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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프랑스국립퐁피두센터특별전이 오늘 3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주제는 현대미술에 나타난 '낙원'과 화가들이 그린 '천국'이미지다.  

 

'황금시대-낙원-풍요-허무-쾌락-전령사-조화-암흑-되찾은 낙원-풀밭위의 점심식사' 10개의 테마별로 전시한다. 2006년 루브르박물관, 2007년 오르세미술관에 이어 2008년 퐁피두센터의 소장품까지 프랑스 3대 미술관이 한국 땅을 다 밟은 셈이다.

 

이번 전의 서막,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이번 특별전의 주제는 프랑스고전주의를 연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에서 온 것이고 또한 이는 로마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쓴 '아르카디아'에서 온 것이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중부에 있는 실제지방으로 여기를 축복과 풍요의 땅으로 목동들이 음악을 즐기는 낙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게 되는 프랑수아 자비에 라란의 '양떼'는 바로 그런 이미지다. 동양에는 '무릉도원'이 있듯 서양에는 '아르카디아'가 있다. 양은 사람들에게 젖과 옷과 고기를 아낌없이 주니 낙원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풍요와 이상향을 상징한다. 이를 설치미술로 보여주니 더 실감난다.

 

이번 특별전의 백미,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1948)'는 이번 전의 백미로 보들레르가 시에서 노래한 인공낙원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마티스는 '악의 미'로 현대시를 연 보들레르를 좋아하였다. 그의 시에서 따온 '호사, 고요 그리고  쾌락(1904)'이라는 작품을 그렸고 그의 시집 <악의 꽃(1947년 판)>의 삽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화면을 단순해보이지만 춤추는 듯한 율동감과 현란한 색채로 이를 대체한다. 특히 그의 붉은색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원숙한 색으로 말년의 황금시대를 빛낸다. 작가는 이 시기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색을 표현함에 있어 지금처럼 확신을 가진 건 처음이라네"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퐁피두센터 부관장 오탱제씨는 모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마티스의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풍요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한 가장 아름다움의 결정체이다"라고 했다.

 

열정적 에로스에서 맛보는 환희의 세계를 그리다

 

 

이번엔 피카소의 '누워있는 여자'를 감상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마티스와 피카소는 서로에게 열렬한 팬이면서 또한 날카로운 비평가였다. 마티스가 경쾌하고도 현란한 색채로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면 피카소는 분출하는 열정적인 에로스의 환희를 맛보았다.

 

누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의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을 동시에 다 보고 싶은 것이다. 피카소는 한 곳만 봐도 다른 곳을 다 볼 수 있는 3차원 입체파미술을 이렇게 형상화했다.

 

여기 주인공은 피카소가 40대에 만난 10대 어린 애인 마리-테레즈다. 지그시 감은 소녀 꿈꾸는 듯한 눈빛과 그 주변을 흐르는 관능과 열락의 세계가 빛난다. 탱탱한 피부와 풍만한 엉덩이와 젖가슴의 볼륨감과 완만하게 부드러운 어깨선은 정말 눈부시다. 같은 해 그려진 그의 유명한 '꿈'도 같은 분위기다. 피카소가 죽자 그녀는 자살한다.

 

1948년, 노동자의 천국은 피크닉과 유급휴가

 

'여가'는 레제의 대표작으로 프랑스 노동자의 이상향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명암과 명쾌한 색채와 인체와 자연을 기계부속품처럼 바꾸는 독자적 입체파를 열었다.

 

1936년에 프랑스좌파가 정권을 잡자 유가휴가를 제정한다. 그러다가 그 세력이 약해지다 나치점령 하에서 열렬한 항독운동으로 국민의 큰 신뢰를 받는다. 그래서 피카소는 1944년에, 레제는 1945년에 프랑스공산당에 가입한다. 하지만 레제는 어떤 이념보다는 인간이 자본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휴머니스트였다.

 

근년에 우리도 토요휴무제가 생겼지만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몸 철학을 바탕으로 노동자가 건강하고 행복한 명랑사회를 이루려는 염원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는 OECD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노동자들의 웰빙(복지)이 시작될 무렵의 것이다.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낙원

 

프란시스 피카비아는 만 레이, 마르셀 뒤샹과 함께 초현실주의의 개척자로 1912년 '황금분할(Section d'Or)그룹'에 가입한다. 1913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아모리쇼'에 참가해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리고 기계를 여체로 비유하며 남녀의 격한 성애처럼 그린다.

