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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24시간> 겉표지
ⓒ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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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아동유괴'라는 범죄는 대략 이렇게 전개된다. 아이를 납치하고 부모에게 전화한다. 필요한 돈의 액수를 말하고, 언제 어떻게 돈을 전달 받을지 전한다. 경찰에게 연락하면 아이 목숨은 없다는 협박도 빠지지 않는다.

현대에 와서 이런 식의 유괴는 거의 성공하기 힘들다. 부모와 통화하는 사이에 첨단장비로 무장한 경찰들에게 꼬리를 밟히기 쉬운 데다가, 돈을 받는 장소에서 경찰이 덮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괴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범인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유괴해서 돈을 받아내는 일이, 은행을 털거나 사기를 치는 것보다 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유괴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이의 부모가 무슨 일이 있어도 경찰에 연락하지 못하게 해야하고, 도중에 경찰이 냄새를 맡아서는 안된다. 돈을 받은 이후에도 그 부모가 신고를 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돈을 받고 나서 무사히 아이를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수법을 벗어난 유괴

이런 식의 '완전유괴'가 가능할까? 그렉 아일즈의 2000년 작품 <24시간>에서 그런 유괴가 펼쳐진다. 범인들은 주범 한 명과 공범 두 명. 이들의 작전은 꽤나 치밀하다. 우선 돈 많고 아이는 하나뿐인 집을 노린다. 사전에 그 집 가족들의 스케줄을 상세하게 파악해둔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지방출장 등으로 며칠간 집을 비울 때를 노린다. 작전이 시작되면 공범 한 명은 아이를 납치해서 비밀 은신처로 향한다. 주범은 집에 혼자 있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직접 찾아가서 말한다. 내가 아이를 납치했다, 지금부터 내가 명령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아이는 죽는다. 대충 이렇게 협박한다.

비슷한 시간에 지방에 있는 아버지에게 다른 공범이 접근한다. 장소는 호텔 방이 적당하다. 역시 아이가 납치되었으니 협조하라는 식의 말을 전한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30분에 한 번씩 범인들은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한 번이라도 연락이 안되면 가족들이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아이를 죽인다.

그 시간동안 범인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러니 가족들은 경찰에 연락할 수도 없고, 섣부른 행동을 취할 수도 없다. 물론 경찰이 냄새를 맡을 일도 없다. 필요한 돈이 마련되면 아버지와 공범은 함께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돈을 찾는다.

그 공범이 돈을 들고 떠나면 주범과 다른 공범은 각각 어머니, 아이를 데리고 특정 장소에 모인다. 그곳에서 어머니와 아이를 풀어주고 돈을 나누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떠난다. 그 전에 다른 협박을 잊지 않는다. 이후에라도 신고하면 언제든 돌아와서 아이를 죽이겠다고.

피해자 가족들은 분통이 터지겠지만, 어쨋든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고 범인에게 건네준 액수도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큰 돈이 아니다. 괜히 신고했다가 보복을 당하느니 꾹 참고 남은 인생을 사는 쪽을 택한다.

빼앗긴 아이를 어떻게 무사히 되찾을까

<24시간>의 납치범들은 이런 식으로 그동안 다섯 번이나 유괴를 해봤지만 한 번도 착오가 없었다. 그리고 아이도 무사했다. 다섯 번째 납치로부터 1년 뒤, 그들은 또다른 대상을 노린다. 저명한 의학박사인 윌 제닝스 집이 그 대상이다.

윌은 미시시피 의사협회에서 주최하는 학회에서 발표를 하기위해 며칠간 집을 비운다. 집에는 아내 카렌과 5살된 딸 애비 뿐이다. 카렌과 애비가 윌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애비는 납치당해서 공범 한 명과 함께 숲의 통나무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주범은 카렌에게 접근해서 그동안 반복해왔던 말을 늘어놓는다. 패닉상태에 빠진 것도 잠시, 카렌은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범인의 말을 따른다.

같은 시각에 윌의 호텔 방에도 다른 공범이 찾아와서 유괴사건을 대략 간추려서 얘기해준다. 윌은 혼란과 분노 속에서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한다. 범인들이 제시한 액수는 20만 달러. 윌의 연수입은 대략 40만 달러이니 요구액이 무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은 주범과 함께 있는 카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조금씩 저항하며 범인들의 빈틈을 노린다. 그 안에서 애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FBI 수사관도 유괴범의 수법에 감탄한다. 30분 간격의 전화확인이 뚫을 수 없는 그물 역할을 하고, 고전적인 유괴 수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범인 측의 위험이 일소되었다는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계획이라도 사소한 일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 윌과 카렌의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많은 돈을 벌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윌에게 돈은 일종의 방어막 같은 것이었다. 돈은 일상의 각종 문제로부터 자신과 가정을 보호해준다.

하지만 그 방어막도 유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렸다. 범인들의 계획도 그렇다. 겉으로는 빈틈없는 그물망이지만 사소한 진동이 쌓이다보면 결국 그물도 못쓰게 될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완벽한 작전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유괴라는 범죄는 어떻게 머리를 굴리건 성공하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 <24시간> 그렉 아일즈 지음 / 강대은 옮김. 시작 펴냄.



24시간

그렉 아일즈 지음, 강대은 옮김, 시작(2009)


태그:#24시간, #그렉 아일즈, #유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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