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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게 놀고 있는 세 살배기 쌍둥이 윤우·준우
 사이좋게 놀고 있는 세 살배기 쌍둥이 윤우·준우
ⓒ 황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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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요일이다. 저녁 6시에 아내가 황급히 문밖으로 나섰다. 7시부터 시작하는 기독청년아카데미 <신약성서의 맥>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집에 남은 사람은? 나와 민우·윤우·준우, 남자 4명이 반갑게 배웅한다. 민우는 다섯 살, 윤우·준우는 세 살배기 아기다. (윤우, 준우는 07년생 쌍둥이다.) 당연히 어른은 나 혼자다. 이제부터는 전쟁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마을학교에서 집으로 온 아이들은 목욕부터 한다. 아이들은 마을학교에서 실내보다 주로 밖에서 논다. 마당에서 온갖 흙장난을 하거나 '작은 숲속'이나 놀이터에 산책을 다녀오는데 온몸은 흙·먼지투성이다. 큰 대야와 기다란 아기용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옷 3벌과 목욕가운 2개를 준비한다. 세 명이 위아래 한 벌씩 갈아입을 옷과 둥이들이 욕실 밖으로 나올 때 추위에서 보호하기 위해 입는 목욕 가운 두 벌이다.

형은 대야에, 둥이들은 아기용 욕조에 나란히 들어간다. 목욕을 하기 보다는 물장난하기에 바쁘다. 보통 장난은 컵으로 아빠에게 물 뿌리기다. 물을 뿌릴 때마다 놀란 표정으로 호응을 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반으로 사그라진다. 이 와중에도 컵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지 놓치지 않고 살펴야 한다. 둥이들은 비누거품과 흙으로 범벅된 물을 종종 식수처럼 마시기 때문이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서 나오면 빨리 옷을 입혀야 한다. 여름이지만 목욕 후에 밖은 아기들에게는 쌀쌀하다. 그러나 옷 입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들은 어느새 저멀리 도망간다. 겨우 잡아 옷을 입히려 해도 싫다고 떼쓰기 일쑤다. 그래서 윗도리만 입히고는 다른 녀석을 입히게 된다. 기저귀를 채우고 아랫도리를 입히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다. 이 시간동안 온방을 상의만 걸치고 돌아다닌다.

다음은 즐거운 식사시간. 서로 싸우거나 넘어져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눈치 보면서 밥상을 차린다. 상을 차릴 때 밥과 반찬을 고르게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뿐 아니라 크기도 고려해야 한다. 작은 것 여러 개 있는 것보다 큰 것 한두 개에 더 욕심을 부릴 때가 많다. 형님이 식사를 다할 때까지도 둥이들은 식사보다는 놀이에 보통 관심이 많다. 밥과 반찬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숟가락을 엉덩이에 숨기기, 반찬을 손으로 으깨기, 밥상 주위를 돌아다니기 등. 늘 밥과 반찬으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낸다.

그래도 먹여야 한다. 식사할 때  당혹스러운 건 밥을 먹다 졸면서 자는 것이다. 보통 입 안에 음식을 물고 잘 때가 많다. 유독 민우가 음식을 입에 물고 잠들 때가 많다. 입에 있는 음식을 손가락으로 긁어내어 빼내고 재우는 수밖에 없다. 남들은 깨워서 양치질도 해준다는데 아직 이러기에는 내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 사실 일찍 잠들어서 행복한 감정에 음흉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다 먹이고 나면 밥을 먹었는지 밥을 바닥에 뿌렸는지 구분이 안 된다. 그 위를 이 녀석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방바닥과 둥이들 발바닥은 납작해진 밥과 반찬으로 끈적끈적하다.

이제 잠자기 전까지는 놀이 시간이다. 블럭이나 자동차 등 장난감이 여러 개 있지만 장난감을 그대로 가지고 노는 것은 드물다. 그때그때 아이들은 놀이를 창조해 낸다. 베란다 유리에 박치기하기, 커튼 뒤에 숨기, 숟가락으로 식탁 다리 치기, 불투명 베란다 유리를 긁어서 소리내기, 오디오 버튼 마구 누르기, 술래잡기 놀이 등. 중요한 건 둥이들이 꼭 하나를 가지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운다. (이 시간에 민우는 늘 피해자다. 먼저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책은 늘 둥이들의 표적이 된다.)

평상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잘 가지고 놀지 않았어도 한 명이 가지고 놀면 꼭 그것 가지고 싸운다. 이때 순발력을 발휘해서 대체품을 찾아주지 않는다면 울음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있어야 한다. 서로 깨물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얼굴을 물게 되면 상처가 깊게, 오래도록 남게 된다. 이 시간은 체력을 많이 써야한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사고치는 것을 따라다니면서 수습하고 유치찬란한 표정과 행동으로 놀아주면 금세 지치게 된다. 최근 시작한 새벽운동이 체력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자, 이제 잘 시간이다. 이불을 깔아놓고 이불속에 숨어서 "까꿍"하면서 이불로 끌어들여 놀게 한다. 안방 이불 위에서 놀기 시작하면 반은 성공이다. 이제 이불에 숨기놀이와 슈퍼맨 놀이로 분위기를 만들면 된다. 컵 세 개로 마실 물을 준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의 잘 즈음에는 꼭 물을 찾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는 불을 끄고 아이들에게 뽀뽀와 인사를 건넨 후 내가 먼저 누워서 자는 척 하는 것이다. 우리집은 자기 전에 자장가나 옛날이야기가 없다. 불 끄고 내가 먼저 자는 시늉을 하면 구더기가 땅 위에서 꾸물거리듯이 아이들은 누워서 꼬물꼬물 하다가 잠든다. 종종 양팔로 둥이들 한 명씩 팔베개를 해주기도 한다. 그러면 팔을 베고 잠든다. 세 명을 업어주거나 토닥토닥 손으로 두드려주거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를 아는지 뒹굴다 자는 데 익숙하다. 낭패를 볼 때는 자는 척하다가 내가 먼저 잠드는 것이다. 밤 11시가 넘어서 들어온 아내가 청소를 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전쟁터 상황으로 아침을 맞게 된다.

이렇게 수요일 밤이 지나간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밤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행복했다면 아이들이 나중에 이렇게 떠올리지 않을까? '수요일은 밤이 좋아!' 아내가 왔다. 난 오늘의 무용담을 아내에게 조잘대면서 잠이 든다. 다음 주 수요일은 어떨까? 아마 색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태그:#아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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