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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씨는 아내와 함께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 홍민호씨와 그의 아내 이상연씨 민호씨는 아내와 함께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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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고개는 장복산 기슭을 훑어가며 쉬엄쉬엄 올라야 한다. 창원 안민동에서 오르는 길은 제법 팍팍하다. 그렇지만 올해 같은 가뭄에 장복산 자락은 오색단풍으로 여간 불그뎅뎅한 게 아니었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산마루 길 가장자리에는 휴일나들이 객들만큼이나 차가 빼곡했다.

안민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창원 시내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창원은 천주산 봉림산 비음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으로 도시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다. 때문에 근래 우후죽순처럼 지어진 아파트 숲으로 도시의 조망은 그다지 시원스럽지 못했다. 다만 계획도시라는 이름값을 하듯 바둑판처럼 쫙쫙 뻗어있는 모양새가 여느 도시와는 달랐다.

그에 비하여 고갯마루 건너 진해는 쪽빛바다와 잇닿아 있어 시원한 풍경이었다. 먼 바다의 비경이 청잣빛 가을 하늘과 한데 맞물려 있어 와락 껴안으면 멀리 올망졸망한 섬들이 다 안길 듯 평화롭다. 그저 감탄사가 아니다. 전망대에서 본 만추의 풍경이다.

휴일 민호씨 부부는 안민고개에 가게를 차린다.
▲ 안민고개에 위치한 민호씨 포장마차 휴일 민호씨 부부는 안민고개에 가게를 차린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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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전망대 맞은편에 옛날전통호떡을 파는 가게 하나가 눈에 띈다. 1톤 화물차를 개조한 포장마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자그마한 짐칸에다 소소하게 차렸다. 호떡 굽는 판에다 풀빵과 와플파이 틀까지 다 갖췄다. 부부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오직 빵 굽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고소한 밀가루 단내가 가을 향취에 버물어져 콧속을 후벼댄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오직 빵 굽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부부

시장하던 차에 동행했던 제자들과 아내 몫으로 풀빵과 와플파이를 주문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 내외는 말이 없다. 다만 손짓으로만 응답할 뿐이다. 알고 보니 청각장애자였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풀빵이 노릿하게 구워져 나왔다. 아저씨가 환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인다. 사천 원이란 얘기다.

민호씨 포장마차에 먹을거리는 세 가지다.
▲ 민호씨 가게 메뉴 민호씨 포장마차에 먹을거리는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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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하자마자 금세 두어 개 겹쳐먹었다. 잊고 지냈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다. 한데 자꾸만 눈이 포장마차로 쏠렸다. 줄 지어 선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빵 굽는 데만 정성을 쏟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까닭이다. 빵 하나하나마다 애틋하게 닿는 손놀림이 진중하게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얘기 좀 해도 되겠느냐는 손짓을 보냈더니 종이에 글로 써달란다.

▶ 두 분 일하는 모습이 하도 보기 좋아서 오마이뉴스에 소개하고 싶은데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랬더니 남편이 환하게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낙한다는 몸짓이다. 먼저, 통성명을 했다. 홍민호(청각장애자, 44세), 마흔넷의 동갑내기 그의 아내(이상연)도 청각장애자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금방 서로의 의중을 알아차린단다. 쪽지가 거듭 오고갔다.

민호씨는 청각장애자다. 그래서 쪽지로 대화했다.
▲ 쪽지대화 민호씨는 청각장애자다. 그래서 쪽지로 대화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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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지닌 민호씨와 쪽지로 대화했다.
▲ 쪽지대화 청각장애를 지닌 민호씨와 쪽지로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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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호씨,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나요?

민호씨 부부는 12년째 옛날전통호떡 굽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손놀림이 민활하다. 쪽지를 권내면서 대화하는 중에도 민호씨는 연방 반죽을 떼어 호떡을 빚고, 아내 상연씨도 풀빵 굽느라 손놀림이 바쁘다. 민호씨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그런데도 신심을 다해 빵을 굽는 부부는 너무나 즐거운 표정이다. 때마침 산에 올랐던 등산객들이 줄을 잇는다. 갓 구워낸 호떡풀빵들이 간단없이 팔려나간다.

민호씨는 호떡과 와플파이 담당이다.
▲ 반죽을 떼고 있는 민호씨 민호씨는 호떡과 와플파이 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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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씨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많다.
 민호씨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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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호씨, 부인이 참 곱네요. 언제가 가장 예쁘나요?

호떡을 굽다말고 쪽지를 훑어보던 그가 한동안 곧추 서있다. 무슨 결례를 했을까 싶어 마음 졸이는데,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그가 내민 쪽지를 보고서야 의구심이 가셨다. 그는, 자기 아내가 가장 예쁜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던 거다.   

 ▶ 아내는 언제나 웃는 얼굴, 부드러운 마음씨가 좋아요.

