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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의 황폐한 모습. 심마니가 삼을 발견할 때의 쾌감을 느꼈다.
▲ 텃밭 첫 모습 텃밭의 황폐한 모습. 심마니가 삼을 발견할 때의 쾌감을 느꼈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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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텃밭'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최장수 건물인 엘림관과 선교관 사이에 있는 쓰레기장을 지나면 내게로 들어 오는 입구가 보입니다.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면 평평한 터가 있지요. 그곳 귀퉁이의 조그마한 공터가 바로 '나'입니다.

선교관에 가려있고 깊숙한 곳에 있다 보니 아무도 찾지 않은 땅이 되어 버렸어요. 3년 전에 아저씨 몇 분이 가끔씩 놀러오셔서 저를 이따금씩 일구어 주셨지만, 그분들은 다른 일에 워낙 바빠서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발길이 뚝 끊어졌지 뭐예요.

이러다가 내 생명도 곧 없어지겠구나며 체념하고 있던 차에, 어느 젊은 청년이 사진기를 들고 내게 다가왔어요. 그 청년은 아저씨들과는 다르게 뭔가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찬 눈과 가슴을 지니고 있더라구요.

나는 '작은 텃밭'입니다

묵힌 땅을 엎으며, 묵혀진 마음도 뒤집어 엎었다.
▲ 땅 엎기 묵힌 땅을 엎으며, 묵혀진 마음도 뒤집어 엎었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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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혼자 와서 기도를 하고, 며칠 후에는 친구들 네댓 명을 데리고 와서 저를 소개하더군요. 무슨 사정인지는 몰랐지만,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결의를 다지는 분위기였어요. 처음엔 그냥 나를 심심풀이로 생각하려니 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들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들이 밟는 발길은 따스함과 애정이 담겨 있었어요. 일주일마다 규칙적으로 오는 그들의 방문에 지난 의심을 떨쳐버리며 '이들과 함께라면 새 생명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나지 뭐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있는 양분들을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올리게 되었죠.

올해 초였던가요. 그들이 비료 포대와 삽을 들고 와서 묵혔던 제 몸뚱아리를 뒤집어 엎고, 그토록 바라던 양분을 골고루 뿌려 주었답니다.

이 얼마만에 맡아보는 냄새며,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맛이던가! 정말 고마웠어요. 게다가 그들이 먹여 준 비료는 온갖 약품으로 뒤섞어 내 본성과 어울리지도 않고 내 능력을 억누르는 화학비료가 아닌, 유기농 비료여서 더욱 기뻤지요.

나는 그렇게 점점 다시 살아나고,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가 다 되어갔답니다. 햇살 맑은 어느 봄 날, 기다리던 친구들이 무거워 보이는 박스 하나를 들고 왔어요. 무공해로 자라고, 깨끗하게 소독된 씨감자더군요. 서툰 솜씨지만 도랑을 파고, 두둑을 쌓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감자를 심고, 토닥토닥 살며시 밟아 주었어요.

첫 작품으로 감자 심기를 훌륭하게 해 주었던 것이죠. 한 달 후에는 신문지와 양 손 가득히 까만 봉지를 들고 찾아 왔어요. 요즘 나와 잘 어울리는 오이, 고추, 가지의 모종이었죠. 신문지는 뭐에 쓰려는가 했더니, 잘 펴서 제 고랑을 덮더군요.

신문지로 대안 멀칭을 한 후에 모종을 조심스레 심었다.
▲ 대안 멀칭 신문지로 대안 멀칭을 한 후에 모종을 조심스레 심었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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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보온과 잡초 방지를 위해서 내 위에다가 까만 비닐을 덮는데, 이들은 오래도록 썩지 않는 비닐에 숨막혀할 나를 생각해서 대안적으로 금방 분해되는 신문지를 사용했던 거였답니다. 와우! 이렇게 친절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니! 놀라움 반, 감사함 반으로 나는 그날부터 있는 힘껏 모종 친구들을 품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꼭 필요한 비도 하늘에서 내려 주어 더욱 힘 쓸 수 있었구요.

