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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날아든 문자해고 통지.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을 요구하며 6일 현재 926일째 농성중이다.
 별안간 날아든 문자해고 통지.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을 요구하며 6일 현재 926일째 농성중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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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근 30년 전이다. 1978년 이맘때다. 스무 살 안팎의 여성들이 노동조합 총회를 열었다. 험상궂은 사내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마구 똥물을 뿌렸다. 억지로 입을 벌려 먹이기도 했다. 한국 노동운동사에 전환점을 이룬 동일방직 사건이다. 경찰에 끌려간 사람은 '깡패'들이 아니었다.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랬다.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똥물을 퍼 먹인 야만극은 지금도 수구세력이 찬가를 읊어대는 '박정희 각하' 시절의 생생한 단면도다.

굳이 30년 전 일을 상기하는 이유가 있다. 3월 8일로 세계여성의 날 100년을 맞은 오늘, 대다수 사람들이 30년 전 과거와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여겨서다. 과연 그러한가.

똥물사건 일어난 30년 전과 오늘 얼마나 다른가         

"못 배워서 청소일 하는 것도 억울한데 비정규직이라고 마음대로 잘려도 아무 것도 못 하는 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네요."

꼭 1년 전이다. '여성의 날'에 집단으로 해고당한 뒤, 복직 투쟁 한 돌을 맞은 광주시청 청소용역 여성의 토로다.

3월 10일로 농성 930일째를 맞는 기륭전자의 노조간부는 절규한다.

"다시는 노예나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대다수 조합원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명쾌하다. "어디를 가도 기륭전자에서 받았던 설움, 인간취급을 받지 못한 상황이 극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릴없이 생계를 위해 투쟁 대오에서 떠난 여성들이 "다른 곳에서 또 해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해 온다.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의 회고는 더 가슴을 적신다.

"(처음 판매대에 섰을 때) 내 옆에 있던 언니는 방광이 안 좋았어요. 여자들 애기 낳고, 나이 들면 방광이 안 좋아지잖아요. 그 언니 얼굴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울컥 나와요. 언니가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옆에 있던 정직원이 손님들 다 있는데서 왜 지금 화장실에 가느냐, 그냥 좀 참으라고 면박을 주는 거예요. 하루 종일 화장실도 못가고, 다리에는 핏줄이 다 터지고…."

비정규직이기에 생리현상 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노동현실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앞두고 기륭전자, 이랜드, 뉴코아 노조원들이 3일 청와대 앞에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며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앞두고 기륭전자, 이랜드, 뉴코아 노조원들이 3일 청와대 앞에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며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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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대에 선 여성노동자들에게 방광염(오줌소태)은 어느새 '직업병'이다. 비정규직이기에 생리현상을 풀 자유도 없다. 그게 이 땅의 일터 현실이다.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더는 "노예나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여성 앞에서, 오줌소태로 고통 받는 여성 앞에서, 더구나 두 여성 모두 일터에서 쫓겨난 상황 앞에서, 묻고 싶다. 똥물을 먹은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는 게 과연 과도한가를.

분명히 증언한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똥물을 먹을 때 대다수 국민은 사실조차 몰랐다. 박정희 찬가에 앞 다투던 신문과 방송이 모르쇠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오늘 저 부자신문을 보라.

아니, 부자신문만이 아니다. 텔레비전에 넘쳐나는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라. 그곳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오는가. 재벌의 딸이나 아들은 드라마마다 넘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마음대로 잘려도 아무 것도 못 하는" 청소용역 여성은, "노예나 짐승처럼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은, 오줌소태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아름다운 여성은,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다. 1978년 봄을 살아갔던 사람들 대다수가 동일방직 '똥물'을 몰랐듯이 여전히 우리는 2008년 봄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여성노동자의 '오줌소태'를 모른다.

신자유주의 시대 민중운동 새 길 열어가는 사람들

그 결과다. 주저 없이 "민중의 시대는 갔다"고 부르댄다. '민중'을 거론하면 '1980년대식 논리'라고 눈 흘긴다. 기막힌 노릇이다.

저 엄혹한 시절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1980년대 민중운동을 열었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시대 민중운동의 새 길을 열어가고 있다.

다만, 30년 전에도 그랬듯이 우리 대다수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스스로 민중이면서도 민중임을 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태그:#민중운동,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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