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아지는 날때부터 안좋았다

제 힘으로 젖을 빨지 못했다

사람에 의지해 보름을 넘겼지만

수액도 맞아가며 영양제도 맞았지만

몸은 갈수록 허약해졌다

기적처럼 몇번의 기를 쓰고 벌떡 일어나

젖을 빨더니 얼마후 죽어버렸다

생은 가혹하다

어미는 제 새끼를 그리 오래 찿지 않았다

밤나무 아래 묻어주고

쪼그려 담배피우며 올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시작노트]

소를 키운지 십년이 됐다. 그동안 송아지를 여러마리 묻어주었다. 보통 열마리면 한 두 마리 실패하는 게 보통이라며 그동안 하느라고 했지만 배냇병신은 어쩔 수 없었다. 일년 평균 삼십여마리를 낳으니 실패할 확률도 높다. 그러나 생명을 키우는 농부로서 송아지의 폐사만큼은 막고 싶다.

 

요즘 다시 읽은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에서 주인공 윤두섭 노인의  막내는 천치끼가 있는 아들인데 아버지의 사랑이 각별하다. 읽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그 막내아들의 버벅이는 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노인은 저게 언제 사람구실을 할까, 고 한 번도 생각치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떤 송아지는 치료하면서 차라리 빨리 죽어버렸으면 바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막상 숨이 질 때까지 옆에서 지키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사람구실을 했던가 반성하면서. 사랑은 사람을 변모시킨다는 말을 믿는다.


태그:#시, #현대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