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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살면서 7월 말이나 8월 초에 여름 휴가를 가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 팥소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 기간에 맞춰 친구,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산으로 바다로 향한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가니 어디를 가건 사람이 가득하여 휴가를 보내는 건지 스트레스를 받으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가지만 어쩔 수 없이 그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성 휴가조차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바로 이주 노동자들이다.

 

지난 기사(이주여성들, 영어강사로 나서다)를 쓰기 위해 강화도 캠프를 다녀온 지 3일만에 가족들과 함께 한 수련회를 따라 나섰다. 지난 8월 1일부터 1박 2일간 인천 용유도에서 수원 이주민 센터(SMC)가 주최한 "다문화 가정 및 이주 노동자와 함께 떠나는 수련회"가 그 곳이다.

 

"이런 센터 덕분에 한국에서의 여름 휴가라는 것을 즐겨 볼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그냥 기숙사에서 TV를 보거나 시내를 돌아다니는 정도겠죠."

수련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베트남 총각의 말이다.

 

시원하게 달린 고속도로를 지나 용유도에 가까워지니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2차선 도로를 꽉 메운 휴가차량을 보며 조금 서글퍼지려고까지 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모두 바닷가로 향했다.

 

 

"동남아에서 온 친구들 대부분이 바다를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매년 산이 아닌 바닷가로 수련회 장소를 정합니다."

 

이주민 센터 활동가인 남경호 대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미처 썰물 시간대를 확인하지 못한 탓에 넘실대고 있어야 할 바닷물이 빠져 족히 1km는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머뭇거림도 잠시, 몇몇은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고 많은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구공 하나 달랑 들고 갯벌로 뛰어든다.

 

갯벌 축구!

 

 

저녁식사는 흡사 국제 요리 경연대회를 방불케 했다. 이주민 센터에서 준비해온 각국 음식 재료를 가지고 국가별 테이블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 마치 동남아 어느 야시장에 온 것 같다. 이들에게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는 한국말 대신에 자기나라 말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이 그리 흥에 겨울 수가 없다. 오랜만에 자기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파티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같았다.

 

 

함께 마련한 식사를 하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자기나라 말로 건배를 외친다. 그 동안 힘겹게 공장에서 일하느라 쌓였던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가려는 듯 건배 외침은 커져만 갔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OX퀴즈 및 장기자랑을 하는데 이들 실력이 장난 아니다. 이런 캠프에 처음 와본 기자는 마치 설날이나 추석에 TV 단골 메뉴인 외국인 장기자랑을 현장에서 보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도자기 체험시간을 가졌다. 모두 진지하게 도자기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반죽을 하고 그릇을 만들어 보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태국 총각은 그릇 대신에 정체불명의 동물을 만들었다.

 

"이거 구워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 드릴 거예요. 헤헤헤."

 

 

도자기 체험이 끝나고 나가본 바닷가는 어제보다 더 물이 빠져 있었다. 아쉽긴 했지만 물놀이 대신에 아이들과 함께 조개 몇 마리를 잡아 들고 왔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올해의 여름 수련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수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갈 때 잠깐 얘기를 나눴던 베트남 총각이 옆에 앉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전자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꼬박 12시간 일을 하죠. 힘들긴 하지만 열심히 돈을 벌고 돌아가 한국과 무역하는 회사를 차리는 게 꿈입니다. 그때까지 돈도 많이 벌고 한국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강하게 그리고 한국에서의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태그:#다문화 가정, #여름수련회,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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