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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학생운동=시인=정치인, 닮은꼴

최근 신작시집 <아침꽃잎>을 펴낸 양성우 시인
▲ 시인 양성우 최근 신작시집 <아침꽃잎>을 펴낸 양성우 시인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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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갑자를 훌쩍 넘긴 뒤 다시 시인으로 돌아온 양성우와 윤재걸. 이들 두 시인은 비록 성과 이름은 다르지만 삶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고향도 같은 '예향' 전남이고,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에 뛰어든 것도 그러하다. 새파란 스무 살 시절에 시인으로 일찍 등단한 것도 그러하고, 인생 허리춤께 현실 정치에 뛰어든 것도 그러하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양성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4.19시위를 주도하며 일찌감치 학생운동에 뛰어든다. 고 3때에는 재야단체 호남지역 고등학생총연맹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광주교도소에 갇혀 첫 옥살이를 한다. 

1947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윤재걸은 대학 1학년 때부터 불온서클로 낙인찍힌 <한국문제연구회>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대학 3학년 때에는 <3선개헌반대호헌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대학원 1학년 때인 1971년 10월에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배후 조종 혐의로 허리가 부러지는 고문을 받은 뒤 군에 강제 입영된다.

양성우는 1962년 <학원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된 뒤 1970년 <시인>지에 '발상법' '증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다. 1972년에는 시집 <발상법>, 1974년에는 <신하여 신하여>를 펴낸 뒤 1975년 저항시 '겨울공화국'을 낭독해 교직에서 파면된다. 1977년에는 장편 저항시 '노예수첩'을 일본 월간지에 실었다가 1979년까지 옥살이를 한다.

최근 글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 해남으로 귀향한 윤재걸
▲ 시인 윤재걸 최근 글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 해남으로 귀향한 윤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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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걸은 대학 1학년 때인 1966년에 <시문학>(9, 12월호)에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시를 발표한다. 1975년 8월에는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다가 <동아일보> 기자를 하던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취재와 관련 그해 8월 9일 강제해직 당한다.

양성우는 1988년에 서울 양천갑에서 평화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계로 뛰어든다. 윤재걸은 친구였던 김홍일과 함께 1971년 4.27 대통령선거에서 DJ '스피치라이터'와 89년 3월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으로 DJ와 인연이 맺어지면서 정치계에 발을 내디딘다. 

두 시인 삶이 닮은꼴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두 시인은 지금 모든 것을 접고 시인으로 돌아왔다. 양성우 시인은 "이때까지 나를 살려준 것의 중심이 하늘의 힘이라면 그 다음은 시의 힘"이라며 시 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윤재걸 시인은 지난 해 6월 고향 해남에 생가를 복원한 뒤 해남에 내려가 글밭을 가꾸고 있다.

"나는 일찍이 시에 운명을 걸었다"

시인 양성우가 펴낸 신작시집 <아침꽃잎>(책 만드는 집)에는 '나의 노래가 너에게 닿아서' '만리동 고개' '내가 강아지풀이라면' '조치원 가면서' '나무들도 사랑한다' '깊은 사랑' '그는 별이 되었다' '좋은 꽃이 먼저 진다더니'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늙은 향나무의 노래' '슬픔으로 기쁨을 삼고' '귀를 씻다' '그의 먼 길' 등 73편이 은빛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있다.

시인 양성우는 "시는 오랫동안 내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알게 모르게 나를 붙들어 주고 이끌어왔다, 마치 신앙처럼"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이 아픔의 다른 이름이듯이, 내가 걷는 시의 길도 평탄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왜?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추위에 떨게 한 땡겨울이었으며, 굶주리게 한 보릿고개였으며, 수렁에 빠지게 한 몹쓸 벗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시를 떨치지 못했는가?"라는 물음에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시를 쓰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앞을 가로막지 못했고, 일찍이 여기(시)에 운명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무언가에 운명을 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밥이 되지 못하고, 술이 되지도 못하는 시에 운명을 건다는 것, 그것이 참 시인 아니겠는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시향으로 돌아온 시인 양성우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네 / 강물이 막히고 뱃길 벌써 끊어졌으니 /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네 / 먼 산길에도 가시나무 우거지고 / 골짜기마다 물에 잠기었으니 / 지난 날처럼 가슴 두근거리며 / 한걸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네' 몇 토막

양성우 신작시집 <아침꽃잎>을 펼쳐 들면 시집 곳곳에 회귀 본능이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이제 시인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탯줄을 묻은 고향으로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태어난 고향 함평은 예전 모습이 아니다. "가시나무 우거지고 / 골짜기마다 물에 잠기었으니" 쉬이 돌아갈 수가 없다.

