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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이 증시를 휘젓고 있다. 10월 들어서는 단 며칠을 제외하고 연일 주식을 순매수했다. 최근 한 달간 순매수한 금액만 2조 원이 넘는다.

연기금은 과연 증시 폭락을 막는 흑기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증시에서 10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연기금이다. 이런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앞으로도 연기금이 계속 증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가.

증시를 홀로 떠받치고 있는 연기금

지난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0.74로 표시되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0.74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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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양한 반응이 있다.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똑 부러진 반응이 없다. 국민들의 노후예탁금이자 공적기금인 연기금이 이처럼 불안한 곡예를 하는데도 말이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부터 적극적인 주식투자를 종용하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정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옳으면서 좋은 것인지 분명한 판단도 내려야 한다.

국민의 쌈짓돈이 증시에서 요동을 치고 있는데, 더 이상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연기금 운용에 가입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즉 '연금주권'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지 지금부터 심각히 판단해야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암초가 있다. 정부가 지난 8월 국민연금을 민간 금융투자전문가 7~10인에게 내맡기는 '국민연금 민간위탁'을 핵심으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앞으로 국민연금기금을 금융시장에 무분별하게 쏟아 부어 종속시키겠다는 것이고, 연금 가입자의 의사결정 참여도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연금주권'은 지금 낭떠러지에 서 있다.

낭떠러지에 서 있는 '연금주권'

독립성은 정부와 시장의 입김으로부터의 독립성이어야 하지 연금 가입자로부터의 독립성이 되어선 안 된다.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 전문성이지 투기의 귀재들에게 돈을 맡기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고수익을 쫓는 투자가 바로 투기다.

전문성은 국민 경제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 속에서 공공성과 안정성을 기준으로 기금운용의 목표를 충실하게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한다. 민간 금융투자전문가들이 과연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11월 국회에서 이 개정안의 통과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시민사회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의 돈인 막대한 연기금을 몇몇 전문 투기꾼들에게 넘겨주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 실패의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연기금의 몸통인 국민연금은 올해 8월을 기준으로 총 39조 원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연말까지 국내주식에 6조 원, 해외주식에 약 4조 원을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올해는 여유자금 중 약 17%를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012년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40%선까지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 근거는 오로지 수익성이다. 증시가 활황일 때는 물론 수익성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그 반대의 경우에는? 수익성 논리는 동전의 한 면만 보는 반쪽짜리 논리에 불과하다. 수익성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성도 큰 것이 상식이다.

주식투자를 더 늘리겠다고? 미국 캘퍼스를 보라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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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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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주식투자 확대론자들은 수익성 외에 해외 연기금도 주식투자 비중이 높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매우 악의적인 곡해다. 해외 연기금 가운데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미국의 캘퍼스(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나 네덜란드의 APG와 같이 높은 주식투자 비중을 갖고 있는 직업연금 사례를 갖고 공적연금의 주식투자를 합리화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미국의 공적연금 OASDI는 모두 국채에, 일본의 공적연금 GPIF는 70% 이상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른 척 할 것인가.

게다가 캘퍼스는 최근 부동산과 증시 폭락으로 인해 지난해 10월 말 2604억 달러에 달하던 자산이 불과 1년 사이에 1927억 달러까지 줄었다. 무려 677억 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여율 인상까지 고려되고 있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연금 가입자들과 납세자들만 피해를 보는 셈이다.

연기금 여유자금의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에 상당 금액은 아직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자산인 채권에 투자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2005년 '기금관리기본법'이 개정되면서 각종 기금의 주식투자가 가능해짐에 따라 주식투자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자체를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주식시장 자체를 당장 폐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연기금이라고 해서 주식투자에 뛰어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연기금은 주체가 일반 투자자와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수익성을 늘리려고 전체 여유자금 가운데 무작정 주식투자의 비중을 늘려서도 안 되고, 수익성만을 쫓아 투자 종목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

공공성과 안전성 위주의 투자는 불가능한가?

각종 기금자산운용의 원칙이 명시된 '기금관리기본법' 제3조의2 1항은 "기금관리주체는 안정성·유동성·수익성 및 공공성을 고려하여 기금자산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익성을 아예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기금이 투기적 주체가 아니라면 적정수익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연기금이 고수익을 올려야만 유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최초 설계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기금자산운용 원칙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지금까지 소홀히 취급된 공공성과 안정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공공부문 투자 확대와 함께 주식투자에 있어서는 '사회책임투자(SRI)'를 강화하는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이 기업의 이미지 전략처럼 활용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표를 기준으로 삼는 사회책임투자를 그대로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장기투자 수익성 위주로 공익성을 부분적으로 결합시킨 현재의 사회책임투자도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대안적인 투자전략으로 삼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사회책임투자 '시즌2'가 필요하다

사회책임투자가 대안적인 투자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성과 안정성, 지속가능성의 원칙에 따라 세밀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기업지배구조, 환경, 인권, 노동 분야가 투자의 지표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 지표는 신규 투자의 기준 뿐만 아니라 대국민 영향력을 지닌 대기업의 지분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경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이를 충족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로도 바람직하다.

국민연금은 2006년 3월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민간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는데, 의결권 행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어떤 기준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연기금 가운데 주식투자의 비중은 일정 비율 이하로 적정 관리하되 그 가운데 이와 같은 기준의 사회책임투자 비중을 점차 확대한다면,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물론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조절을 일정한 수준까지 가능하게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국민 경제 전체의 내실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강화는 연기금 본래의 사회적 성격을 좀 더 강화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연기금은 본래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스스로의 돈을 공공의 경제를 확립하는데 쓰자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 현실 가능하고 바람직한 대안이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태그:#연기금, #국민연금, #금융위기, #사회책임투자, #캘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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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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