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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사에서 바라본 팔영산.
 능가사에서 바라본 팔영산.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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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비는 그쳤는데, 하늘이 흐리다. 오늘(17일) 애들과 함께 고흥 팔영산에 가기로 했는데….

팔영산은 바위산으로 날씨가 좋지 못하면 산행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벌교를 지나 15번 국도를 타고 고흥반도를 달리다가 팔영산 안내판을 보고 빠져 나온다. 얼마 가지 않아 팔영산도립공원을 알려주는 안내판과 함께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몇 대 보인다.

팔영산(八影山, 608.6m)은 1봉부터 유영(儒影), 성주(聖主), 생황(笙篁), 사자(獅子), 오로(五老), 두류(頭流), 칠성(七星), 적취(積翠)까지 여덟 봉우리가 있는데, 이 팔봉의 그림자가 멀리 한양(서울)까지 드리워져서 팔영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설마 서울까지 보였을까? 일설에 의하면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오면서 붉은 햇빛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팔봉이 마치 창파에 떨어진 인판(印版)과 같다 하여 그림자 영(影)자를 붙였다고도 한다.

때죽나무 하얀 꽃이 반겨주는 산길

산행을 시작하는 곳은 마치 산사(山寺)로 들어가는 길 같다. 주차장에서 바로 능가사(楞伽寺 ) 천왕문이 보인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천왕문 지붕이 어깨 추임을 하면서 들어오라고 한다. 능가사로 들어서니 넓은 마당을 지나 대웅전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규모와 넓은 절터는 한 때 영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절은 조용하기만 하다. 조용한 산사. 개도 무료한지 마당에 누워 눈만 마주치고 있다.

때죽나무 꽃이 반겨주는 산길
 때죽나무 꽃이 반겨주는 산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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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처마를 비켜서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가 키 자랑을 하듯 서있다. 옆문으로 나와 산길을 재촉한다. 산길로 들어서니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터널을 이루며 주렁주렁 달려있다. 별모양의 하얀 꽃잎에서 고고한 순결함이 느껴진다. 시들지 않고 떨어진 꽃. 그마저도 아름답게 보인다.

산길은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하다. 촬촬거리는 물소리가 힘이 넘친다. 계곡을 이리저리 넘어가면서 산길을 이어간다. 습기가 가득한 산은 올라가는 데 힘이 든다. 애들도 힘들어 한다. "아이! 힘들어." "땅만 보지 말고 물소리를 들으려고 해봐. 시원해질꺼야."

노약자와 어린이는 돌아가라는데…

흔들바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1봉인 유영봉으로 길을 잡는다. 이정표는 800m 더 가라고 한다. 쉬엄쉬엄 올라간다. 산정이 가까워지면서 나무사이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숲을 벗어나면서 커다란 노란 팻말을 만난다. '노약자․어린이 우회' 대부분 등산객들은 2봉으로 바로 간 이유가 산길이 위험해선가 보다.

애들과 아내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디로 갈 거야?" 조금은 불안한 듯 물어온다. "서서히 가보자" 앞장서서 길을 잡았다. 바위 암벽을 만난다. 이제부터 바위를 타면서 올라가야하는 길이다. 마주친 산길 바로 앞에는 수많은 지팡이들이 버려져 있다.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데 쓸모가 없는 나무 지팡이들은 미련 없이 버려졌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 무모한 도전을 한 게 아닐까?

1봉인 유영봉 올라가는 바위 암벽 길. 애들에게 위험하게 보이지만 기다려주기만 하면 잘 올라간다.
 1봉인 유영봉 올라가는 바위 암벽 길. 애들에게 위험하게 보이지만 기다려주기만 하면 잘 올라간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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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바위절벽으로 되어있다. 군데군데 쇠줄을 걸었고, 발판과 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어른들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보조 장비들은 애들이 올라가기에는 버겁게 보인다. "그래도 이런 산행을 언제 해보겠니? 천천히만 가면 걱정 없어"

애들은 쇠줄을 잡고 바위를 오른다. 위험하게 보이지만 어른들보다 덜 위험하다. 몸이 가볍고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스스로 잘 올라간다. 그렇게 한참을 바위와 씨름을 하다 1봉 정상에 선다. "야! 경치 죽인다."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작은 섬들이 아름답게 떠있다.

