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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문제를 다룬 연작소설집 <찔레꽃>을 출간한 소설가 정도상.
 탈북자 문제를 다룬 연작소설집 <찔레꽃>을 출간한 소설가 정도상.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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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에서 두만강을 건너온 처녀를 우연히 만난 후, 스스로 금기로 여겼던 유랑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 민간교류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쓸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경을 넘어 중국을 유랑하는 사람들을 '탈북자'로 만들어 한국으로, '기획입국'시키며 영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뻔뻔스럽게도 '북한인권' 운운하는 것을 보며 절망했고 그 때문에 이 작업이 긴급하다고 느꼈다."

1987년 단편 <십오방 이야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줄곧 한미문제, 분단문제, 통일문제에 천착해온 소설가 정도상(48)이 이른바 '새터민'으로 불리는 탈북자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연작 소설집을 출간했다.

한 여성이 고향을 떠나 이름을 3번이나 바꾸며 간난신고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눈물겨운 사연을 사실적이고 감수성 어린 문장으로 복원해낸 <찔레꽃>(창비).

현재 정도상은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또한 몇 해 전에는 남북작가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추진한 남한 쪽의 핵심 실무자 중 한 명으로 역할했다.

남북 민간 교류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사람이 북한에 비판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 '탈북자 문제'를 소설로 쓰기는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정도상은 단호했다. 당면한 시대의 주요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겠다는 작가의식이 그를 자극하고 추동했다.

<찔레꽃>은 충심이란 이름을 가진 북한의 젊은 여성이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인신매매꾼의 감언이설에 속아 고향인 함흥을 떠난 후 중국 흑룡강성 빈촌과 선양을 떠돌다 남한으로 들어와 노래방 접대부로 일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해간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레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분단'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 소설집에 대해 정도상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탈북자의) 숨겨진 비밀을,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집을 잃은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런 여성들에게 집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권의 실현"이라고 덧붙였다.

물에 젖은 담요 같은 회색빛 하늘 아래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24일 오후. 서울 마포에 위치한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실에서 정도상을 만났다. 내친 김에 소설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체된 남북관계의 향후 전망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과의 약속으로 시작된 <찔레꽃>... 탈북자와의 만남이 집필 계기

- 탈북자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는가.
"2003년쯤 일 거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큰아들과 함께 탈북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꽃제비(탈북한 아동)가 시장바닥에서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으며 살다가 결국엔 얼어 죽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걸 본 아들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고 하며 '얼룩말'이란 제목까지 정해줬다. 아들은 어린 탈북자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얼룩말들이 풀을 찾아 이동하다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떠올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북 교류 실무자로서 북한을 비판해야 하는 내용이라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작가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나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컸고, 결국엔 심양에서 한 탈북자를 만나 가슴 아픈 사연을 직접 듣고는 집필을 시작했다."

- 소설은 한 여성을 통해 남과 북이 동시에 겪고 있는 아픔을 보여준다. 주인공을 여성 탈북자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똑같은 탈북자라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훨씬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그들 대부분이 인신매매와 폭행, 강간 등의 끔찍한 경험을 한다. 탈북자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인권이다. 하지만, 탈북자의 입장이 아닌 돈벌이나 정권선전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인권은 위험하다. 나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숨겨진 추악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그 추악함에 고통 받는 여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 소재가 특별한 만큼 취재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신변이 위협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취재 비용이 만만찮게 들었다. 단편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선 중국을 2번 가량 오가야 했다.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이 완성되기까지 먼지 날리는 흑룡강성 오지와 영하 40도의 하얼빈과 목단강 등을 10여 차례 방문했다. 그러니, 이 소설은 손이 아니라 발로 쓴 것이다. 아직도 중국 현지에서 탈북자의 입을 통해 들었던 기막힌 사연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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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소설 속 주인공은 이름이 4개다. 북한에선 충심, 중국에선 미나와 소소, 남한으로 건너와선 은미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집이 없는 주인공이 수차례 이름을 바꾸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21세기형 유랑의 축소판이다. 이 여성에게 집을 찾아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든 길은 집에서 시작해 집에서 끝난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이에 더해 탈북자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인권적 착취와 유린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 결말이 비극적으로 보인다. 슬픔으로 끝을 낸 이유가 있는지.
"그렇게 읽었나? 탈북여성이 고통 속에서도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모습은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희망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기에 결말이 비극적이라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 진전을 부정하고 있다"

