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9월 3일 저녁 7시 '2009 서울 민주시민아카데미' 제2강을 개최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올바른 사회읽기'라는 기획으로 이 날은 '건축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문화·예술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강사로 나선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가을이 성큼 다가온 이 날 강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강의를 미리 준비하는 모습에서 건축의 거장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강의 전반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축 이야기, 후반부는 승효상 건축의 개념을 가지고 몇 개의 작업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바벨탑, 탑(스투파) 등의 고대 높은 건물들은 각기의 이익 관계가 다른 이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가장 단순한 지휘 계통이 필수 불가결했으며, 강력한 위계를 구성하는 중심축이 긴요했다고 한다. 이 중심 부분의 확보 여부가 주공간과 부공간이 되고, 그런 곳이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다. 이 위계 공간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기독교문명을 바탕으로 서양의 건축과 도시를 이루는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기술적 응용으로 만들어진 소위 마스터플랜이라는 것이다. 이 마스터플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는 부분만으로는 그 존재가치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해 모로코의 도시 페즈는 이러한 도시와 전혀 다르다. 페즈라는 도시는 미로 같은 도로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향을 잘 알 수 있게 만드는 중심축이라든가 스스로의 위상을 찾게 만드는 위계적 공간이라든가 하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가 없다. 이 도시를 만든 이들은 이슬람 교도들이며, 신과 교도는 일대 일의 관계이며 그들 시민끼리는 서로 평등하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공간이 있다. 달동네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달동네 골목 어귀는 소통의 장이며, 마을회관이며, 아이들의 앞마당이 되기도 한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그는 좋은 건축이란 어떻게 지어야 하나에 대한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첫 번째 합목적성에 대한 문제이다. 학교는 학교 같아야 하고, 집은 집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대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이다. 건축을 가리켜 시대의 거울이라고 일컫는 만큼 건축을 통하여 우리는 그 건축이 지어졌던 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축과 장소의 관계이다. 건축은 반드시 땅 위에 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이 건축을 다른 조형예술과 구분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당연히 미국과 한국의 집은 달라야 하며, 서울과 부산의 집은 다른 형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도시설계는 서로 지역 특색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집은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영항을 주기 때문에 공공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승효상 건축의 특징이라고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강사는 오래 전 문민정부 시절에 중앙총독부였던 국립중앙박물관을 광복절 기념식에 맞추어 해체 한 일, 광화문 광장의 광장으로서의 기능 등을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것은 시간에 따라 건축이 바뀌더라도 수 많은 세월 동안 그 장소에 새겨졌던 삶에 대한 기억을 유지시켜 다음 세대에 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신념을 마지막 메시지로 전하며 강의는 끝났다.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문의: 02-3709-7623)

2009서울민주시민아카데미

1. 입학식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 2. 제2강 - 건축과 기억(승효상 건축가) 3. 제3강 -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4. 제4강 - 민주화 30년, 그 역정(김정남, 전 청와대 교문사회수석비서관) 5. 제5강 - 다산사상에 나타난 실용주의(박석무, 한국고전변역원장) 6. 제6강 -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묻는다(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7. 제7강 - 새로운 시민사회운동(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8. 제8강 - 한국정치와 토론문화(정관용, 시사평론가) 9. 제9강 - 세계화 시대, 한국경제 위기극복의 길(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10. 졸업여행 - 새로운 상상력인 고대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