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임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게임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세계다. '대리 만족'이라는 단어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이 게임이다. 특정 시간의 노력을 들인다면 누구나 게임의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게임은 기본적인 '탄생의 가치'를 부인한다. 이 말은 곧 사회, 인류학적으로 얼마든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거듭해 부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의 미션을 가지고 불특정다수가 교류를 하는 게임 속 세상은, 결국 인간의 또 다른 자아 혹은 또 다른 생활로 분류되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거대 산업으로 발달해왔다.

 

과거의 게임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독단적인 사고의 해결'이었다. 네트워크 선이 신설되고, 타인과 온라인으로 하여금 소통하게 되는 도구가 생기기 전까지 게임이라는 존재는 집 안에 위치하는 친구, 혹은 애완동물과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각종 퀴즈와 논리싸움을 하며 모든 해결을 도모하던 과거 시절의 게임은 일인일념(一人一念)체제였다. 하지만 절대적인 개인주의가 표방되던 이 체제의 약점은 사회적 소통이었다.

 

슈팅게임이나 레이싱 게임과 같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해결하기에는 개인주의의 게임이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개인만을 내세우는 게임은 점차적으로 활력을 잃어갔다. 사람들은 게임이 자기만의 세상이 되는 것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타인과의 교류를 원했다. 그 결과로 탄생했던 것이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온라인 게임의 장점은 소통이다. 작은 대화창, 혹은 내 키보드의 타자를 치는 행위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는 파괴성과 같은 기타 등등의 부분에서 온라인 게임은 혼자만의 방식을 버린 것이다.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더불어 같은 사건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결국 사회성의 가치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게임이 혼자만의 세계로 국한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PC게임이 신개념의 온라인으로 돌아서면서부터 게임 세계에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존중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예는 최근 일본에서 가상의 아바타를 살해했다가 실형 판정을 받은 한 게이머에 대한 기사다. 타자와 소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게임은 더 이상 단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닌 또 다른 생활로 자리 박혔다.

 

사람들은 대화가 가능한 게임, 그리고 자신이 이루어놓은 게임 속의 세상을 타인으로 하여금 '인정'받거나 '비판'받을 수 있는 상호작용을 원했던 것이다. 게임이 상호공존의 가치를 택했던 것은 결국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이분점에 작용하는 가장 고난이도의 해법이었다. 게임에서 조차 인간의 '사회성'이 포기되지 않는 것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과 일상의 신선한 결합, 넥슨(Nexon)사의 마비노기(Mabinogi)

 

기존 가치를 거부하며 신선한 게임을 원했던 유저들 사이에서 온라인 게임의 존재는 나날이 성장했다. 온라인 게임이 처음으로 대두되던 시기, 즉 'PC통신' 세대는 주로 글자에 의한 묘사로 게임의 방식을 진행시켰다. 지시문과 같은 말들을 통해 누가 죽고 누가 이겼는가에 대한 판가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윽고 게임은 글자가 주는 한계에서 벗어나 이미지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허술하지만 움직이는 재미, 상대방의 컴퓨터에서 나에게 전달되는 전파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은 열광했다. 결국 게임은 이미지에 종속되는 것으로 재탄생했으며, 이에 따라 상승하는 유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게임 제작사들은 이미지의 구성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 결과 2D에서 3D를 아우르는 게임이 탄생했고, 사람들은 게임의 퀄리티 자체를 이미지의 연결 방식으로 책정시키기도 했다. 전 세계의 모든 게임공화국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전해왔으며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 단순 전투, 사살 방식으로 탄생했던 게임은 어린이용과 어른용, 더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기호를 각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이미지 속에 교육적인 내용과 현학적인 내용, 혹은 파괴적인 내용들이 판가름되어졌고 이에 따라 등급도 생겼다.

 

게임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게임 스토리-시나리오라고 부르는 시뮬레이션이 최초였다. 게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제 단지 나열에 불과한 것이 아닌 거대한 서사를 원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그 순간부터 각종 역사와 신화, 가설, 범죄물과 같은 탄탄한 소재를 기반으로 게임의 기본적인 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에 게임을 신선하게 만들었던 가치, '사회성'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반지의 제왕>과 같이 완전한 판타지를 소유하는 게임들이 다수에 의해 '누려짐'을 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한 폭력성 때문이다. 토너먼트를 통해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에게 이익을 얻는 방식의 게임에서 늘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약자에 속했다. 과거에는 연령이 낮은 사람들에게 게임의 방식은 단순 교육에 속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점차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나이의 폭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각계각층이 원하는 위치가 확고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일정한 갈등이 빚어졌다. 타인을 밟고 올라가는 방식의 승리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고, 타인을 도와 함께 승리하는 공존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가 더해지면, 소비자의 욕구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그 결과 탄생하게 된 새로운 게임이 마비노기(Mabinogi)였다.

 

마비노기는 다양한 연령층을 수용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캐릭터와 상품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온라인 게임은 국내 유일의 것이었고, 마비노기가 탄생하던 당시 클로즈 베타를 즐기던 사람들은 찬사를 금치 못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마비노기의 오픈 베타가 공식적으로 선을 보였고, 현재는 7개의 정식 서버와 1개의 테스트 서버를 통해 늘어난 소비자에 대처하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비노기는 지난 2008년 여름, 지금까지 이어오던 유료화를 해제하고 무료화로 돌아서며 2차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무료화로 전향되기 전까지도 마비노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접속 후 기본 1일 2시간 체제는 학생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규칙이었다(물론 많은 사람들이 2시간의 규칙을 참지 못해 결제버튼을 누르는 사태가 '당연하게' 발생하지만). 하루에 두 시간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층조차 마비노기의 세계로 전환시키기에 매우 획기적인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작고 귀여운 온라인 게임을 주목하게 된 것은 단순 '무료'나 '공짜'와 같은 광고 때문이 아니다. 마비노기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 게임의 세계에서 확고하게 지켜지던 사회성의 법칙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것에 있다.