 

'봄 풍경 속 남녀'는 낙원을 상징하는 봄의 전령사는 왔으나 아담과 이브처럼 언제 추방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이다. '불독과 함께 있는 여인들'은 세련된 감각으로 성인잡지 분위기에 예술의 옷을 입힌다. 불독의 시선은 남성적 관음증을 빼닮았다. 

 

낙원 속 지옥인 허무(바니타스)와 죽음

 

브라크는 건축 장식을 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처음엔 야수파의 영향이 있었으나 1907년부터는 자연이 뿔과 원통으로 보는 세잔의 발상에 공감하고 기하학 형태를 도입한다. 그리고 브라크는 당시에 입체감 풍부한 '악기'그림을 유행시킨다.

 

브라크보다 6살 아래인 키리코는 초현실주의자답게 기존가치의 전복자였던 니체를 좋아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형이상학적 회화'(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몽환적 회화)라고 칭하기도 했다. 황량한 분위기 속에 참을 수 없는 불길함과 적막함을 불러온다.

 

'오후의 우울'을 보면 담 너머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증기기관차가 지나가는데 이는 근대화를 상징한다. 거기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근대화 속 폐허 혹은 죽음과 허무(바니타스)'를 암시한다. 그리고 고환을 상징하는 '아티초크'(엉겅퀴같이 생긴 지중해성 식용식물)를 그린 건 당시 유행한 프로이트의 영향이다.

 

암흑 뒤에 광명은 더 밝다

 

호앙 미로는 파울 클레와 함께 독특한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한국관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말장난 같지만 미로의 그림은 미로(迷路)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미로는 그만의 시적 개념을 기호와 상징으로 재창조하였다. 그 속에는 리드미컬한 울림이 있다. 한편 꿈과 환상의 이미지는 관객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리고 상징화된 그림의 소재는 반복된다. 사물을 여러 형태의 선으로 압축하여 환상적 감흥을 일으킨다.

 

'어둠 속의 사람과 새'는 길이만 6m37cm인 대작으로 그가 81세 때 작품이다. 암흑 뒤에 더 밝은 광명이 찾아온다는 역설적 진리를 담고 있다. 여기 '새'는 어둠 속에 빛을 찾아가는 자유의 상징이다. 워낙 대작이라 접고 운반하고 전시하는 전문담당자까지 파견되었다.

 

빛의 풍요로움 속에 호사와 쾌락을 추구

 

이번엔 보나르를 보자. 그는 색채가 사물의 색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나비파'에 속한다. 그의 누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순수하고 따뜻하고 신선하다. 하지만 말콤 몰리의 누드는 음모가 보일 정도로 거칠고 도발적이다. 이런 시각적 황홀함을 원시적 표현주의로 그렸다.

 

말콤 몰리는 영국에서 태어난 미국작가로 제1회 터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캠버웰과 왕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뉴먼, 워홀 등의 영향도 받았다. 70~80대는 추상표현주의에 몰입했고 90년대부터는 사실주의적 사진이미지를 선보인다. 두 작가의 누드화는 50년의 차는 있지만 빛의 풍요로움 속에 호사와 쾌락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인류 최후의 안식처인 미의 향연 

 

끝으로 '풀밭 위에서 점심식사'를 보자. 너무 뜻밖이다. 마네의 것이 아니라 현대판 패러디다. 인간욕망이 분출시킬 수 있는 온갖 상상과 판타지가 그득하다. 도시적 쾌락이 한상 차려져있다. 알랭 자케는 여기에 망점 스크린프린트로 놀랍게 패러디했다. 두 명의 러시아작가는 한술 더 떠 그들의 그림식탁에 20세기 프랑스미술의 거장들을 다 올려놓는다. 

 

미술을 인류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하지 않던가. 21세기적 이상향이 차고 넘친다.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나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같이 이런 식사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자연과의 일체감 속에서 미적 상상을 즐길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천국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립미술관 02)325-1077. http://www.pompidou2008.kr 홈페이지에 좋은 정보 많음
입장료 I 미취학 아동과 65세이상 노인은 무료. 연령대별로 7천-1만2천원이다.


태그:#퐁피두센터, #초현실주의, #피카소, #마티스, #페르낭 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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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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