힘주어 쓴 그의 진심이다. 그러고 계면쩍은 듯 사뭇 얼굴을 붉힌다. 아내 상연씨도 그런 민호씨에게 선한 웃음을 보낸다. 자꾸만 정감어린 시선이 민호씨 얼굴에 가 닿는다. 부부는 비록 서로의 말은 듣지 못해도 눈빛 하나로도 서로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표정이다. 그 사랑 따습다.

민호씨는 '아내는 언제나 웃는 얼굴, 부드러운 마음씨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 민호씨 아내 민호씨는 '아내는 언제나 웃는 얼굴, 부드러운 마음씨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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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쪽지로 말문을 트고 나자 민호씨와 필자는 금세 친해졌다. 민호씨가 연방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운다. 처음은 자기 아내가 가장 예쁘다는 것이고, 다음은 자기가 굽는 호떡이 최고라는 뜻이란다. 그러고 또 한번 엄지손가락을 우뚝 세운 것은 자기를 알아주는 필자가 좋다는 얘기였다.

민호씨가 구운 옛날전통호떡, 추억이 곱살아나는 맛이다.
▲ 호떡을 든 민호씨 민호씨가 구운 옛날전통호떡, 추억이 곱살아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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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손짓 눈짓으로 얘기했더니 굳이 쪽지를 통하지 않아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 느끼고 있는 것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민호씨는 참 세세하고 다정한 심덕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쑥 민호씨가 호떡 두 개를 권한다. 하지만 얼른 받아들지 못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그렇게 민호씨 호떡가게는 붐볐다.

▶ 민호씨, 어느 때 보람을 느끼나요?
12년째 아내랑 이 일을 하며 충만하게 살아요.

민호씨는 12년째 아내랑 이 일을 하며 충만하게 살고 있다.
▲ 민호씨 아내의 환한 얼굴 민호씨는 12년째 아내랑 이 일을 하며 충만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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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씨가 권낸 쪽지에 쓴 즉답이다. 아내랑 지금처럼 함께 일할 때 가장 흡족하단다. 반죽을 떼고 있는 그의 손놀림이 거듭 바빠진다.

민호씨 포장마차에는 세 가지 먹을거리가 있다. 옛날전통호떡과 풀빵, 그리고 와플파이다. 커다랗게 빚은 전통호떡은 3개 2천원, 풀빵은 한 봉지 2천원, 와플파이는 천원 받는다.

그러나 그중에서 민호씨는 '옛날전통호떡'을 최고로 꼽는다. 필자가 먹어봤더니 '과연! 이 맛이야!'를 연발할 만큼 깊은 맛이 혀끝에 오롯이 남는다. 

민호씨 부부가 열심히 일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연신 좋아서 눈 맞춤을 하는 민호씨가 고슬고슬하게 잘 익은 호떡 두 개를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이 마치 예닐곱 개구쟁이 같다. 청각장애를 가져 통상적인 일을 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아내와 함께 이 일을 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아내랑 지금처럼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

주변에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비록 그가 장애를 가졌다고 해도 장애는 시혜나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몸이 불편할 따름이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다. 때문에 장애자를 동정이나 애린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그들을 동반자라고 인식한다면 ‘자립’ 할 수 있는 의지를 갖도록 배려해야 한다.

민호씨 부부는 호떡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게 그들의 삶의 의미다.
▲ 민호씨 부부 민호씨 부부는 호떡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게 그들의 삶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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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씨 포장마차에는 연방 손님이 잇따른다.
▲ 민호씨 가게를 찾는 손님들 민호씨 포장마차에는 연방 손님이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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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보면 그저께 만난 민호씨 부부는 자립, 자활의지를 가진 넉넉한 사람들이었다. 민호씨는 12년째 아내와 옛날전통호떡을 굽으며 행복하게 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굳이 한 장소만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부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창원, 마산, 진해를 마다하지 않고 간다고 한다. 비록 호떡을 굽는 미미한 일이지만 장애자라고 해서 소외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더 붐비는 곳을 찾는다고 한다.

민호씨는 장애자로서 자립할 수 있다는 의지가 굳은 사람이다.
▲ 홍민호씨의 환한 모습 민호씨는 장애자로서 자립할 수 있다는 의지가 굳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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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씨 부부와 헤어지면서 서로 손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했다. 다시 만나고픈 열망에서였다. 민호씨가 선뜻 동의했다. 그러고 쪽지를 건넨다.

▶ 문자요망

전화할 때는 반드시 문자로 하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또박또박 눌러 쓴 쪽지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민호씨의 따뜻한 온기가 가득 느껴지는 듯 손끝이 훈훈했다.

오늘 민호씨한테 지기로서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을 담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고맙다고 했다.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겠단다.

언젠가 민호씨 부부를 초대해서 그가 최고로 삼는 호떡 만드는 비법을 배워야겠다. 반죽을 빚는 그의 민활한 손놀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야기는 꼭꼭 새겨둘 만큼 훈훈하고 정겹다.

덧붙이는 글 | '청각장애자 홍민호 씨가 세상사는 이야기'는 홍민호씨 본인의 동의 하에 기사와 함께 사진을 싣기로 하였습니다.



태그:#청각장애자, #자립, #시혜, #동정, #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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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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