 

마비노기의 발단은 신화와 설화의 기원이다. '마비노기'라는 단어는 고대 북유럽에서 음유시인을 통해 내려오는 노래를 뜻한다. 이 말은 곧 마비노기가 판타지가 시작된 최초의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마비노기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위와 같은 설화의 기원은 사용자들에게 일정 부분 이상을 어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비노기가 차용한 방식은, 단순 판타지에서 이어지는 현실과의 이질성이 아니었다. 마비노기는 오히려 기본 게임의 개념을 역행하여 소비자가 선택하고, 소비자가 모든 임무를 이행해 생활할 수 있는 일상과 같은 소재의 게임을 창조해낸 것이다.

 

마비노기 생활의 기본 개념은 '자급자족'이다. 마비노기는 현재 세 개의 종족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세 종족은 각자 인간, 엘프, 자이언트 종족이다. 어울리지 않는 자이언트와 엘프 종족 사이에 인간이 먼저 탄생했고, 인간은 결국 두 종족을 이어주는 절충적인 역할을 한다. 마비노기의 세계에서는 종족과 국가에 관한 기본 개념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어떤 탄생을 택하든지 간에 자신이 입고 자신이 먹을 것은 반드시 스스로 구해야 한다. 때문에 마비노기 내에서 '아르바이트'의 위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현실에서처럼 월급제나 시급제의 개념은 아니지만, 각종 상점을 찾아다니며 아르바이트에 관해 말을 걸면 정해진 시간에 임무를 수행하고 보상을 받을 권리를 부여한다.

 

이를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일정의 아이템과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큰 돈을 들여 사고 싶은 물건이 없을 때에는 그저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다. 그것이 아니어도 마비노기 내에서 살아날 구멍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고급 사냥터로 가기 위한 제한과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한 위험이 포진되어 있지만, 마비노기는 한 마을에서 소소한 일거리만을 찾아 생활해도 무방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다. 농사를 지어 벼를 수확하든, 돌을 부숴 제련을 익히든 모든 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이따금씩 부엉이를 통해 날아오는 퀘스트는 그런 자유주의적인 유저들을 돕는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물론 마비노기도 여타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던전과 사냥터의 위치가 가장 중요한 온라인 게임이다. 그리고 실제로 넥슨의 데브캣 스튜디오(마비노기 창설의 자사 스튜디어)는, 던전 내에서의 버그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도 한다. 마비노기의 메인 스트림(메인 시나리오)는 대부분 던전에서 시작해 던전에서 끝을 맺고, 마비노기의 유저들은 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마비노기가 주목받게 된 배경은 다른 게임과 맞닿아 있는 '전투 양식'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게임의 위치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에 일조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그래픽 속 가상현실에 투자해 또 다른 쾌감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비노기는 차단된 시간에서 한 발 물러나 다양한 소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국적인 시각으로, 명절 때마다 진행되는 이벤트는 게임 밖의 유저가 어디까지 왔고, 어떤 지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자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합당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비노기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다시 맛본다. 조금 더 크게 잡아 말하면 마비노기의 기본 개념은, 게임에 삶을 바쳐 '변질'되어버린 현대 청소년들에게 어느 정도 교육적인 입장을 제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하루 2시간 체제에서 24시간 무료화 체제로 마비노기를 전환시키며 넥슨사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는 수준이지만, 게임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이 마비노기의 기존 커리큘럼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비노기는 일상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킨 게임이다. 마비노기 속의 캐릭터들은, 카툰 랜더링 기법을 통해 귀엽고 아기자기한 이미지로 전환되며, 이로 인해 게임의 특성인 '폭력성'을 일정 부분 덜어내는데 성공했다. 마비노기의 다양한 스킬을 마스터 하는 것에는, 타게임의 주도적 입장을 범접하는 것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1의 지점에서 시작해 10의 지점까지 간 사람은 결코 편법을 사용해 1에서 10까지라는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다. 마비노기는 편법과 편의의 기술을 제거한 채 소비자들에게 공개되었다. 돈을 벌어 좋은 옷을 사고 싶으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고, 물이나 쌀과 같은 생필품이 필요하다면 밭이나 우물을 통해 직접 길어야 한다. 마비노기는 서로를 돕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지만,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생활은 스스로를 통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게임의 최종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를 돕는 지혜를 통해, 마비노기는 상호 유저간의 사회성을 확고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

 

마비노기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게임이다. 전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전투를, 비전투 체제를 맛보고 싶은 사람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마비노기에서 금지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살인' 체제다. 마비노기의 법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와 타인의 것을 날조하는 행위를 명확히 차단하고 있다. 적절한 법규 속에 마비노기는 또 다른 게임 공화국을 창설한 것이다. 실제로 마비노기 내에는, 전투를 지향하는 사람보다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 바라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존재한다. 후자들은 대부분 새로운 기술을 배워 요리를 하거나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아르바이트를 충실하게 이행해 벌어들인 습득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마비노기는 최근 늘어난 서버와 아이템 덕분에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떠맡고 있어 불편의 목소리도 크게 작용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점들 때문에 마비노기의 기본 체제에 반기를 들 이유는 전혀 없다. 마비노기는 과거 선조들이 이어왔던 품앗이와 두레 사상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태그:#마비노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