- 남북의 교류와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는가.
"학생운동을 하던 20대 때부터 꾸준히 가진 것이었다. 문학적으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북한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남과 북 모두가 남루했지만 아름다운 삶이 있었던 시절의 복원을 위해 힘썼으면 한다. 이건 변함없는 내 문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실 작가에게 제1의 조국은 모국어다. 모국어의 통일이 진정한 통일이라고 믿고 있다."

- 혼란을 겪고 있는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선결해야 할 건 뭐가 있을까.
"남과 북 모두가 서로 다른 것들을 소통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비판도 수용해야 한다. 그간은 애써 비판을 자제하며  만나려고만 했다. 이젠 비판하고, 수용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런 자세가 없다면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을 면키 힘들 것이라 본다."

- 이전 정권 때와 비교해 현재 남북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했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통치한) 지난 10년을 부정하며 탄생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부정도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지난 10년이 남북관계의 큰 진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견해가 다른 것 같다. 최근 남북관계의 경색은 (이명박 정부가) 역사적 진전을 애써 외면하는 것에서 생긴 파행이 아닐까 싶다."

- 최근 금강산 관광을 떠났던 한 관광객이 북한 초병이 쏜 총에 의해 사망했는데.
"우발적 사고라 할지라도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북한이 현장을 보존하고 조사에 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당국간 대화가 끊어진 상태에서 이 사건으로 대화를 재개한다는 것이 북한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남북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 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 남북간 대화 채널이 끊겼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최근 남북 민간교류 상황은 어떤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교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인도적 차원의 북한 지원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정부간 대화 채널이 사라진 상태에서의 교류와 지원이라 북한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것 같다."

- 얼마 전 탈북자문제를 다룬 영화 <크로싱>이 개봉했다. 여기서 묘사되는 북한 내 탈북 시도자의 인권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데.
"자기 변호와 정당화 그리고, 정권의 선전수단이라는 측면에서 과장된 부분이 있다. 탈북자들에게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탈북을 생계형과 정치형으로 나눠서 조사하고, 생계형 탈북자의 경우 그렇게 심하게 힐난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사 후 대부분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낸다고 들었다. 하지만, 동네로 돌아갈 경우 '배신자'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다고 한다. 이 따돌림이 재탈북의 이유가 되는 경우도 많다."

"삶에 대한 열망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향후 집필 계획을 밝힌 정도상.
 "삶에 대한 열망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향후 집필 계획을 밝힌 정도상.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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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열망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쓰고 싶다"

- '남한의 진보적 사회운동단체들은 북한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에 눈감지 않는 것처럼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지 않다.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북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방법이 보수진영과 다를 뿐이다.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해) 북한을 안정시킴으로써 인권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게 우리의 심정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인권문제도 진일보한다. 사실 입으로만 '북한 인권' 운운하는 이들 중에는 인권을 돈벌이 수단과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악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향후 계획하고 있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
"청소년들의 내면과 영혼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성장소설을 쓰려고 한다. 이와 함께 삶에 대한 열망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집필 예정이다. 이걸 통해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보게 될 것이다. 내 소설이 민중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갔으면 한다. 요즘 소설의 주인공들은 지나치게 세련됐다. 조금은 덜 세련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찔레꽃은 집 없이 떠도는 유랑민을 상징하는 꽃이다. 한국사회가 바로 이 유랑민에 다름 아닌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 장애인과 탈북자에게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의 내면화가 아닐까. 보잘 것 없는 내 소설이 그들 삶의 온전성을 회복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됐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태그:#정도상, #찔레꽃, #탈북자, #새터민,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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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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