1봉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1봉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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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봉을 올라가는 등산객 행렬
 2봉을 올라가는 등산객 행렬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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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마다 넘어가는 기분이 다르다

바람에 세차게 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바람을 피해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맞은편 2봉으로 올라가는 난간에는 산행객들이 줄지어 서있다. 저 봉우리를 어떻게 올라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애들은 신이 났다. 아마 1봉을 오르면서 자신감이 생겼는가 보다.

애들은 봉우리 하나하나 올라설 때마다 재미있어 한다. 봉우리 표지석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고, 이름을 확인하는 즐거움. 힘들어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빨리 안온다고 재촉한다. 맞은 편 봉우리 중간쯤에서 얼른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올라가야 할 봉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만 하는지?

봉우리 마다 이름을 새겨보며 사진을 찍는 즐거움
 봉우리 마다 이름을 새겨보며 사진을 찍는 즐거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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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봉인 두류봉 올라가는 길.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6봉인 두류봉 올라가는 길.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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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어린이다. 어려서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다려주면 알아서 오르고 내려간다. 재촉하지만 않으면...
 세림이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어린이다. 어려서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다려주면 알아서 오르고 내려간다. 재촉하지만 않으면...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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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봉을 넘고, 3봉을 넘어 차근차근 봉우리를 넘어간다. 6봉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봉우리 이름도 두류봉이다. 안내판에는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드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천국에 오르는 길이라니 기분이 무척 좋다. "이 길로 다시 내려와요?" "올라가기는 해도 어떻게 내려가겠니?"

7봉을 넘고 마지막 8봉에 올라서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애들과 함께한 산행이라 서서히 왔는지 산에는 우리만 있는 것 같다. 그 많던 등산객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바로 아래로 해창만간척지에 논들이 물을 가득 담고서 반짝거리고 있다.

다시 능가사까지 돌아가려면 3.2㎞를 내려가야 한다. 산은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오기가 힘이 든다더니…. 지루하게 산길을 돌아서 내려간다.

팔영산 동동주 한 병 사고 저녁은 벌교 꼬막 정식으로

주차장 맞은편으로 작은 가게가 있다. 가게 앞에는 <팔영산 동동주>를 내 놓고 있다. 이 술은 어디서 만드냐고 생뚱맞게 물었더니,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는 바로 냉장고에서 한 병을 꺼내더니 밀봉을 하고 있다. "이 술이 동동주여.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으면 5일은 먹어. 아주 좋아. 온 사람들마다 좋다고 한 병씩 사가."

동동주 한 병 사서 가게를 나온다. 아쉬운 듯 팔영산을 다시 보니 여덟 봉우리가 아득하게 보인다. 산 봉우리에 구름이 걸렸다. 신선이 내려오고 있는지….

가게 앞에 놓인 팔영산 동동주. 병이 무척 크다. 용량은 2ℓ. 가격은 한병에 4천원.
 가게 앞에 놓인 팔영산 동동주. 병이 무척 크다. 용량은 2ℓ. 가격은 한병에 4천원.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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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고막정식에 나오는 회무침. 찾아간 식당은 1인분에 12,000원.
 벌교 고막정식에 나오는 회무침. 찾아간 식당은 1인분에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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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벌교 꼬막 정식 어때?" "꼬막 정식집도 하도 많아서…." 벌교 읍내는 식당마다 원조를 자랑하며, 간판에는 방송에 출연했음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읍사무소로 전화를 했다. "읍내에 제일 유명한 꼬막 정식 집이 어디예요?"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다.

물어서 찾아간 식당은 개업한 지 3년 정도 됐단다. 그럼 원조는 아니겠네? 여관을 개조한 식당은 방마다 나누어져 있어 가족끼리 먹기는 좋다. 삶은 꼬막, 꼬막전, 꼬막 무침까지…. 애들도 잘 먹는다. 꼬막 무침은 남아서 포장해 달랬더니 플라스틱 용기에 깨끗하게 싸준다. 무척 친절하다. 얼른 집에 가서 꼬막 무침에 동동주 맛을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애들과 산행을 할 때는 애들이 올라가는 속도에 맞춰서 가야 애들도 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산행길 : 능가사(주차장)-(10분)-삼거리(회귀점)-(1시간20분/2.7㎞)-유영봉(1봉)-(1시간)-두류봉(6봉)-(50분)-적취봉(8봉)-(1시간20분/3.2㎞)-삼거리-(10분)-능가사(주차장)
총산행시간 : 4시간 50분(보통 4시간 이내 소요되나 애들과 함께 하여 서서히 다녀왔음)



태그:#팔영산, #고흥, #능가사, #암벽, #고막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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