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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하차'에 '기여'한 나의 미안함...

 

월요일(12일) 아침에서야 김제동씨의 KBS 2TV <스타골든벨> 하차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순간 머릿속이 멍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공개적인 눈물을 흘리고, 용기 있게 "쌍용을 잊지 맙시다"란 글을 남기고, 100분 토론에 출연해 '사이버 모욕죄'에 반대하는 등 소신 행보를 해온 그. 역시나 '그들'은 그가 괘씸했겠지요. 진작부터 이렇게 날려버리고 싶었겠지요.

 

김제동씨의 하차에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겁니다. 그런데 아마도 저는 조금 더, 놀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하차'에 저도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는 미안함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지난 8월 김제동씨가 본인의 트위터에 "쌍용을 잊지 맙시다"란 글을 올린 '사건'은 수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그 사건을 최초로 취재 보도한 매체가 바로 <오마이뉴스>였단 걸. 그리고 하필(?), 그 기사를 작성한 게 저였습니다.

 

 

물론 사건 발굴의 큰 역할은 <오마이뉴스>에서 맡았고 저는 그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는 단순한 역할만을 맡았었습니다. 취재에 기여한 바가 적었음에도 어쨌든 기사는 저의 이름을 내걸고 나갔습니다. 기사 조회수는 폭발적이었고 다른 매체들에서 거의 흡사하게 받아 적는 게 보였습니다. 기분, 당연히 좋았습니다! 보도내용도 얼마나 좋습니까,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기사를 작성한 이후, 마음 한편엔 늘 김제동씨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발언'이었고 따라서 그의 책임이겠지만, 제가 그 말을 확대재생산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워낙 '수상한 시절'이니만큼 제 기사가 결국 그에게 미칠 악영향이 걱정됐던 거지요.

 

그러던 중 운 좋게도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 8일 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마들연구소가 주최한 그의 강연회(장소: 서울시 노원구 북부고용지원센터)가 열렸던 거지요. 전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편지를 써내려갔습니다. 미안함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지를 고이 접어 선물로 준비한 책 속에 끼워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강연. '사람이 사람에게'란 주제로 2시간이 넘게 진행된 강연은 그야말로 웃음이 빵빵 터졌답니다. 쉴 틈 없는 웃음 릴레이 속에는 그의 웃음철학과 날카로운 정치풍자, 소신행동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겨있었습니다. 그의 유쾌한 명강에 300여 명의 청중들은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

 

환호에 보답하듯 그는 강연이 끝난 후 연단으로 몰려온 청중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개인적인 질문들에도 친절히 답해주더군요. 저도 그 틈을 타 그에게 선물과 편지를 건넸습니다. "고맙습니다"며 고개를 깍듯이 숙이는 '국민MC' 앞에서 저도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란 말을 읊조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에 대한 미안함을 덜 수 있었다며 좋아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그가 '해코지'를 당했군요. 고로 저의 미안함은 끝끝내 풀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젠 '그가 혹여 해를 당하진 않을까'란 조심스럽고 수동적인 태도보다는, '그에게 해를 가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겠다'며 눈에 불을 켠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김제동의 웃음철학이 담긴 강연회

 

사실 김제동씨의 강연을 바로 기사화하고 싶었답니다. 녹음도 하고, 강연 내용도 받아 적고, 사진도 찍어놓고, 기사의 틀도 짜두었지요. 하지만 전 강연회 기사를 써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빵빵 터지던 웃음바다의 분위기를 오롯이 글로 담아낼 수도 없었거니와, (저의 과민한 걱정일지라도) '트위터 기사'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염려하는 소극적 태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겠구나 싶습니다. 강연회에서 있었던 그의 발언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마이크] "깨어있는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그는 "마이크를 잡고 자기 의견을 잘 개진할 수 없으면 속상한 시대가 되었다"며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전수했습니다. 그는 "마이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소리칠 수 있는 이 시대의 갈대밭"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크는 일부 권력,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항상 힘 있는 자들이 들고 있었죠.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제 깨어있는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마이크입니다."

