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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말연시가 되면 평소 소원하게 지내던 사람들까지도 전화를 하는 터라 벨이 울리면 머릿속에선 누굴까~? 순간 많은 사람을 떠올려 보게 된다.

 

"여보세요~ ?"


"형님~ 저예요~"(인천에 사는 바로 밑에 동서)

"올해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마워~" 
"동서두~"

 

"별일 없으시죠.~?"
"응 덕분에 우린 잘 지내고 있어~"

 

"동서 넨~?"
"저희도 별일은 없는데... 큰애가 가끔 과로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턱이 빠지지 뭐예요." "그러다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많이 고통스러워해서 이번 기회에 원인치료를 해 보려고 알아봤더니 돈이 엄청 많이 드네요. 아무래도 시집보낼 돈 다 들어가게 생겼어요."

 

"그래도 고쳐서 보내야지 저대로 그냥 보냈다간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것 같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잘 한다는 서울에 있는 병원엘 며칠 따라다녔더니 힘도 들고 속도 상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대학까지 가르쳐 놓으면 한 시름 놓을 줄 알았는데 시집보내기 전에 건강 체크까지 해서 보내야 하니….  "자동차처럼 리콜을 요구하는 일은 없겠지만 맨 날 아프다고 병원 출입이 나 하면 어느 집에서 좋아하겠냐"고 했다. 

 

평소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을 않던 동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럴까~ 치과질환은 치료기간도 길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던데…. 한 군데도 아니고 치아와 턱을 동시에 교정을 해야 한다니 얼마나 마음이 심란할까~ 

 

헌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그런 동서에게 요즘 불편했던 나의 심기를 구구절절이  토해내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는커녕 오히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돈이라도 빌려 달랠까봐 미리 선수를 치는 건가~하며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영~ 마음이 편질 않았다. 결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주알고주알 형편을 얘기하지 않아도 두 집 다 빤한 살림, 아직 공부하는 애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봉급생활자의 처지라 마음은 있어도 누구에게든 선뜻 도움을 줄만한 경제적 인 여유가 없다는 것을 짐작하긴 해도 말 한 마디에 서운한 감정이 싹터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보니 좀처럼 잠도 오질 않고 한참을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든 것 같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창문이 훤했다. 자고 났는데도 어제 일이 떠올라 여전히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어려울 때 힘을 보태는 게 동기간이지 내 형편만을 내세우고 몰라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없지 않은가~

 

작년여름 조상님들을 위한 제를 지내기 위해 행사 날을 잡아 놓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취소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동서네가 적지 않은 돈을 선뜻 내놓은 덕에 무사히 일을 치르게 되었을 때 고마움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지금은 나 살 궁리하느라 지난날의 일은 까맣게 잊고 번민하고 있는 나 자신을 통해 인간의 간사함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그 때를 생각해서라도 형편껏 마음의 표시를 하는 것이 윗사람으로서의 도리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리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겐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보름정도만 있으면 봉급이 들어 올 것이고 당장 필요한 것은 카드결제를 하면 되기에 잔돈만 남기고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송금하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을 고민만 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운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하고 행복감까지 안겨줄 줄이야.  

 

다음 날 아침, 동서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저 도저히 그 돈, 받을 수가 없어서 도로 보냈으니까 너무 언짢게 생각 마세요. 대신 형님의 고마운 마음은 감사히 잘 받았으니까요. 전 그 거면 충분해요"라며 도리어 나의  성의를 무시하고 돌려보낸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동서한테 더 이상 뭐랄 수가 없어 "그런 법이 어딨냐"며 멋쩍게 전화를 끊었다.

   

언젠가 어느 어르신께서 혼잣말을 하시듯 복도 상대방이 받아 줘야 지을 수 있는 것이니 받아 준 이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이 뭔 의미인줄도 모르고 당연히 받은 자가 고마워해야지 어찌 거꾸로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의아해 했는데 이제야 그 깊은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삶이 고단한 까닭은 움켜쥐려고 하는데서 근심이 비롯됨을 알았다. 그리고 베풀어 비워내고 나면 오히려 그 자리에 기쁨과 행복이 채워진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나니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았던 행복감'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태그:#마음비우기, #공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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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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