"건강하고 이쁘게 커줘서 고맙다, 잘 먹을 게"

감자 줄기가 올라오는 즈음, 놀고 있던 내 몸 일부분에 잎채소를 심어 주었어요. 내 주특기가 잎채소 빨리 자라게 하는 거 거든요! 소산물이 없어서 금방 지칠 수 있는 시기에 잎채소를 금세 자라게 했더니, 알아서 잘 뜯어 가더라구요. 평소엔 잘 안 보이다가 수확할 때가 되니 오랜만에 나타난 어떤 남자 친구는 "정말 빨리 자라는구나. 건강하고 이쁘게 커줘서 고맙다. 잘 먹을게"라며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했지요.

내가 키운 상추류는 매우 부드럽고 달콤했답니다. 이윽고 모종의 줄기가 크게 자라자,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기둥을 세워 비와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주기도 했답니다. 신학생들이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나 대견스럽기까지 하더라구요. 자세히 봤더니 농촌희망재단에 다니는 어떤 분이 간사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상추의 놀라운 생동력에 감동하고 감사드렸다.
▲ 상추의 힘 상추의 놀라운 생동력에 감동하고 감사드렸다.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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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배려로 만든 부목 덕분에 기울어지지 않고 올곧게 자랄 수 있었어요. 내가 키운 모종도 곧 열매를 맺어 따 가도록 했습니다. 고추는 많이 열렸지만, 가지와 오이는 많이 못 만들었답니다. 가지와 오이는 특성상 강한 햇빛이 많이 필요한데, 옆 나무 그늘에 가려서 햇빛을 듬뿍 받지 못했거든요. 감자도 그럭저럭 맺긴 했으나 그리 크게 자라진 않았어요. 학생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며 애쓴 노력에 부합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답니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짓궂었거든요. 인간들은 자기에게 당장 피해가 없어서 회복시킬 노력과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데, 생명체는 기후변화에 예민해서 영향을 강하게 받는답니다. 절기에 따라 기후가 적절히 바뀌어야 건강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는데, 올해는 절기가 가장 심하게 맞지 않았고, 이상기후가 오래 계속되어서 참 힘들었어요.

깨끗한 감자. 농약을 안 쳐서 크기는 작았지만, 매우 부드럽고 맛있었다.
▲ 감자 깨끗한 감자. 농약을 안 쳐서 크기는 작았지만, 매우 부드럽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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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조건과 부족한 양분을 농약으로 보충하기 일쑤인데, 친구들은 농약을 결코 쓰지 않으며 아쉬운대로 만족해 하더군요. 내가 처음으로 인간들에게 배운 가르침이었답니다. 그래도 이상기후가 더 심각해질 것 같아 계속 걱정은 되요. 지금이라도 기후에 대해 민감해하며 각성하여 자연의 순환구조를 깨달아 나같이 작은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

수확하는 날에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어요. 내년엔 더 많이 필요해요.
▲ 수확하는 날 수확하는 날에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어요. 내년엔 더 많이 필요해요.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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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올해 농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는 듯 해요. 이들이 처음에 올 때는 커플과 데이트 하려고 시작한 친구도 있고, 지루한 학교 생활에 색다른 활력이 될 것 같아서 함께 했던 친구도 있고, 친한 친구의 부탁에 거절 못해서 억지로 끌려 온 학생도 있었지요.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각이 바뀌고 몸이 거듭나면서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교감을 나누게 되었어요.

나와 함께 생명을 심고 평화를 노래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나봐요.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땅을 살리는 것은 신을 몸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임을 몸으로 배웠나봐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년엔 나를 더 넓혀준다더군요. 그러면 친구들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멋진 친구들 덕분에 올해는 참 행복했어요. 희망을 만났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당신도 함께 해서 땅과 흙, 작물에게서 뿜어 나오는 맑은 기운과 생명의 창진성을 받아 보세요. 딱딱한 책상에 앉아, 차가운 시멘트만 밟으면서 할 수 있는 공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예요.

또한 좋은 사람들과도 깊고 진솔하게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될거예요. 혹시나 너무 바쁘거나 몸이 둔해서 내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마음 속에라도 작은 텃밭 하나 키워 보세요. 당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다른 삶을 기다릴게요. 당신도 '작은 텃밭'입니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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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생태운동, #텃밭,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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