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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정월 대보름,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정월 대보름인데 부럼은 먹어야지. 땅콩하고 호두하고 밤 좀 사.”

“알았어. 국산으로 사야겠지?”

“당연하지, 잣도 조금 사놓고.”

 

집에 도착해 저녁상을 대하니 말린 쑥으로 만든 개떡과 보리밥, 묵나물 몇 가지가 올라왔다.

 

“아빠가 어렸을 땐 정월 대보름이면 양동이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밥이며 반찬을 얻어 비벼먹고, 쥐불놀이도하고 놀았단다. 그때가 어려워도 좋았었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아내에게 부럼을 내오라 했다.

 

“근데, 몇 군데 돌아다녔는데 국산이 없다네. 겨우 땅콩 하나 사왔는데, 그것도 맛이 별로네.”

 

아차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터넷쇼핑을 해서라도 국내산 부럼을 미리 준비해 놓을 것을 싶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입품이 우리 식탁을 점령한 상황은 심각했다.

 

“다 그래. 제품이름이야 그럴듯한 국산이고, 전통이지만 내용물을 보면 대부분이 수입품이야. 게다가 국산만 취급하는 가게는 적지, 가격은 비싸지, 알아도 수입품을 피할 수가 없어. 오늘 저 땅콩도 동네 가게란 가게는 다 돌아다니다가 겨우 산 거라니까.”

 

 

미국산 쇠고기, GMO, 조류독감, 잔류농약, 납성분 검출.

 

그 이야기들이 언론에서 떠들썩할 때만 주춤하다가 이내 망각해버리는 것이 국민성일까 싶을 정도로 식품에 대한 것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사안들까지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씁쓸했다.

 

먹을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장난감에서부터 자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영역에 수입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시골에서 땅콩농사를 지어 먹을 때가 얼마나 행복한 시절이었는지가 새삼스럽게 그립다. 조금 못 생겼어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으려면 자급자족 체재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는가?

 

수입농축산물로 인해 농어민들과 축산농가가 겪어야 하는 고통, 죽어가는 농어촌 지역의 경제로 젊은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농촌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경제구조와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가진 자 위주의 경제정책은 고스란히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회생하려면 무한경쟁체제로 뛰어들라고 권고를 한다. 이런 근시안적인 정책들은 서민에게 경제적인 고통을 가져왔고, 서민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국산이든 수입품이든 가장 싼 것을 식탁에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태’ 혹은 ‘유기농’, ‘국산’자가 붙은 식품은 이제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식품군이 아니다.

 

돈 있는 자들이나 안전한 먹을거리를 식탁에 올릴 수 있다. 세계화라는 괴물이 잠식한 우리의 현실이다.

 

땅콩만 까먹기가 뭐해서 아내와 밤을 사러 나갔다.

 

“국산 있나요?”

“국산이요? 없는데요?”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듯 바라보는 점원, 내년 정월대보름에 국산 부럼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


태그:#유기농, #식탁, #수입농산물, #정월대보름, #부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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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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