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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면 지동리에 위치한 무수촌 된장마을은 옥천전씨 종가 옆에 자리를 잡고 있어, 간혹 방문하는 손님들이 종가로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수촌에서는 100% 영주지역의 콩으로 가내 수공업적 형태로 된장을 만들고 있다. 전작으로 수확한 콩 중에서도 제일 알찬 녀석들만 골라 메주를 쑤고 있다. 순수한 국산 콩을 잘 선택한다는 것은 좋은 된장 만들기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연간 100~130가마 정도의 콩을 옛날 가마솥에 부어 장작불로 달구고 달구어 충분히 삶는다. 콩을 삶을 때 쓰이는 물은 주민들도 함께 마시는 1급 자연수이기에 된장 맛이 한결 좋아진다. 삶은 콩은 일일이 손으로 메주를 만들어 황토방에서 2~3개월 말리고 띄워 정월에 된장을 담근다.
      
무수촌 된장마을
▲ 영주시 무수촌 된장마을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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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된장을 담는 용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천연 황토옹기를 쓰고 있으며, 메주의 좋은 성분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1년 이상 자연 숙성시킨다. 아울러 각종 화학용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제품은 '무수촌(無愁村)'이라는 이름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 식초 등을 생산하여 주로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 방송과 신문 등에 자주 등장한 관계로 아주 유명한 집이다.

충청도에서 시집온 주인 박인숙씨는 오랫동안 가구판매업을 하다가 시댁이 있는 지동리로 귀향하여 지역 할머니들의 도움으로 된장공장을 이끌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 주지 스님의 권유로 된장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는 박인숙씨는 가구판매업을 하면서도 콩을 너무 좋아해 언젠가 기회가 되면 콩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법주사와 무수촌 인근의 흑석사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된장이 승승장구하며 팔려나가 스스로 끼가 있음을 깨닫고 본격적인 사업으로 전환하여 1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같이 간 일행들은 전부 된장에 청국장, 간장을 사들고 나왔다. 넓은 대지에 한옥을 적절하게 이용한 공장의 전경과 수백 개에 이르는 된장독, 연못, 장승, 석물 등이 사진을 찍기에 너무 좋은 그림이 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TV출연이 잦은가 보다.

된장을 사서 나오는데, 박인숙 촌장은 "요즘 큰 걱정이 하나 있다. 인근에 영주댐이 생기면 기후 변화가 분명한데, 일조량과 강우량 등이 바뀌어 좋은 콩을 구하는 일과 된장의 발효 등에 문제가 생겨 터를 옮기거나 인위적으로 된장을 발효 건조시키는 기계를 들여야 될지도 몰라 잠이 오지 않는다."라며 영주댐 건설에 대한 입장을 조심스럽게 전하기도 했다. 
                  
무섬마을에서 본 무지개, 어제도 선비촌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 영주시 무섬마을에서 본 무지개, 어제도 선비촌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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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공장을 둘러본 다음, 일행은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문수면 무섬마을로 향했다. 안동의 하회, 예천의 회룡포처럼 무섬마을도 강물이 마을을 감싸는 마을이다. 우리말 '물섬'에서 연유되었고, 한자 지명은 수도리(水島里)를 그대로 쓰고 있다.
    
풍수학적으로도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핀 형세, 물 위에 연꽃이 뜬 형세라고 하여 기운이 좋은 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섬마을은 뒷산이 태백산 끝자락과 소백산 끝자락이 만나 이루어졌고, 앞쪽은 태백산 물과 소백산 물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마을의 대부분 가옥은 ㅁ자형이며, 까치구멍집이라 불리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경상도 북부지역에 분포하는 산간벽촌의 주택 형태다. 까치구멍집이라 함은, 부엌 연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붕마루 양단의 하부에 만든 까치구멍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섬마을의 만죽재
▲ 영주시 무섬마을의 만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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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부 높은 곳에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 '만죽재(晩竹齋)'가 있다. 반남(潘南) 박씨들이 난을 피해 안동에서 영주로 옮겨왔고, 반남 박씨의 박수(朴 檖 : 1641∼1729)가 이곳 무섬에 터를 잡았다. 이후 선성 김씨(예안 김씨)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무섬은 지금까지도 이 두 가문의 집성촌이다.

만죽재가 지어진 것은 1666년(현종7)으로, 원래 70여 칸 규모의 한옥으로 건축되었지만 겸양과 청빈의 의미로 '섬계초당(剡溪草堂)'이라고 초가의 이름을 쓰다가 박수의 8대손이 중수하며 당호도 바꾼 것이라 한다.