"푸른 들이 변하여 먼지 속에 묻"히고, 어릴 때 자주 보았던 "동백 숲 왕대밭"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곳에 오래 모여 살던 이들"도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없다. 고향이 타향처럼 낯설다. 시인은 예전과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고향을 바라보며 "처음부터 고향이 없는 것" 같다며 가슴을 친다.

시인은 마침내 "지난 날들 위에 나는 너무 오래 머물렀다"(그의 먼 길)고 생각하며 고향을 떠나 낯선 길을 따라 간다. "몸 안에 가슴에 가득 쌓인 것들 내려놓고" 낯선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그 낯선 길은 "꿈 속의 어여쁜 그"가 걸어간 길이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 대자연에 안기는 영원한 회귀의 길이다.
   
대자연을 향한 회귀본능을 다루는 시, 마침이 없는 시

시집 곳곳에 회귀 본능이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 양성우 신작시집 <아침꽃잎> 시집 곳곳에 회귀 본능이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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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마다 넘치는 초록의 사랑은 끝났는가 / 그 가슴 다 타고 남은 누런 잎들, / 여린 새싹으로 와서 봄부터 가을까지 / 온갖 시련을 견뎠으니 / 드디어 손을 놓고 땅에 떨어질 만하여라" -'낙엽을 노래함' 몇 토막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은 낙엽을 바라보면서 "때늦은 밝은 햇살이 무슨 소용이리"라며, 인생무상을 느낀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내가 바라는 그 어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크게 좋아하거나 슬퍼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숲 속의 오랜 침묵을 깰지라도" 시인 눈엔 순간으로 보일 뿐이다.

"슬픈 잎들 이미 한꺼번에 숨이 진 뒤에는 / 그 몸이 부서져 녹아 물이 되어 / 사라질 뿐"이다. 시인은 낙엽을 바라보면서 "마침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흔적을 남겨서 무엇하리"라며, 사람도 바람에 떨어지는 마른 잎과 같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 줄도 모르는 바보 같은 인생"을 "밝은 햇살"처럼 움켜쥐고 있다.

인생무상, 아니 인생무상 저 너머 대자연을 향한 회귀 본능을 다루는 이러한 시는 이 시집 곳곳에 흩어져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깊은 사랑), "아무도 시간을 붙잡아 두지 못한다"(시간의 질투),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간 뒤에도 / 저 나무들은 비탈에 말없이 서 있겠지"(잎 지는 동안에) 등이 그러하다.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띠는 또 하나 특징은 여러 시편들 끝자락이 '다' '라' '지' 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없으므로'(즐거운 인생), '깊게 파이고'(친구 사이), '빛을 삼으며'(슬픔으로 기쁨을 삼고), '검푸른 잎사귀들마저도'(숲은 오늘 조용하다), '깊고 푸른 물가에'(또 하나의 마을)처럼 마침이 없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글농사 짓기 위해 고향 해남 품에 안긴 시인 윤재걸

시인 윤재걸이 글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 품에 안긴지 6개월 만에 신작시 7편을 고향에서 펴내는 무크지 <땅끝문학>에 발표했다. '그대 이름은 나무못' '유배공화국 해남유토피아 만세' '글농사 지으러 왔소이다!' '외로우면 그냥 움직이지요' '외로우면 무작정 술을 빚지요' '발의 발가락의 해방노래' '어떤 설국'이 그것. 

시인 윤재걸은 오래 전부터 고향인 해남군 옥천면 동리에 내려가 글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서울살이가 그 꿈을 좀처럼 풀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윤재걸이 귀향을 꿈꾸고 있다고 하자 정치를 다시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윤재걸은 이에 대해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생가가 무너져 조상님 뵙기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동안 생가를 돌보지 못한 죄닦음을 조상님께 하기 위해서라도 생가를 복원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생가가 복원되면 비워둘 수는 없지 않겠느냐. 이참에 고향으로 내려가 못다한 글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노예생활 단칼에 베고" 고향 해남 품에 안기다

