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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나이가 하나 둘 들어갈수록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것이 헤어스타일이다. 대다수 한국의 삼사십대 사내들이 그러하듯 필자도 양쪽 귀가 훤히 드러나게 바리캉으로 깎은 헤어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바리캉만 사용해 손질한 머리는 너무 짧게 깎여서 언제나 세심하게 이발사에게 주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했다 하면 속된 말로 ‘뽕’을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필자의 참으로 신묘한 습성(?) 탓인지, 단골이 됐다하면 죽으나 사나 한 집만 다니는 버릇이 있다. 서울의 봉천동과 함께 대표적인 달동네로 유명했던 삼양동의 그 이발관도 그랬었다. 이제는 재개발로 없어져버린 삼양동사거리의 삼양시장 모퉁이에 있었던 이발관은 옛날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6,70년대 풍의 이발관이었다.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결국 삼양동의 조그만 방에 둥지를 틀고 나서부터, 필자는 십여 년을 그 이발관에서 머리를 잘랐었다. 단골 이발관이 대개 그렇듯이, 머리를 잘라달라고 하면 그냥 알아서 잘라주고 손님도 그다지 큰 불평 없이 자리를 뜨고는 한다.

 

그렇지만 재개발로 인해 삼양동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졌고, 필자도 당시 직장 근처인 흑석동으로 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다. 아마도 그 때부터 필자의 ‘단골 이발관 찾아 삼만리’가 시작된 것 같다. 미용실보다는 이발관을 선호하는 필자는 이발관이 시대의 흐름에 밀려 동네에서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그나마 질기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이발관은 목욕탕이나 사우나의 한쪽구석에서 힘겹게 연명을 하고 있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우나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었다.

 

불행한 것은 그렇게 찾아다닌 이발관에서 만족할 만한 헤어스타일로 머리가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필자는 참다못해 결국 쑥스러움을 무릇 쓰고 미용실을 찾아 갔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용실은 여성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이발관은 남성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는 곳이 분명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뭐 그렇다고 남성과 여성에 대한 어떤 차별의식 때문은 아니고 단지 생리적인 문제 때문이다.

 

수염이 많이 나는 입장이고 보니,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후 집에서 다시 수염을 깎아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이발관에서 면도칼로 정성스럽게 얼굴 전체를 면도해주는 것과 집에서 직접 깎는 면도의 차이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짐작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지금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우나의 이발관이라고 해서 만족하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마지막으로 가본 사우나 이발관의 경험은 그다지 유쾌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사우나라는 특성상 많은 아저씨들이 민망하게도 훌러덩 벗거나 팬티 한 장만 달랑 입고 의자에 앉아 이발을 하게 되는 데다, 머리를 어떻게 자르는 가는 접어두더라도 면도도 해주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어쩌다 면도를 해주는 곳도 일회용 면도기로 대충 해주고 말았다. 제대로 된 얼굴면도가 될 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필자는 한국을 떠날 때까지 여기저기 미용실을 전전하며 대충 머리를 깎았었지만 결국 단골 미용실을 정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 와서 참 반가웠던 것은 참으로 많은 이발관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용사 못지않게 실력 좋은 이발사들이 많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질투도 났었다. 이제는 동네에서 이발관을 찾으려 해도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 삭막한 서울의 풍경이 생각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일본에서 필자의 ‘단골 이발관 찾아 삼만리’는 해피앤딩일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문제는 가난한 유학생이 지불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금액에 있다. 일본 미용실은 이발관보다 더 비싼데다 면도를 안 해주니 이용하기가 꺼려져서, 가끔 시내 나갈 일이 있으면 한국인이 경영하는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고는 했지만, 요즘처럼 거의 시내 나들이를 안 할 때 필자는 ‘QB HOUSE’라는 곳을 이용하고는 한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이발관이라는 ‘QB HOUSE’는  머리를 깎기 전에 스톱워치를 누르고 시작하는 데 정말 딱 10분 동안 깎아주는 데 1000엔이다. 물론 머리를 감겨주지는 않는다. 머리에 물을 묻히지도 않고 머리를 다 깎으면 흡입기로 머리카락을 빨아들이면 끝이다. 이발관이나 미용실에서 오고가는 대화는 물론 없다.

 

‘QB HOUSE’의 이발사에게는 단지 10분이라는 작업만 있을 뿐이며 스피드를 필요로 할 뿐이다. 바쁜 사람들에게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이발관 의자에 앉으면 찐한 수면제라도 한 사발 들이킨 듯 가벼운 졸음에 꾸벅거리는 필자에게 10분은 긴장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신경 쓰이는 작업일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삼양동의 이발사 아저씨는 허투루 머리를 자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 하나 하나 일일이 가위로 정성스럽게 머리를 자른 후, 시퍼렇게 날을 세운 면도칼로 얼굴면도를 해주었으며, 시원하게 머리를 감겨 주었던 이발사는 드라이로 가르마도 살짝 갈라주며 향기가 참으로 자극적인 스킨도 발라 주었다. 삼양동의 그 이발사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단골 이발사 아저씨가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 http://blog.hani.co.kr/sakebi/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본,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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