 

이어서 그는 "마이크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시작된다"며 마이크를 켜고 끄는 법, 잡는 법, 발언 시 자세 등 '정석'을 알려줬습니다. 그는 물론 '정석'의 변형도 가능하다면서도 "정석을 알고 변형을 주는 것과 정석을 모르고 변형으로만 가는 것은 다르다"며 기똥찬 예를 듭니다.

 

"물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고 정비하는 것과 물이 소중한 건지 모르고 정비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태의 본질을 알고 치수를 하는 것과 본질을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지요."

 

그렇다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그는 "손석희 선배도 아니고 호동이 형도 아니고 재석이 형도 아니다. 바로 이장님"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장님은 주민들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주민들 눈높이에 맞춰 말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모습이 "가장 훌륭한 위정자이자 사회자"라고 말했습니다. 

 

[상식]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강의 중 여러 차례 상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저는 독재도 모르고 반독재도 모르고 뭐도 모른다. 상식, 상식밖에 모른다"며 "상식대로 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상식이란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라 "빨간불일 때 건너지 말고, 사람을 때리지 말고, 누가 죽었으면 최대한 예의를 표하고, 누가 힘이 없다면 도와주는 것 등"이라며 "먹고 살기 힘들어서 들고 일어난 것은 폭동이 아니라 절규"라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덧붙입니다.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을 줘 꾸준히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입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상식대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한편 그는 "사실 상식적이지 않은 게 가장 웃기다"며 "그래서 요즘 웃을 일이 얼마나 많냐"며 현 사회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유머] "웃기는 데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그는 "'말'이란 영혼을 옮기는 수레, '대화'란 서로의 영혼을 교감하는 것"이라면서 대화 중 가장 좋은 것이 '유머'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웃기고 싶다는 것은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나를 인정해달라'는 표시입니다. 누가 나를 보고 웃어주는 건 '나는 너를 인정해주고 있다. 좋아해주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웃음은 중요합니다."

 

이렇듯 그에게 '웃음'이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거"였습니다. 그는 "사람을 웃기는 기술은 없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면서 "(웃음엔) 어떠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나는 어떤 정치적 색깔도 없다. 웃기는 데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새도 좌우 날개로 날아야 한다.", "저는 못 배워서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뭔지 모른다. 다만 상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그는 "웃지 않는 사회는 반드시 병들고 무너지게 돼 있다. 유머는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이라면서 "제도권, 기득권, 격식이 무너질 때 유머가 발생한다. 틀을 깨는 것이 유머의 출발점이다. 거창한 정치적인 혁명 모르지만, 웃음이 우리 생활의 혁명이다"라며 웃음의 가치를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고민] "내가 더 이상 서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

 

강연 말미에 그는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어도 되나"란 고민이 들 때가 있다며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과거에 철거민인 동시에 철거용역이었다고 합니다. 도로가 들어서며 가족과 살던 집이 철거대상이 됐고, 돈을 벌기 위해 직접 철거 및 도로공사에 참여했던 힘든 과거를 말해줍니다. 

 

"서민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기를 얻고 돈을 벌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더 이상 서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란 괴리가 커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렇다면 돌려드리자'며 기부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돈이든 마음이든 넘쳐서 제 스스로 그 안에 침몰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대한 처음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힘내라, 김제동!

 

한편 강연회에 김제동씨를 초청했던 노회찬 대표는 지난 10일 트위터에 "김제동 퇴출은  있을 수 없는 정치보복",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헌법적 폭거"라며 "참을 수 없습니다. 결연히 함께 싸우겠습니다. 힘내라, 김제동"이란 말을 남겼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국민MC'에게 편지를 쓰고자 합니다. 저도 노 대표와 같은 말을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힘내라, 김제동!"

 

다음은 김제동씨가 강연을 마무리하며 한 말입니다.

 

"길가에 핀 꽃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울 수 없듯이 우리도 지금 흔들리고 힘들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맞잡은 손만으로 아름다운 세상, 웃음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저도 여러분도 함께 노력합시다."

 

김제동씨, 지금 당신은 흔들리고 힘들 수도 있지만 함께 맞잡을 손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당신도 우리도 함께 노력합시다.


태그:#김제동, #마들연구소,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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