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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성폭행한 경우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S(29)씨는 지난해 8월31일 오전 8시경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A(59)씨의 집에 침입해 10만원을 훔친 뒤,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인기척에 깨어난 A씨를 흉기로 위협해 반항을 억압한 다음 강간했다.

 

그런데 A씨는 1974년 성전환수술을 받은 후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등 30년 넘게 여성으로 살아왔으나,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지 않아 호적에는 남성으로 돼 있었다.

 

이에 검찰은 당초 S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주거침입강제추행죄로 기소했으나, 이후 재판부와 협의해 공소사실을 주거침입강간죄로 변경했다.

 

1심인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아 고종주 부장판사)는 지난 2월 호적상 남자인 A씨를 강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S씨에 대해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흉기로 위협해 변태스러운 방법으로 피해자를 강간한 것에서 보듯이 초범의 범행으로 믿기 어려운 악성과 죄질이 엿보인다"며 "피해자의 나이가 피고인의 어머니 나이와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죄질이 좋지 않아 범행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구금 중 8회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으며, 피고인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관용을 호소하고 있고, 특히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젊은 피고인의 앞날을 위해 부디 선처해 달라고 간청하는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트랜스젠더 호적 안 바꿨어도 여성

 

이번 사건의 핵심은 호적상 남성인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 대해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1974년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의 외부성기와 신체 외관을 갖췄고, 이후 30년 넘게 여성으로서 살아오면서 과거 10년간 남성과 동거하며 성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나 사회생활에도 자타가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피고인도 범행 당시 직접 피해자의 성기를 확인한 다음 범행을 저지른 이상 피해자가 강간죄의 객체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부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객체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정에 불과한 것일 뿐, 피해자의 성별을 여성으로 봄에 의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따라서 피고인에 의해 피해자의 권리가 침탈당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피해자는 호적상 남자지만 1974년 병원에서 성전환증 확진을 받고 나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성으로 살아온 만큼, 호적은 성별정정 대상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피해자를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로 인정함에 장애가 안 된다"며 "나아가 성별을 정정하는 것은 피해자가 여성임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조처에 불과할 뿐 성별정정으로 피해자의 성별이 비로소 여성으로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전환자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경우 호적의 정정 여부를 확인하기보다는 피해자가 성전환자로서 공인된 절차를 거쳐 성전환수술을 받고 상당기간을 여성으로 살아왔는지, 보통의 여성과 다름없이 남성과 성행위가 가능한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함에 문제가 될 만한 장애사유가 없는지, 범인의 성기가 삽입되는 등의 명백한 성적 침탈행위가 있었는가 등이 더 중요한 확인사항"이라고 강조했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주거침입강간죄 인정

 

항소심인 부산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민중기 부장판사)도 지난 4월 S씨의 주거침입강간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절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흉기로 위협해 강간 범행까지 저질러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한 점 등에 비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트랜스젠더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S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강간죄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법리 오해의 위법이 없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성전환, #트랜스젠더, #강간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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