘꼭 대기업 같은 데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렇지. 눈을 낮추면 되지 않느냐’라는 핀잔 섞인 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낮추어 본 곳들도 하나같이 대기업과 별반 없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낮은 봉급과 이제는 빚이 된 높은 등록금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최소한 먹고 살만큼은 벌어야겠습니다. 좀더 노력하면 4대 보험이 보장되고 앞으로 가족들을 든든하게 책임지는 가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리들은 학벌에 갇혀 갖기가 힘듭니다. 유학생도 많습니다. 인크루트의 2007년 10월 2일자 ‘채용트렌드 5선’이라는 기사를 보니 요즘은 그런 사람들조차 입사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고 나면 마치 상품가치가 없어진 제품처럼 숱한 공모전이나 인턴십과 같은 대외활동의 제한에 걸려 더 이상 도전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매 학기 졸업시즌은 행복하기보다는 먼저 두려움이 앞섭니다. 마지막 학기마저도 입사가 결정되지 않은 졸업예정자들은 억지로 휴학을 하면서까지 신입사원 공채 시기를 늦추려 노력합니다. 더불어 매년 바뀌는 대학입시마냥 매 시즌 별로 달라지는 지원 커트라인을 보고 있자면 졸업도 못하고 이대로 졸업예정자로 살 것만 같습니다. 때로는 저 자신이 취업공포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석훈과 박권일 공저 <88만원 세대>(레디앙 펴냄)를 둘러싼 논란도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제목만 들어서는 40대의 일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현재의 20대가 결국 한 달에 88만원을 버는 비정규직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짱돌 대신 바리케이트를 들라는 다소 자극적인 광고문구의 책을 보아도 우리가 겪는 비정상적 사회에 대한 의문이 속시원히 풀리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 신조어는 28일 온라인 취업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7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2007년 부끄러운 뉴스' 9위에 십장생(10대들도 장차 백수를 생각한다), NG족(졸업을 연기하는 대학생),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과 함께 선정되었습니다.

 

최근 11월 28일 42개 대학 총학생회에서 모 후보 지지성명을 발표한 데,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먼저 이러한 상황까지 발생한 것에 대해 안쓰럽고 측은한 감정의 댓글들이 눈에 보입니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 직장을 못 구해 장가도 못 가고 부모 눈치 보는 젊은 실업자만이 실업의 고통을 이해 할 수 있으며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 통일, 민족, 애국, 애족, 개혁, 수구, 보수, 진보라는 단어는 공허한 정치인들의 말장난으로 들릴 뿐이다(shjung77)’ - <조선닷컴> 관련기사 100자 평 중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진영에서 많은 계획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단발 정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안목에서 나온 정책이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더불어, 앞으로는 점차 나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열정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대학생, #취업, #88만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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