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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처지 이해하는 것 필요하다지만...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는 이강근 기자의 글을 보았다. 기자의 지적대로 이스라엘 비난에 다소 집중되고 있는 한국 언론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 처지에서 쓴 글이 필요했으며 그만큼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이곳 언론에 이스라엘 대변인 등이 직접 나와 이스라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는 그런 균형 잡힌 기회가 적다고 느끼던 터였다. 물론 이곳 언론도 이스라엘에 매우 비판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10여 년간 정치를 연구한 분의 글치고는 이스라엘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러웠다이스라엘을 건드리고 있는 것은 하마스다, 민간인 희생도 하마스가 방패로 삼았기 때문이다, 국제 비난도 결국 하마스 전략에 말려든 탓이다 등등

 

민간인 학살 염두에 둔 이스라엘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진행될수록 지금과 같은 민간인 학살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 지는 지금 얼마나 이런 주장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

 

이미 천명에 가까워 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망자의 1/3이 어린이들이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되집어 보면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분명 민간인 피해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당국이 얘기하는 '단계'(phrase)별로 한번 따져 보자.

 

[1단계] 폭격

 

이스라엘은 하마스 기반시설을 파괴하려는 것이지 민간인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하마스는 게릴라 조직에 불과하여 기지 같은 별도의 '군사시설'이 없다. 가자지구 총선 이후 하마스는 실질적으로 정부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이므로 그 폭격 맞은 기반시설이라는 것이 경찰서, 주유소, 발전시설, 사원, 학교 등 모두 민간시설이었다.

 

결국 수많은 민간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그 탓에 현재 이스라엘 지상공격이 진행되는 지금 가자지구 거주민들은 대부분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채 전기도 없이 밤을 지새워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2단계] 가자 3등분 및 주요도시 포위

 

지상침공이 시작되자마자 이스라엘 군은 군사물품 공급 경로라는 이집트 국경지역을 봉쇄함과 동시에 북부와 남부를 각각 포위하여 가자지구를 3등분했다. 그리고 가자시 등 주요 도시를 포위했다. 그로써 가자지구 내에서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전방위 작전으로 민간인들은 피난도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시 외곽 지역을 점령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더욱 급증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를 빠져나갈 구멍도 없이 포위 공격하면 민간인 피해가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 상식이다.

 

[3단계] 하마스 모두 잡아들이기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시내로 진입하여 집집마다 뒤져서 하마스를 모두 잡아들이겠다는 3단계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포위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부 중심가로 대피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이 북부 중심가를 공격하겠다며 대피하라고 살포한 전단은 차라리 코미디였다.

 

이러한 이스라엘 군의 무리한 작전에 이스라엘 군인까지 죽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폭력은 무차별이다. 현장에서는 이스라엘 군이 민간인 희생을 줄이려는 노력은커녕 구조활동조차 방해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의 방해로 죽은 어미의 시신 옆에서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4일 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충격적인 국제적십자사의 증언은 그 현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로켓공격을 막으려는 것뿐이라고?

 

이러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이 단지 로켓공격을 멈추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아예 하마스라는 조직을 와해시킴과 동시에 가자지구를 무정부 상태로 만들어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파타당이 가자지구를 다시 통치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디언> 1 6일자 '이스라엘, 하마스 축출 시도' Israel looks to drive out Hamas 기사 참조)

 

이미 이번 사태로 높아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오히려 하마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목적을 이루려면 그 피해가 너무나 커서 어쩔 수 없이 대중이 파타당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목도하다시피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은 로켓 공격에 대한 맞대응 수준이 아니다. 이미 6개월 동안의 휴전기간부터 철저히 준비되어 온 것이며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위해 오바마 취임 전에 작전을 완료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 단계별 작전을 위해 오래 전부터 정보 수집활동을 해왔으며 가택 수색 훈련 등을 시켜왔다고 시인한 바 있다. 로켓공격을 멈추면 당장 중단될 성격의 군사작전이 처음부터 아니었던 것이다.

 

'대일본제국에 대드는 조선놈들이 이해 안 간다'와 비슷

 

이러한 상황에서 하마스가 무모하다고 비난하는 게 중동평화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일상적 경제활동을 불가하게 만드는 국경봉쇄, 야금야금 삶의 터전을 밀어내는 정착촌 확장, 일터조차 자유로이 가지도 못하게 만드는 검문소와 장벽 건설 등등 수십 년간 삶의 기본 권리를 앗아갔을 때 과연 그러한 무모한 저항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그들의 무모함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것은 대일본제국에 대드는 조선놈들이 이해 안 간다던 소리와 무척 닮아있다.

 

한가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이번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이다. 이스라엘에게 그 어떠한 이유로도 이와 같은 민간인 학살과 일방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인 보이콧 운동도 그 중 하나다(Naomi Klein, Enough. It's time for a boycott http://bit.ly/boycott-israel). 이는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을 압박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당장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이번에 자행된 이스라엘의 명백한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그 죄과를 묻도록 끈질기게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현재 이스라엘의 만행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도대체 강자에 대한 정의는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자그마한 답이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보영 기자는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객원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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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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