"햇볕도 들지 않는 그늘진 시멘트 숲,/ 홍진(紅塵)에 묻힌 삶 더 이상 실어 / 글농사 지으러 고향땅에 왔소이다! // 육십이 넘어서도 / 뜻대로 살 수 없다면 / 차라리 죽은 목숨! // 자존의 촛불마저 지킬 수 없는 / 서울의 노예생활 단칼에 베고 / 글농사 지으러 고향땅에 왔소이다!"-'글농사 지으러 왔소이다!' 몇 토막

지난 해 6월, 해남 생가 복원공사를 마무리한 뒤 서울에 있는 이삿짐을 몽땅 싸들고 고향으로 내려간 시인 윤재걸이 귀향 뒤에 쓴 신작시를 읽는다. 그는 지난 해 1월부터 생가 복원공사를 시작해 3월 끝자락에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복원공사를 하는 도중 날림공사 등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3개월 더 길어졌다.  

그해 6월 생가복원이 끝나자 그는 정말 "서울의 노예생활 단칼에 베고 / 글농사 지으러 고향땅" 해남으로 내려갔다. 모든 일들이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그가 두눈 질끈 감고 고향 해남으로 내려간 것은 말 그대로 "귀향을 핑계 삼은 귀양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그때까지도 서울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썩은 나라 썩은 인물"들 뿐인 세상, 그들과 뒤섞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등 굽혀 손 비벼 살 수 없"었다. 이제 새로운 충전이 필요했다. 탯줄을 묻은 고향 해남에 내려가 "생명의 소리, 자연의 소리 한데 엮어 / 새 세상의 화음"을 얻어야 했다. 그가 말하는 글농사란 바로 세 세상을 펼치는 화음이다.
      
시인은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술을 빚는다

<땅끝문학>에 귀향에 따른 신작시 7편 발표한 윤재걸
▲ <땅끝문학> <땅끝문학>에 귀향에 따른 신작시 7편 발표한 윤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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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빚는다는 것은 나만의 사람 그리는 일! / 아, 술을 빚는다는 것은 / 그대의 다수운 체온 오오래 지켜가는 것! / 가슴에 담은 그대 모습 찾아 나선 외로운 고행! // 술을 빚는다는 것은 나만의 사랑 이루는 일! / 아, 술을 빚는다는 것은 / 세월의 외로움 켜켜이 숨기고 감싸 / 그대의 첫정, 가슴속 질항아리에 오오래 키워가는 것!" -'외로우면 무작정 술을 빚지요' 몇 토막  

사실, 혼자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것도 몇 가구 되지 않는 시골마을, 사람 그림자조차 쉬이 찾을 수 없는 조용한 산기슭에서 손수 밥을 지어 먹고, 손수 설겆이를 하고, 글농사와 채소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퍽 외로운 일이다. 게다가 말벗이라고는 생가 앞마당 삼나무 숲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들뿐이다.

시인은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술을 빚는다. 시인이 술을 빚는 일은 곧 "나만의 사람 그리는 일"이자 "나만의 사랑 이루는 일"이다. 시인은 술을 빚으며 세월을 삭이고 "고독의 시간들을 항아리 속에 가두어 / 한 말의 독한 술로 짓이겨 짜"낸다. 따라서 시인이 "술을 빚는다는 것은 나만의 조촐한 씻김굿!"이다.

시인 윤재걸이 고향 해남과 하나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이번에 발표한 신작시 곳곳에 묻어 있다. "세상 호령하는 대들보는 못 되어도 / 기와 밑에 납작 엎드린(그렇고 그런) / 오체투지의 서까래는 못되어도"(그대 이름은 작은 나무못)라거나 "외로움의 천적이 바로 동사라는 것을!"(외로우면 그냥 움직이지요), "잠 깨어 일어나보니 / 뜰 섶에 나라 하나 반듯하게 서 있구나"(어떤 설국) 등이 그러하다.

시인 윤재걸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시 7편에는 흙냄새가 듬뿍 배어 있다. 그 흙냄새 속에는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해남 옥천군 동리 산기슭에서 홀로 사는 외로움, 유배지 해남에 대한 슬프고도 저항 서린 역사가 뒤섞여 있다. 그는 지금 새 세상을 먼저 갈고 닦은 사람들, 그들이 세운 유토피아 공화국을 꿈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아침꽃잎

양성우 지음, 책만드는집(2008)


태그:#양성우, #윤재걸, #아침꽃잎, #땅끝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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