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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본감사 첫날 요구한 자료와 면담 요구서의 첫 장. 첫날에만 A4 용지 5장 분량이었고, 26일동안 계속된 본감사 시간동안 이 자료만 A4 용지로 102장이었다.
▲ 감사원 감사자료 요구 목록 감사원 본감사 첫날 요구한 자료와 면담 요구서의 첫 장. 첫날에만 A4 용지 5장 분량이었고, 26일동안 계속된 본감사 시간동안 이 자료만 A4 용지로 102장이었다.
ⓒ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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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3개 시민단체에서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해야 한다며 국민감사 청구 엿새 만인 2008년 5월 21일에 열린 감사원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에서 '감사실시' 결정을 내렸다. '부실 경영'과 '인사권 남용'이 주된 감사 실시 이유였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감사원의 왜곡과 거짓, 심사위원회 회의장의 '동물농장' 같은 풍경에 대해서는 지난 몇 주 동안 자세하게 증언한 바 있다.

그렇게 감사실시 결정을 내린 지 닷새 뒤에 예비감사가 시작되었다. 사회복지감사국 정00 과장 외 8명, 특별조사본부 송00 감사관 외 3명 등 모두 13명이 5월 26일 선발대로 KBS에 진군했다. 요구하는 자료와 범위에서 과거 감사 때와는 전혀 다른 강도가 느껴진다는 것이 이들과 접해본 KBS 직원들의 이야기였다.

감사원 감사팀, 점령군처럼 KBS에 진군

특히 특별조사본부는 처음부터 경영진의 비리 캐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경영진 법인카드 집행 내역 일체, 사장의 재산 신고 내역, 임직원 법인카드 발급 내역, 관용차 운행 일지, 임원 자택에 지급된 자산 목록과 관용 차량 교체 현황, 외주 제작 계약 현황 등 처음부터 비리 캐기에 바로 몰입하는 모양새였다.

예비감사는 5월 26일부터 6월 5일까지 계속되었으며, 본감사는 6월 11일부터 시작되었다. 사회복지감사국 김00 국장을 비롯한 29명의 감사원 직원들이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실을 점령한 채 본감사에 들어갔다. 이날부터 한달 동안 이 감사장에 수많은 KBS 직원들이 수시로 불려 다녔다.

<증언13>에서 밝혔다시피 KBS 감사단은 KBS 일반 업무를 감사하는 사회복지감사국 소속팀과, 사장의 비리를 캐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조사본부('특조') 등 두 개로 구성되었다. '특조' 팀이 1주일 정도만 털면 정연주도 손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감사가 시작되자 마자 첫날부터 엄청난 자료와 관련 직원 면담 요구가 있었다. 자료 요구 대상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지가 확연하게 보였다. 가장 집중적으로 심하게 파고 든 영역 가운데 하나는 대하 드라마와 드라마 제작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 전북 부안의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증언 13> 참조)뿐 아니라 경북 문경에 들어 선 <대왕세종> 세트장 건설 경위, 그 때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후속 대하드라마 <천추태후> 선정과 제작 관련 등 대하 드라마와 관련하여 온갖 자료 요구와 관련자 면담 요구가 쏟아져 들어왔다. 말이 '면담 요구'지, 실제로는 '소환'이었다.

대하 드라마뿐이 아니었다. 외주제작사에서 제작한 드라마 전반에 걸쳐 전면적인 감사가 시작되었다. KBS에서 방영된 대하 드라마와 외주제작 드라마 대부분이 완전 알몸 신세가 되었다. 

초반부터 KBS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KBS 드라마 <대왕세종>
 KBS 드라마 <대왕세종>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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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출자와 드라마 팀장, 그리고 드라마 제작과 관련된 직원들이 수시로 불려 다니면서 이만저만 곤욕을 치른 게 아니었다. 드라마 연출자뿐 아니라 대하 드라마 오픈세트장이 설립된 부안군청, 문경시청 관계자들까지도 출장 조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증언13>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감사원이 어떤 자료를 요청했는지, 어떤 직원과의 면담 요청이 있었는지, 그 내용을 요약한 '감사원 감사 요구 자료'가 다음날 아침이면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본감사 첫날인 6월 11일자 '감사원 감사 요구자료(1일차)'에는 대하 드라마와 외주제작사에서 제작한 드라마 전반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자료와 관련자 면담 요구가 있었다.

