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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부야오 사우스빌] 필리핀 수도 메트로마닐라에서 남쪽으로 50㎞ (시간거리 2-3시간) 떨어진 카부야오(Cabuyao)란 지역에는 사우스빌(Southville)이라는 재이주 마을이 있다. 한국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자금을 지원 받아 필리핀 정부가 진행하는 남부통근철도 개선사업과 관련해서 이주된 7000가구가 넘게 살고 있는 곳이다.

 

- 참여연대 '아시아 생각' 정법모의 '그들은 왜 도시로 몰리나' 일부 발췌 -

 

때 아닌 우기는 토요일 아침을 촉촉이 적시려 하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일정을 조정할만큼 나의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은 카부야오의 사우스빌. 구형 도요타 봉고차에 오른 뒤 난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의 계획도시 퀘존(Quezon)을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옆으로는 필리핀 국립대학(Univercity of the Philippines)이 지나가고, 앞으로는 경제의 중심지 마카티(Makati)의 마천루가 보이는 이 곳 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은 소비수준과 편의시설을 자랑하는 이 곳 교통난은 이날 아침에도 되풀이 되고 있었다.

 

지프니가 내뿜는 메캐한 매연, 차선의 없는 것만 같은 도로를 조롱하듯 달리는 운전수들의  운전 솜씨, 여기저기 수도 없이 들리는 경적 소리는 말 그대로 자기 차량이 없는 필리피노(Philippino, 필리핀사람)의 출퇴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이 쉽게 필리핀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랴.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pment assistance)는 메트로 마닐라의 남부통근철도 개선사업으로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이들을 위해 들어온 공적개발원조는, 이들 중 가장 힘없는 이들의 목을 죄는 엉뚱한 돌연변이를 양산해 내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대책없이 이주된 이들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그런 돌연변이적 상황을.

 

'털털털'

 

그리 매끈하지 않은 필리핀 도로를 봉고차는 달리고 달려서 카부야오 입구에 다달았다. 처음 만나는 카부야오는 그저 한적한 시골 마을 쯤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사우스빌로 이동하는 길에서 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됐다. 특히 마을 들어가기 직전 거대하게 싸인 쓰레기들, 집단 이주마을 바로 옆에는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근처의 물의 색은 이미 표현할 수 없는 빛깔을 띠기 시작했고, 곳곳에는 가정집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모였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한국 NGO 아시안브릿지(Asian bridge)에서 운영하는 'BAHAI-BAYANIHAN' 학교. 이 거대한 이주도시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교육의 일부분을 이 곳이 담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제 미술선생님께 미술을 배우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올 6월에 학기가 끝나면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가 시간을 보내야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곳 학교에 설립부터 운영까지 업무를 맡은 아시안브릿지의 한 스텝은 이렇게 얘기했다.

 

"사우스빌에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죠?"

"일자리죠"

 

 

40% 가까운 실업률을 자랑한다는 이 곳 사우스빌, 집단 이주마을이 조성되었지만 주변에 쓰레기 매립장 말고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직업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트로마닐라의 옛 터전 근처에 불법으로 출퇴근을 하거나 불법으로 살아가며 뜨문뜨문 집에 오는 이들이었다. 메트로 마닐라에서 빈민에 속했던 이들, 이래저래 왔다갔다하면 생활비가 남을리 만무하단 생각이 스쳤다. 그러던 중 수업은 끝나고 아이들은 밥을 짓기 위해 땔감을 가지고 와 불을 피울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쓰레기 매립장 앞 공터. 메캐한 냄새와 종종 파리떼가 나를 반겨주는 그 곳은 탄소상쇄기금(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양을 기금으로 환산해 적립한 것이며 지구 온난화의 확산을 막는 데 사용, 현재 아시안브릿지에서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맞아 기금 모금 중)으로 나무가 심어질 공간이었다. 얼마 전 연기자 박철민씨가 처음으로 기부를 시작한 탄소상쇄기금은 여러 사람의 자발적 참여가 줄을 이은 뒤, 올 여름 이곳에서 나무로 그 결실을 맺게 될 터였다. 이 곳에 무수한 산림이 조성돼 주변환경이 조금이나마 쾌적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쓰레기 매립장의 동선을 나도 모르게 계속 쫒다가 우리는 밥을 먹으러 이동했다. 한국사회복지공동기금에서 설립을 지원한 사우스빌에 식당, 간단한 과자를 파는 코너와 노래방 기계, 그리고 긴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인 이 곳에서 조금이라도 소비를 더 하기 위해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마셨다.

 

사람을 적당히 고용하면 이윤이 남으면서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다고 하지만, 워낙 일자리가 없어서일까. 식당 규모에 맞지 않는 수많은 종업원들은 한 무리의 손님을 받기 위해 주방과 홀에서 빠글빠글 하기만 했다. 그리고 인근 쓰레기 매립장에서 날라오는 파리 떼는 우리와 함께 그 식사를 하고 있었다. 홀에 종업원들은 먼지털이를 가지고 파리 떼를 쫓는데 여념이 없었다.

 

 

식당 앞 공터에서는 손으로 물을 깃는 아이들이 물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었지만 탁한 물은 이미 오염되어 있는 상태였다. 수도, 전기, 통신 등 대부분 분야가 민영화 된 필리핀에서 특히 이주민들이 수도를 설치하는 데만도 우리나라 돈으로 20만 원이 든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고 살리 만무했다.

 

식사가 끝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릴 없이 서 있는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몇 대, 집 사이사이로 깨끗이 빨려서 널린 옷들은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다 너덜거리거나 흙물이 빠지질 않았다. 같은 모양의 집이 빼곡이 들어서 있지만 그 뿐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하나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건물을 볼 수 없었다.

 

사우스빌에는 지금 돈이나 물건보다도 일자리가 시급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깡마른 채 살아가는 곳이 바로 이곳 카부야오 사우스빌이었다.

 

돌아오는 길, 잔뜩 지푸렸던 하늘이 결국 비를 한바탕 쏟아내고야 말았다. 한국민의 세금으로 제 3세계 국가에 지원되는 ODA는 제3세계 가장 힘없는 사람을 엉뚱하게 목을 죄고야 말았다. 이주 및 대책에 대해 필리핀 정부가 세우고, 담당하고, 고민하는 일이 당연히 맞지만 우리가 그 책임에서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퀘존 한국 가정집에서 7년간 가정부를 하다가 사정 상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한 아낙이 내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다. 내가 일하는 동안 정말 잘해줬다. 당신도 꽤 친절해보인다."

 

2009년 5월, 당신이 낸 세금이 얼마나 필리핀 빈민들에게 친절하고도 의미있게 건네지고 있는지는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일정은 아시안 브릿지의 주기적인 활동에 견학차 동행했습니다.


태그:#ODA, #카부야오 사우스빌, #필리핀 빈민, #필리핀 도시철도, #탄소상쇄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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