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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더위를 피하려는 여성들의 노출도 점점 과해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마른 여자'가 미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잡지를 봐도 텔레비전을 봐도 마른 연예인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뚱뚱한 여자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냥 더위 속에서도 살을 꽁꽁 감추고 다닌다.

그런데 살을 감추기는 커녕, 통통한 몸으로 직접 모델로 나서는 것은 물론 쇼핑몰 '뚱뚱한 여자'까지 운영하고 있는 당당한 22살 여성 CEO가 있다.

'대한민국 뚱뚱한 여자를 대표하는 셀렉트 샵입니다.'라는 메인 글귀가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뚱뚱한 여자를 대표하는 셀렉트 샵입니다.'라는 메인 글귀가 눈길을 끈다.
ⓒ 편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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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뚱뚱한 여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 시대 통통녀들에게 "절대 기죽지 말고 센스있게 옷을 입으라"고 말하는 윤세미(22)씨가 그 주인공이다. 윤씨는 한 '여성전용 빅사이즈 의류 전문'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이기도 하다.

"나도 통통한 편이죠. 옷 살 때 위축되고 상처받았던 적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여성들만을 위한 쇼핑몰을 만들었죠."

통통하고 유쾌한 CEO 윤세미씨를 젊은이의 거리 홍대에서 만났다.

"언니한테 맞는 사이즈는 없어요!"

한 카페에서 만난 윤씨는 뽀얀 피부에 통통한 몸매를 가진 귀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올해 22살인 세미씨는 한 대학 패션 관련 학과에 다니다가 지난해 겨울 쇼핑몰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학교를 쉬고 있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서 재미가 없었어요. 딱히 저를 자극하는 것이 없어서 무료했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는 옷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다가 쇼핑몰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는 그림에 대한 재능을 살려서 티셔츠에 일러스트를 그려서 팔아볼까도 생각해보고, 아예 일본 스타일로 가볼 까도 생각해봤지만 위험부담이 클 것 같아서 '옷' 자체에 중점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옷을 좋아했다는 세미씨. 어머니도 서예를 하시고, 친언니도 미술을 전공하는 등 '미술 집안'의 끼를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다.

"어떤 옷을 팔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은 계속했지만 요즘 같이 너도나도 쇼핑몰을 만드는 상황에서 튀지 않으면 주목받을 수 없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어요."

평소에 옷에 관심이 많아서 옷을 사러 자주 다녔는데, 뚱뚱하다는 이유로 상처 아닌 상처를 받은 적이 많다고 한다. 예쁜 옷가게를 기웃 거리면 옷가게 직원이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언니한테 맞는 사이즈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나 인터넷 쇼핑몰 모델이 입었을 때 헐렁해보여서 옷을 샀는데 막상 와서 입어보면 딱 맞아 원하는 스타일이 나오지 않아서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이러한 자신의 실패를 계기삼아 자신과 같이 상처를 받았을 뚱뚱한 사람들의 불편을 채워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도 통통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적이 많지만 뚱뚱해도 충분히 옷을 예쁘게 입을 수 있다고 말하는 윤세미 씨.
 자신도 통통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적이 많지만 뚱뚱해도 충분히 옷을 예쁘게 입을 수 있다고 말하는 윤세미 씨.
ⓒ 편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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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빅사이즈 쇼핑몰이라고 해서 가보면 옷사이즈는 77·88인데 실제로 옷을 입은 모델은 44·55 등 늘씬한 모델이 대부분이더라구요. 그러면 실제로 뚱뚱한 사람이 입었을 때 나오는 스타일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실패하기 쉽잖아요. 그래서 아예 뚱뚱한 제가 모델로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날씬하면 예쁘겠지만 뚱뚱하다고 예쁜 옷을 입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상호도 처음에는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으로 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면 핑크레이디라든지(웃음) 하지만 솔직하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만큼 상호도 '뚱뚱한 여자'로 당돌하게 정했죠."

친구들 토익학원 다닐 때, 동대문 도매상가로

세미씨는 고작 22살인데 어엿한 인터넷 쇼핑몰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특히 고등학교 선생님이신 아버지가 "순간적인 생각에 일을 벌이는 너 같은 제자들을 많이 봤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만두라"고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세미씨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니 "지켜보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타 쇼핑몰과 비교해서 모니터도 해주시고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신다고 한다.

"쇼핑몰 운영하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냥 옷만 좋아하고 예쁜 옷 골라서 입고 사진 찍어서 올리면 되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세금 정산이나 웹 관리 등 모르는 것 투성이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여기저기 물어보느라고 전화기가 손에서 떠나질 않았죠."