* 감사관 김00 요구;
- 문경 세트장 관련철
- <대왕세종> 후속드라마 <천추태후> 관련 자료
- <대왕세종> 2008년 예산편성 내역 및 집행 내역
- 부안 영상테마파크 추진배경
- KBS 종합촬영장 건립계획(안) 관련 자료

* 감사관 성00 요구;
- 2006년부터 지금까지 드라마 외주 계약서 사본(원 계약서와 별도 계약서 사본/ 수입 배분 내역 포함)
- 드라마 기획운영 위원회 회의록

* 감사관 정00 요구;
- <한성별곡> 프로그램 제작기획서, 외주계약서, 기본제작비 책정서 등 제작관련 서류 일체
- <한성별곡> <엄마가 뿔났다> 제작기획에서 방송까지 업무 흐름 관련
- <엄마가 뿔났다> 추가제작비 책정 경위 및 산정 근거

* 감사관 천00 요구;
- <엄마가 뿔났다> 제작비 산정 근거, 추가 제작비 지급 근거 서류
- <엄마가  뿔났다> 프로그램 제작 기획서, 외주계약서, 기본제작비 책정서 등 제작관련 서류 일체
- 외주제작 가이드 라인
- <대왕세종>의 채널 변경 품의서
- <엄마가 뿔났다> 방송시간 변경 품위 문서(60분에서 70분 연장)'
- <엄마가 뿔났다> 제작 경위, 제작비 책정 및 추가 제작비 지급 경위
- <엄마가 뿔났다> 제작기획에서 방송까지 업무 흐름

본감사 첫날 드라마와 관련된 자료와 면담 요구만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대하 드라마 제작과 세트장 건립, 그리고 드라마 제작 전반과 관련하여 정연주 사장의 개입이 있었고, 이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비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집중적으로 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설령 정연주 개인의 비리가 나오지 않더라도 드라마 팀의 비리가 나온다면 그것으로도 정연주 사장 퇴진을 위한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보았을 터이다.

감사원과 국세청, 같은 시기에 공동작전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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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뿐 아니라 국세청도 똑같은 접근을 했다. 국세청도 감사원 본감사 실시와 거의 비슷한 시기인 6월 초부터 KBS에 드라마와 일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공급하던 외주독립제작사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에는 한류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겨울연가' 제작사를 포함하여 7개 외주사가 호되게 세무조사를 받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매출액도 연 몇 십 억원에 지나지 않는 고만고만한 영세업자들이다. 거기에 세무조사의 칼을 들이대고 나서 몇 억원의 세금 추징을 하면 살아남을 외주사가 없을 정도다. 그 영세한 외주사들에게 국세청은 무서운 칼을 휘둘러댔다. 그들 눈에는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외주독립 제작사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나 때문에 호되게 세무조사를 당한 이들 외주사들에 대해 얼마나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단지 정연주가 KBS 사장으로 재임했던 시절에 KBS에 좋은 프로그램,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공급했다는 바로 그것이 '죄'가 되어 호된 세무조사를 받았고, 그래서 심지어 존립이 위태로워진 회사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후에 따로 증언할 예정이다).

감사원 본감사 이틀째인 6월 12일에도 대하드라마와 드라마 제작 전반에 대한 집중 감사는 계속되었다.

* 감사관 이00 요구;
- <며느리 전성시대> 제작비 자료, <불멸의 이순신> 제작 예산 관련 자료.

