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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일본에서 판매되는 중국제 강낭콩 냉동식품에서 기준치의 3만4천배에 달하는 살충제 성분이 또 검출되었다. 게다가 이번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대형마트 체인점 '이토요카도' 계열에서 판매되고 있는 인기 제품이다.

 

16일자 <마이니치>에 의하면, 도쿄 하치오지의 한 주부(56)는 이 강낭콩 제품을 먹자마자 입술 근처가 마비되고, 가슴 통증을 느꼈으며 종국에는 입원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몇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고 섭취한 직후 이런 증상이 올 정도면 독극물 테러에 버금간다.

 

처음엔 "어휴 중국은 정말 왜 저러니?"라며 가벼운 수준의 짜증을 내던 아내가, 15일 밤 회수를 위해 공개된 강낭콩 제품의 사진을 보고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오빠! 우리도 저거 먹었어!"

"...... -_-;"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던 중국산 냉동식품 문제가 남 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내에게 물어 보니 한 달 전쯤에 카레 재료로 썼다고 한다. 한 달이나 지났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우리 어른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들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입을 마비시킨 그 콩, 나도 먹었다

 

일본의 식품 안전 기준은 세계적으로도 톱 클래스다.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적발 건수가 많다고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 농림수산성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 이후 발생한 해외식품 관련 사건 8건이 모조리 중국산 제품이다. 이건 좀 심하다. 

 

2007년 7월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중국산 냉동제품 문제

 

07년 7월 : 고등어 - 합성항균제 매러카이트 그린 검출

07년 8월 : 강낭콩 - 살충제 펜프로파트린 검출

               완두콩 - 제초제 프로팜 검출

08년 1월 : 조개 - 기준치 11배의 세균 검출

               만두 - 농약성분 메타미드호스가 검출, 경찰수사 착수

08년 2월 : 아스파라거스에서 살충제 호레이트, 고기 호빵에서 메타미드호스 검출

08년 5월 : 치킨까스용 가공식품 - 화학물질 프랄타돈 검출

08년 9월 : 급식용 우유 등 화학물질 멜라민 검출.

 

이쯤되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이 아니라 그냥 2개월에 한 번씩 일어나는 정기적인 이벤트가 된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터지면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에 나서는 게 일본의 전통인데, 농림수산성이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우거나 혹은 총리가 중국정부에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로 끝난다. 

 

16일 만난 먹을거리 저널리스트 아오이 나시유키는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는 건데, 문제는 그 수요가 너무 많아서 전수검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즉, 저쪽의 양식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급률을 높이는 건데 이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2채널>이나 <야후 재팬>의 게시판에는 일본 누리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정부 차원의 중국산 불매 운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중국제품을 불매하는 방법은 심각한 외교문제와 급격한 물가 오름세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2개월마다 발생하는 식품사고, 뭔 방법 없을까?

 

일본 재무성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7년 총 수출액이 약 84조엔, 수입이 73조엔으로 11조엔의 무역흑자를 냈다. 그 안에는 수출 6조4천억엔, 수입 3조2천억엔으로 약 3조엔을 넘는 흑자를 가져다 준 한국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상위 10개 교역국을 볼 때 유일하게 적자를 낸 국가가 중국(수출 13조엔, 수입 15조엔)이다. 아니, 흑자·적자와 상관없이 일본 전체교역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섣불리 감정을 건드렸다간 대형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속 놓아두면 스케줄(?)대로 약 2개월 후 또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해결책이 없을까? 무슨 농림수산성 관료도 아닌데, 팔짱끼고 고민하고 있으니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우리도 아키코네 가족들처럼 앞으로 절대 원산지 확인하고 중국산 사지 말아야 겠다."

 

아키코는 아내와 친한 동네 친구다. 강낭콩 사진이 공개된 후 우리 동네에서도 이번 사건은 화제가 되었다. 엄마들 사이에서 "너도 먹었니?", "아! 나 저번에 먹은 것 같아"라며 걱정하고 있는데, 오직 한명 아키코만 "그러길래 국산 먹으라니까. 난 마트도 원산지 표기 '정확'하게 하는 데만 간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집 반경 2km 이내에 있는 대형마트는 3곳 정도 된다. OK, 세이유, 마루에츠. 대부분 원산지 표기를 하긴 하는데, 100% 정확하게, 특히 눈에 띄는 곳에 부착해 놓는 곳은 마루이 계열의 '마루에츠'뿐이다. 문제는 이곳이 도보 20분이 걸릴 정도로 멀다는 것.

 

"아키코가 그러는데, 운동도 되고, 눈에 딱 들어오니까 일부러 원산지 찾을 필요도 없대. 오빠가 지금 가서 분위기 한번 보고 와라. 살도 뺄 겸." 

"...... -_-;;"

 

달밤의 체조도 아니고, 밤 11시에 도보로 20분이나 걸리는 마트에, '분위기' 파악하러 가는 녀석은 나밖에 없을거다. 

 

다이어트 시켜주는 중국, 눈물나게 고맙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마트에 도착. 문제의 지하 식료품 코너에 가보니, 오호! 가격표 바로 옆에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다. 물론 눈에 금방 들어온다. 야채 진열장은 어느샌가 전부 국산(일본산)이다. 점원 왈 "중국산 야채류가 너무 안팔려서 올해 3월부터 국산만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중국산이 거의 대부분인 냉동식품 코너쪽은 점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물어보니, 지금까지는 중국산, 국산(일본산) 관계없이 품종별로 분류를 했었는데, 15일 강낭콩 사건 이후 '중국산 여부'를 물어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아예 이쪽은 국산, 저쪽은 중국산으로 나누는 구획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것도 고객주의인가?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분위기 좋더라, 앞으로 거기서 사라, 빨리 걸으면 살도 빠지고 다이어트도 되고 좋겠던데"고 장난스럽게 말해 본다. 물론 가만 있을 아내가 아니다. 사진에 찍힌 중국산보다 약 1.5배에서 2배 이상 비싼 국산(일본산)의 가격표를 보고 반격한다. 

 

"어, 생각보다 비싸네. 처자식 먹여살리려면 오빠도 돈 많이 벌어와야겠당."

"...... -_-;;;"

 

내가 돈 많이 벌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도 시켜주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높혀 주는 중국.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태그:#중국산 냉동식품, #강낭콩, #멜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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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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