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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서 동해구가 있는 문무대왕릉(대왕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나섰다. 요즘은 답사길도 역사적 사실과 연계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 탐방코스로 많이들 이용하는 곳이다.  

 

명활산성

 

경주시가 요즘 주변 수목을 제거하는 등 정비를 많이 하고 있는 사적 제47호로 지정된 명활산성을 찾았다. 도로변에 이정표도 잘 설치되어 있다. 신라시대 산성으로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구가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진흥왕 때를 전후한 시기에 돌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활산성작성비로 보아 축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월성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던 소지왕 때 임시 궁궐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진흥왕 때에 다시 쌓았고, 선덕여왕 때 상대등 비담과 염종 등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 장군이 평정한 곳으로 알려져 요즘 비담이 나오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관련해서도 찾는 답사객들이 많이 늘어났다. 일부 구간이 복원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는 없어 아쉬움이 남는 장소이다.

 

골굴사

 

옛 길인 추령재를 지나면 이제 차량들의 통행량도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 되어 주변 경치도 감상하면서 가기에 알맞은 곳이다. 특히 다가오는 가을에는 단풍이 그리 아름다운 곳인데 마니아들은 알고 있어 찾아 오고픈 길로 꼽히는 곳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어느듯 가을의 하늘처럼 높은 구름만 떠 있다.

 

 천년고찰 기림사로 들어가는 길목 입구 쪽에 한국의 석굴사원으로 알려진 골굴사가 있는데 이 곳은 선무도로 이제 더 알려진 곳이다.

 

 사찰에서 마련된 프로그램들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은 물론 선무도를 배우려는 참가들들이 년중 찾는 곳이다.

 

기림사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기림사는 요즘 많이 달렸다. 입구에 새로운 안내문이 설치되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있던 2층 범종루가 없어져 공간이 많이 넓어졌다. 

 

 신라 때 인도 승려인 광유가 창건하고 당시 임정사라고 했다고 하며 이후 원효가 중창한 뒤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하는 고찰이다.

 

 삼국유사에 신문왕이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에서신문왕이 귀환하는 도중 기림사 서쪽에서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 운동이 있던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대찰이었다. 유물전시관에는 보물 415호인 건칠보살좌상을 비롯하여, 대적광전, 소조비로자나 삼존불, 삼층석탑, 약사전, 목탑터, 김시습의 사당인 매월당사 등이 남아 있다.

 

특히 8월 20일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불과 협시 보살인 보현, 보살, 문수보살 등 삼존불의 점안 및 친견 법회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약사불의 협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아직 대부분 서적에는 그렇게 설명한 곳이 더 많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후기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복원을 새로 하려고 하던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채색 목심소조불로 밝혀지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된 그 불상이다. 새로이 완전 개금되어 옛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거대한 삼층석탑이 있는 감은사지

 

경주에서 잘 알려진 사찰터 중에 감은사지가 있다. 동해 바닷가와 접하고 있어 피서철인 여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자 년중 답사코스이다.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이 완성했으며, 금당의 기단 아래에 구멍을 두어 이 곳으로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다녔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호국사찰로 은혜에 감사 한다는 것인데 즉 충효가 가장 중요시 된 곳이다.

 

1960년과 1979년~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부분들이 확인되었으며, 동서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는 쌍탑이 있는데 삼국 통일후 보이는 쌍탑 가람으로 최초의 배치이다.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여러 차례 해체 복원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탑 속에서 나온 사리함과 장엄구들은 그 조각수법이 이주 우수하고 정교하여 주목되었다.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늘 많은 곳이다.

 

이견대

 

감은사지와 연계되는 필수코스가 문무대왕릉과 이견대이다. 신라 제30대 문무왕릉(대왕암)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로 이 곳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것은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때 건물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다. 주변에는 고유섭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있고 자연산 횟집들이 많아 주변 경관과 함께 그 깊은 동해 바다의 회 맛도 보고 가는 코스이다. 신라의 동해구로 가는 코스로 한번 떠나보는 길도 여름철이 다가는 이때 바다 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곳도 이색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태그:#명활산성, #기림사, #이견대, #감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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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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