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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달인을 만나다

사카쿠라 칸 / 2003 / 소담출판사
▲ 책 표지 사카쿠라 칸 / 2003 / 소담출판사
ⓒ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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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릴 때부터 기차를 좋아해 일본 철도청에 입사, 30년 넘게 근무하며 짬짬히 세계의 기차를 탑승해 왔다. 전 세계에 철로가 있는 나라는 110여개국 정도 되며 저자는 그중 80여개국의 철로를 직접 타보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책을 쓰기 전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만나야 했던 사람은 70살이 넘은 일본인으로 110개국의 기차를 모두 타보았다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저자는 그에게 찾아가 "제가 80개국의 기차를 타보았는데 책을 써도 될지 선생님의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라고 했고, 그 양반 왈.

"110여개의 나라 중 철로만 있고 지금은 운행을 하지 않는 나라도 여럿이고 철도라 하기엔 어려운 나라들도 많으니 그 정도면 전 세계의 기차를 다 타보았다고 해도 괜찮네. 책을 쓰게..."

과연 일본인다운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책의 표지만 보면 헌책방 구석에 조용히 모셔져 있을 것 같은 제목과 표지 디자인 때문에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일단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본인 특유의 완벽주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충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저 기차를 타고 지구 한바퀴를 돌았다는 내용의 책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특급 열차에서부터 저 남미의 토막 구간을 운행하는 기차까지 일일이 찾아가 탑승, 승차감과 인테리어, 철로와 그 나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철도라는 하나의 주제를 통해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여행하는 가공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초밥, 우동, 바둑 등의 개인적인 직업을 통해 또 다른 경지를 추구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여실히 느껴진다고나 할까.

재미있는 철로의 역사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고, 흥미로운 내용은 철로의 넓이의 역사다. 철로의 넓이는 표준궤, 광궤, 협궤로 나뉘는데 표준궤는 철도 레일 사이의 너비가 1.435m인 철로를 가리킨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가 이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표준궤를 채택하지 않은 사연들이 책의 곳곳에 설명되어 있다.

일단 일본은 영국과 같이 1.067m의 협궤다. 협궤는 일반적으로 산악지형이라서 철로를 건설하기 어렵고 굴곡이 많은 지역에 적합하다고 하여 섬나라인 영국을 따라 일본도 협궤를 채택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당시 이 결정을 한 건설부장관이 인생 최대의 실수며 대죄라고 사과할 정도로 후회를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인 즉, 일본이 신칸센으로 세계 최초로 시속 300km를 돌파한 철도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차를 수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협궤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KTX가 일본보다 후발인 프랑스 떼제베를 수입한 것처럼 일본은 세계 고속열차 시장을 잃었다. 정말이지 일본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인 듯.

또 미안마의 열차는 승차감이 최악인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기차의 종주국 영국에서는 두 개의 회사가 표준 경쟁을 했는데 하나는 협궤 넓이였고, 다른 회사는 1.665m 너비의 광궤였다. 영국은 협궤를 표준으로 채택했고, 표준 경쟁에서 밀린 회사는 자국에서 폐기된 광궤를 식민지인 인도에 건설한다. 인도의 기차는 원래 1m의 협궤 철로였는데, 영국인들은 인도에 있던 철로를 뜯어 기차가 없던 미안마에 깔고, 인도에는 자국에서 뜯어 온 광궤 철로와 기차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1m협궤인 것만으로도 승차감이 떨어지는데 거기다가 중고라니... 저자의 표현은 이러하다. "마치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배를 타는 느낌이다." 식민지의 잔재는 그들이 떠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기차를 깔아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길 바라겠지만 표준궤가 아니라서 기차를 수입할 곳도 없고, 승차감도 최악인 기차를 계속 타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분통터질 일이 아닐까?

철로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또 있다. 유럽은 대체로 모두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제각기 다른 철로를 사용한다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영국은 협궤이지만 섬나라니 그렇다 치고 (이마저도 기차를 배에 실어 운행을 할 경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표준궤가 아닌 나라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스페인이다. 그 이유는 단지 하나, 나폴레옹 시절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나쁜 감정 때문이다.

언제 또 프랑스가 국경을 넘어 침략할지 모를 일이고, 서로 자유로이 왕래하기도 싫었던 스페인은 1.668m의 광궤를 채택한다. 후일 그로인해 스페인에서는 표준궤와 광궤를 모두 다닐 수 있도록 바퀴의 너비를 조절할 수 있는 기차를 발명해 냈다고 한다. 현재 스페인은 국내선은 광궤를 운행하고, 이체와 같은 고속열차를 위해 표준궤를 추가로 건설해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철로를 통한 감정의 표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페인과 붙어있는 나라 포르투갈의 철로는 1.668m로 스페인보다 3mm 좁다! 이유는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철로의 넓이는 각국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표지에 속지 말자!

이 외에도 이 책에서는 기차여행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다. 7박 7일을 가는 러시아 횡단 철도에 대한 내용은 그 길고 지루함에 대하여, 출발 이후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청소하지 않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법 등 유머가 가득하고, 기네스 북 세계 최고 호화열차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블루트레인 기차 여행(술과 음료가 모두 공짜이고, 기차 객실 안에 욕조도 있고, 밤마다 정장 차림을 하고 파티가 열린다. 단 미성년자는 탑승금지!),

표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고, 좌석을 배정받기 위해 또 긴 줄을 서야하는 인도 기차의 황당한 시스템,  "신기하게도 정각에 도착했다고 했더니 24시간 늦은 것"이었다는 멕시코 등등. 정말이지 기차여행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정보들이 있는 책인 것이다. 독자들은 절대 표지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의 철도에 대한 저자의 기억을 소개하자면, 일단은 정치구호와 같은 열차 이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새마을, 무궁화, 통일, 비둘기... 그리고 무궁화호는 국산 열차라는 사실에 놀랐고, 새마을호는 제법 괜찮은 모델을 수입해 놓고 기관차의 앞부분 연결부위의 뚜껑도 닫지 않은 흉한 몰골로 다니는 모습에 안타까워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철도 여행을 깊이 즐기기에는 너무 짧아 좀 싱거웠다는 것과  일본과 대단히 흡사한 창밖 풍경에 놀랐다고...

덧붙이는 글 | 여행기중독자 입니다.



기차타고 지구 한 바퀴 - 세계철도여행

사쿠라이 칸 지음, 박은정 옮김, 소담출판사(2003)


태그:#기차타고 지구 한바퀴, #사카쿠라 칸, #소담출판사, #여행기중독자,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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