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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들이 가을 소풍을 가는 날입니다.
 

예전 같으면 소풍가기 전날 김밥을 싸달라거나 김밥집에 미리 전화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궁금한 아내가 물었습니다.

 

"내일 소풍 가는데 김밥 안 싸갈 거니?"

"올해는 김밥 싸갈 필요 없어요 모두 사먹는데요."

"아니 어디로 가는데?"

" 극장이요…."

"아니, 뭐라구? 극장이라고?"

"예, 올해는 각 반마다 회의를 통해서 소풍을 갈 곳을 정하기로 했는데 다수의 학생들이 영화를 보는 것을 원해 그렇게 결정했어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극장으로 소풍 가는 것은 심했다."

"뭐 어때요 다수가 원하면 따라야지요."

"그 영화를 본 학생들은 어떡하고."

"어쩌겠어요. 또 봐야지요."

 

그리고 오늘 아침 10시에 아들을 영화관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극장 앞에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볼 영화는 이병헌의 할리우드 출연작이라는 <지.아이.조-전쟁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웃으며 이야기 합니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네… 영화관으로 소풍을 가다니…."

"그게 뭔 소풍이야. 소풍이 소풍다워야 소풍이지…."

 

내가 투덜거리자 아내도 그건 그래 합니다.

 

 

일년에 두 번 가는 소풍에 대한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도 제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40년 전 국민학교 소풍갈 때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김밥과 사이다 한 병. 열심히 뛰느라 김밥 옆구리가 터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처럼 맛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장기자랑과 보물찾기를 하며 즐기던 일. 그리고 8km가 넘는 곳으로 소풍을 갔다 지름길로 돌아간다며 산을 넘다 길을 잃고 헤맨 일. 그리고 그곳에서 따먹던 머루와 다래 맛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또 한번은 소풍 가는 날이면 늘 따라오던 아이스께끼 아저씨가 언덕을 오르다 중심을 잃고 자전거가 넘어지는 바람에 아이스께끼가 길바닥에 쏟아져 그것을 주워 먹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아이스께끼는 포장이 되지 않아서 통 밖으로 쏟아진 아이스께끼는 팔 수가 없었지요. 아스팔트에 쏟아진 아이스께끼의 맛. 모래가 씹히긴 했어도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인근의 솔밭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교생이 교련복을 입고 행군을 하듯 떠난 가을 소풍에서 기타를 치며 춤을 추던 친구들의 모습도 새록새록 합니다. 몇몇 친구녀석들은 물병에 소주를 넣어와 마시다 취해 골아떨어진 녀석들 때문에 선생님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학교생활의 피로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학급구성원간의 친목을 다지는 소풍의 모습도 세월이 흐르면서 참 많이 변했습니다. 소풍으로 여행을 떠나는 학교도 있고 아예 소풍 대신 체육대회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아들이 영화관으로 소풍을 떠난 이유 중에는 신종 플루에 대한 걱정도 작용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전교생이 인근 공원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신종플루 감염위험이 있는 소풍과 체험학습을 교외 활동을 줄이고 반마다 회의를 통해서 소풍을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신종플루가 소풍의 풍속도마저 바꾸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한 하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신종플루, #가을소풍, #소풍, #아이스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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