본채 우측 언덕 위에 2년 전에 복원된 서당이 하나 있는데 최근 입향조 박수의 뜻을 이어받는다의 의미에서 서당에 섬계초당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또한 만죽재는 한 번도 양자를 들이지 않고 13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무섬마을헌장, 일체의 상업적인 행위를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무섬에는 가게도 식당도 매점도 자판기도 없다. 그 흔한 홍보용 홈페이지도 없다
▲ 영주시 무섬마을헌장, 일체의 상업적인 행위를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무섬에는 가게도 식당도 매점도 자판기도 없다. 그 흔한 홍보용 홈페이지도 없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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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만죽재 앞에 있는 선성 김씨 집안의 고택에 '섬계고택'이라는 당호가 걸려있다. 분명 만죽재가 섬계초당을 이어받은 고택이고, 최근 서당에 섬계초당의 현판을 단 시점에서 김씨 집안에서 섬계고택의 당호를 쓰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만죽재의 주손 가운데 차남이나 삼남이 만죽재를 이어받지 못하여 주손에게 양해를 구하고 섬계고택이라는 당호를 쓰는 것은 온당한 일이지만, 단순히 섬계가 무섬의 옛 이름이라는 이유로 김씨 집안에서 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시 만죽재 앞에 위치한 선성 김씨들의 대종가인 무송헌(撫松軒) 종택의 경우에도 영주시내 구성산성 옆에 살다가 문수면 적동리로 다시 대구로 이주하여 살던 종손이 단순히 문중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무섬에 들어왔지만, 작년 영주시의 노력으로 선성 김씨들의 대종가인 삼판서고택이 영주시 서천 변에 복원된 관계로 이제는 그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영주시에서도 선성 김씨인 김주영 영주시장이 현직에 있고, 삼판서고택도 비어있는 관계로 고택의 관리와 유지는 물론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고택의 정취와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종손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국가의 돈으로 지은 고택에 일개 집안의 종손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택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수리, 보수, 유지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섬마을의 해우당 고택
▲ 영주시 무섬마을의 해우당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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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있는 해우당(海愚堂) 고택은 1879년(고종16)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락풍(金樂豊 1825~1900)이 1875년(고종12)에 건립한 것이다. 무섬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으로서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이다.

앞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사랑과 아랫사랑을 두었는데, 특히 우측의 큰사랑은 지반을 높여 원주에 난간을 돌려 정자처럼 누마루를 꾸몄다. 이 누마루에 '해우당'이라고 쓴 흥성대원군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아쉽게도 빈집이라 마당 한 켠에는 채전이 만들어져 있다.
               
무섬마을의 까치구멍집, 환기를 위해 까치구멍을 닮은 구멍을 만들었다
▲ 영주시 무섬마을의 까치구멍집, 환기를 위해 까치구멍을 닮은 구멍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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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에는 대표적인 이 두 건물을 포함하여 김덕진 가옥, 김뢰진 가옥 등 4채가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무섬에서 <별리>라는 시를 쓴 시인 조지훈의 처가로 잘 알려진 김뢰진 가옥은 찾는 사람이 많다.

마을 둘러 본 다음 강가로 나오면 낮게 흐르는 강물 위로 수도교가 정면으로 보이고, 강 건너의 낮은 산턱도 보인다. 1983년에 세워졌다는 수도교는 전통적 마을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다소 육중하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뒤편에 무섬교가 새롭게 생긴 관계로 수도교의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이 수도교가 생기기 전까지는 마을에서 놓은 3개의 섶다리만이 뭍과의 유일한 통로였다. 상여도 가마도 이 섶다리를 통해 들어오고 나갔다.
         
무섬마을의 수도교, 마을의 정면에 있고 경관을 해친다고 철거하자는 여론이 있다.
▲ 영주시 무섬마을의 수도교, 마을의 정면에 있고 경관을 해친다고 철거하자는 여론이 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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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에 있던 다리는 영주로 장을 보러 갈 때, 가운데 것은 아이들이 학교 갈 때, 하류에 있던 것은 농사지으러 갈 때 건너던 다리다.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고 한다. 가을 마다 복원행사를 가지는 외나무다리로, 30년 전 방식 그대로 통나무를 자르고 이어서 다리를 만든다.
          
무섬을 지나는 내성천, 가을이면 이곳에 나무다리가 놓인다.
▲ 영주시 무섬을 지나는 내성천, 가을이면 이곳에 나무다리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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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으로 선정된 이 외나무다리는, 영주시에서도 '무섬 외나무다리 축제' 를 통하여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일행들도 아름다운 길을 걷기 위해 마을을 거닐다, 흐르는 냇물을 보면서 강 언덕을 걸어본다.


태그:#영주시 , #무수촌된장마을 , #무섬마을, #만죽재, #해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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