* 감사관 김00 요구;
- <대왕세종> 문경세트장 협상 과정
- <대왕세종> 문경세트장 유지보수 공사금액 집행현황 등
- 문경오픈 세트장 유지/보수 공사 내역표
- <대왕세종> 문경세트장 공사금액 총괄표
- 문경세트장 조감도
- <대왕세종> 촬영지로 부안영상테마파크로 결정하기 위한 노력
- 드라마 세트제작시 컴퓨터 그래픽 활용정도 등
- <대왕세종> 세트장 위치 결정 관련
- <대왕세종> 세트장 위치 결정 관련 콘텐츠 전략팀 보고 내용

* 감사관 정00 요구;
- '05년 외주드라마 언론보도 관련 특별감사철(00프로덕션 금품수수 관련)
- '05년 외주드라마 언론보도 관련 특별감사 드라마 1팀 조치결과 문서
- 후속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기획제작 보고 문서
-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외주제작 계약 문서
-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연장계약 내부결재 문서
- <대조영> 제작관련 서류철
- 드라마 외주계약 현황 및 계약서 사본 각 1부
- 드라마 기획운영위원회 규정(시행세칙 포함)

* 감사관 천00 요구;
- 외주제작팀 외주계약 현황(06-08년)
- <엄마가 뿔났다> 외주제작 진행관련철
- <부모님전 상서> <엄마가 뿔났다> 예산 검토 내역
- <대왕세종> 관련철
- <대왕세종> 채널 이동 배경
- <엄마가 뿔났다> 방송시간 변경 배경

* 감사관 조00 요구;
- <불멸의 이순신> 부안 오픈세트장 관련 서류 일체(기획, 부지 선정, 협약서, 편제회의 등 일체)
- 부안 영상테마파크 관련.

<불멸의 이순신> 집중타의 핵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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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감사 사흘 째를 비롯하여 그 뒤에도 이런 양상은 계속되었다. <불멸의 이순신> 오픈 세트장을 비롯한 대하 드라마 세트장 건립 문제, 드라마 제작 전반에 대한 자료 요구와 관련자 소환은 계속 이어졌다. 대하드라마에서 등장한 선박의 제작과 관련하여 계약, 지출증빙 등 서류철 일체를 요구하기도 했고, 드라마 <해신> <인순이는 예쁘다> <서울 1945년> <소문난 칠공주>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한 여자> 등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는 죄다 손을 댔다.

특히 본감사 사흘째인 6월 13일, <불멸의 이순신>에 대해 집중적으로 칼을 들이댔다. 감사관 박00은 <불멸의 이순신> 부안 오픈세트장 미술비 및 제작지원금 산출 자료 일체, 노량해전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영상 및 특수효과 계약관련 사항 일체, <불멸의 이순신> 부안 오픈세트장 제작지원금, 공사비, 수익금 배분 관련 사항 일체, 전북 부안군에서 지원받은 제작지원금의 사용 용도와 수익금 배분, 공사비 중복 여부 등 관련 사항과 관련하여 담당자와 면담 요청, <불멸의 이순신> 설계 내역서, 부안 오픈세트장 계약 내역서 등을 요구했다.

같은 날, 조00 감사원은 <불멸의 이순신> 부안 오픈세트장 부지 선정, <불멸의 이순신> 프로그램 기획안, 편성제작회의 관련 서류 일체 등을 요구했다. <불멸의 이순신>은 말 그대로 발가벗겨지고 있었다.

<증언 13>에서 감사원이 왜 그렇게 <불멸의 이순신>의 부안 오픈세트장 건립에 몰두했는지를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감사원은 전북 부안이 고향인 나의 아내와 <불멸의 이순신>의 부안 세트장 건립이 연관이 있으며, 그 세트장 건립 지역에 부동산 투기를 했을 것이라는, "혹하게 잘 만들어진" 자료를 가지고 본감사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니 <불멸의 이순신>을 본감사 초장부터 세차게 몰아세웠다. 자료요청의 범위와 강도를 보면 정연주 사장의 개입과 비리에 대해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드라마 팀장과 연출자 등 KBS 관련 직원들이 감사원 직원에게 드라마 세트장 결정뿐 아니라 드라마 제작과 관련하여서는 드라마 연출자와 드라마 팀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수 없이 설명을 해도 이를 제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KBS 조직 문화의 변화, 팀제 도입 이후 자율성의 확대, 그런 것에 대해 무지했으며, 그런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관료적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고, 그래서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할 뿐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태그:#정연주, #감사원,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대왕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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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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