지속적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게 위해서는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가 관건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인지도 등 여러 가지로 부족한 세미씨의 쇼핑몰에 옷을 대주겠다는 거래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시장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처음에 느낀 인상은 거칠었어요. 겁도 났구요. 텃세도 많이 부리더라구요. 지금은 물론 주말에 빼고 매일 시장에서 가서 얼굴을 익히니까 친해졌지만. '사회는 이렇게 냉정한 거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사람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보통 친구들이 용돈을 받아서 쓸 나이에 용돈을 오히려 벌어서 쓰는 세미씨. 휴대폰 요금 납부는 물론 모든 재정 관리를 스스로 한다고 한다. 평소에도 씀씀이가 큰 편은 아니라서 보통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사주는데 쓰는 편이라고 한다.

"아직 친구들은 거의 학생이니까 돈이 없잖아요. 그래도 저는 돈을 버니까 친구들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럴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워낙 활동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럴 때 가장 즐겁죠."

사회에 나와 보니 '대학 졸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 온다는 윤세미씨. 보통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라고 묻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싫었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열등감이 생겨 운영을 하다가 종종 한계를 느끼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서 그런가?'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고.

그러나 그것보다 '웹 운영 및 디자인' '웹 마케팅' 등 실질적으로 쇼핑몰 운영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세미씨는 시각디자인 계열의 대학 진학을 생각하는 중이다.

"쇼핑몰이 항상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 매출이 안 나올 때도 있고, 내 스스로 완벽하지 않아서 실수할 때도 많고. 또 제가 남의 말을 잘 들어서 잘 속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해요. 조금 더 완벽할 때, 자신 있을 때 시작했으면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쉽다는 생각이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제는 스타일 상담하는 팬도 생겨

사람 만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세미씨. 그런데 인터넷 쇼핑몰의 특성상 익명의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다고 한다. 익명이 보장 돼서 그런지 괜히 욕을 하는 손님들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도 있고 일일이 대처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손님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요. 계좌로 입금이 정말 안 됐는데 '입금을 했다'고 계속 그러시는 거에요. 심지어 나중에는 화를 내기까지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금액을 다 눌러놓고 '입금 확인' 버튼을 안 눌렀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다 이해 하지만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억울할 때도 있었죠."

통통한 사람이 직접 피팅모델을 해야 입었을 때 나오는 스타일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며 직접 피팅 모델을 하고 있는 윤세미 씨.
 통통한 사람이 직접 피팅모델을 해야 입었을 때 나오는 스타일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며 직접 피팅 모델을 하고 있는 윤세미 씨.
ⓒ 윤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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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배송을 늦게 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로 화를 내시거나 '됐어요. 그냥 환불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이나, '제가 원한 스타일이 아니에요. 차라리 환불해주세요'라고 말해 김을 새게 하는 경우도 많아요"라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다 이해하려고 한다며 웃는 여유까지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끝까지 웃고 친절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힘든 부분이라고 한다.

반면 자신의 쇼핑몰을 보고 '스타일이 너무 예쁘다'며 자신의 미니홈피까지 찾아와 스타일 조언을 구하는 중고등학생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어머니는 직접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내 딸이 뚱뚱한 편인데 멋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뚱뚱하다고 위축돼서 그런지 옷 사러 잘 안 가려고 하는데 이렇게 예쁜 옷을 살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신 적도 있다고 한다.

아직은 자신이 모든 일을 총괄해야 할 만큼 직원수나 규모면에서 크지는 않지만, 올 가을 신상품으로 월 매출 3000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뚱뚱하다고 어떻게든 가리려고만 하고 검은 옷만 찾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뚱뚱하든 날씬하든 둘 다 여자예요. 예뻐지고 싶은 본능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남들 시선이 어떻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라며 확고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 "살이 쪘다고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라는 생각을 스스로 버려야 해요. 한 번 위축되기 시작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거든요. 사업도 그래요. 제가 힘이 없고 자신이 없으면 매출도 똑같이 반응하더라구요" 라며 자신 스스로 당당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날씬한 여자가 입어서 예쁜 옷이 있다면 통통한 여자에게도 예쁜 옷이 분명히 있어요. 뚱뚱하다고 옷을 못 입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울리는 옷을 찾지 못한 것뿐이구요. 다만 어울리는 것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해야 하고 스스로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세미씨는 자신에게 더욱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 거울도 자주 보고, 스타일 잡지나 패션쇼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면서 열등감보다는 유쾌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당당해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태그:#뚱뚱한 여자, #윤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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