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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보험회사들의 화두는 재무설계였다. 기존 보험설계와 차별화 하기 위해 기존의 보험설계사 조직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명함에 FP(financial planner), FC(financial consultant) 등의 명칭을 사용하며 재무설계를 표방해왔다.

설계사를 채용할 때에도 이 일은 단순한 보험세일즈가 아니라 인생 전반의 재무적 문제를 해결하는 재무설계사라면서 전문가로서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렇게 해서 보험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은 재무전문가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기존 보험설계사들과는 다른 콘셉트로 일을 해왔다. 고객들 역시 인생 전반의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설계사들을 이전의 설계사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이들에게 보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무적인 조언을 구했다.

재무상담 상담인 줄 알았더니 보험상담

그러나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받은 상담이 오히려 재무적인 위험을 더 키우는 사례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결혼자금 준비가 시급한 30대 미혼남성에게 고령화사회에서는 노후자금으로 수억원의 돈이 필요하다면서 100만원짜리 변액보험을 가입시키는가하면 당장 먹고살기가 빠듯해 저축 한 푼 못 하는 가장에게 위험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30만원짜리 종신보험을 가입시킨다.

두 사람의 결과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변액보험을 가입한 사람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변액보험이 부담스러워졌으나 그동안 불입한 수백만원의 돈이 아까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 결혼자금을 모으지 못 해서 결혼을 나중으로 미루거나 빚을 내서 해야할 판이다. 마찬가지로 종신보험을 가입한 사람도 점점 빚이 늘어나고 있다.

재무상담이 재무적인 위험을 키우는 원인은 재무설계사를 교육하는 보험회사를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보험회사는 보험을 많이 판매해야 한다. 재무상담 그 자체로는 보험회사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험회사에서 만든 재무설계 프로그램을 보면 고객의 재무적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은 늘 보험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라 보험 판매를 늘리기 위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설계된 생애 필요자금이나 노후자금이 수억원 이상 필요하다는 각종 통계자료나 그래프를 보면 고객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불안감과 공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고객은 무리해서라도 보험에 가입하거나 반대로 아예 자포자기 하게 된다.

재무상담이 고객의 눈높이에서 고객을 위해서 이뤄지지 않고 보험 판매를 위한 상담이 되다보니 재무설계를 바라보는 고객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어느덧 고객들에게는 '재무설계 = 보험판매'라는 이상한 등식이 성립되어 버렸다. 많은 고객들이 재무설계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엉터리 상담을 한 설계사를 원망한다. 간절한 마음에 재무설계를 받았더니 그 상담으로 인해 자신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더 꼬여버리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객과 설계사에게 이중으로 착취하는 보험사

많은 고객들이 엉터리 재무설계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지만 단순히 설계사를 탓할 문제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1차적인 피해자는 고객이 아니라 설계사이기 때문이다. 재무전문가로서 비전을 바라보고 들어간 보험회사이지만 회사 내부에서부터 전문가로서 대우가 전혀 없다.

기존의 보험설계사 조직과는 다른 전문가 조직을 만들었다지만 애초부터 보험사에서 원하던 것은 상담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라 판매에 대한 전문성이다. 판매 실적에 의해 모든 것을 평가받고 급여 역시 실적에 의해서 받다보니 설계사는 늘 실적에 대한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고객들이 재무상담을 통해 더 많은 보험료의 납입을 권유받는 것처럼 설계사 역시 더 많은 실적을 강요받다 보니 결국엔 자신의 계약으로 실적을 채운다. 어느덧 재무설계사라는 직업은 보험 가입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가 됐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객이 보험을 가입했다가 해약을 하면 불입한 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보험회사의 영업비용이나 설계사의 수당 등으로 지급된 사업비를 공제한 해약환급금을 고객에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계사 역시 받은 수당을 모두 환수 당한다. 한마디로 보험사는 고객이 해약을 하는 순간 고객에게는 납입보험료를 돌려주지 않고 설계사에게는 지급한 수당을 다시 받아오는 이중청구로 인해 이익이 확정된다.

더구나 설계사는 해약하는 고객이 늘어나 고객들의 보험 유지율이 낮아지면 이후에 다른 보험 계약을 하더라도 지급받는 수당이 줄어든다. 보험회사들이 유지율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설계사들에 대해서 수수료 지급율을 낮추는 패널티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수당구조로 인해서 일부 설계사들은 유지율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빚까지 끌어다가 고객들의 보험료를 대신 내주기도 한다.

설계사가 중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그동안 계약을 했던 고객들에 대한 유지수수료 또한 없다. 하지만 고객이 해약을 하게 되면 보증보험을 통해서 환수금액은 고스란히 설계사가 떠앉도록 한다. 부실계약으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더라도  부실한 교육과 관리의 책임이 있는 보험사는 쏙 빠지고 설계사한테 책임을 지게 한다.

한마디로 보험회사는 고객과 설계사 사이에서 위험은 모두 설계사한테 떠넘기고 이득은 빠짐없이 챙긴다. 어느덧 설계사는 고객에게도 보험사에게도 욕 먹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동시에 재무설계를 표방한 보험사로 인해 고객의 재무구조도 설계사의 재무구조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환상만 심어주고 무능을 키우는 보험사

지금 이순간에도 보험회사들은 고객들의 노후를 걱정하는 듯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뒤로는 설계사들에게 재무설계의 가치나 필요성을 역설하기보다는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만을 심어주고 있다. 재무설계만 하면 억대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그것이 재무설계사가 전문직이고 유망한 직종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작 전문직이고 유망한 재무설계사가 일하는 회사 내부에서는 진정성을 가지고 고객을 상담한 설계사보다는 고액계약을 한 설계사가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한 달에 200만원 버는 사람에게 100만원짜리 변액보험 계약을 한 것을 우수사례라고 소개하기까지 한다.

어떤 식으로 계약을 했건 무조건 많이만 하면 우수설계사라고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호텔에서 하는 호화스런 시상식에도 참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환경에 놓여있다 보면 아무리 건전한 의식과 진정성을 가지고 재무설계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첫 마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열심히 고객을 향한 진정성을 가지고 뛰어다녀봤자 회사에서는 계약이 없으면 무능한 사람 취급을 당할 뿐이다.

보험상품판매를 핵심사업으로 하고 있는 보험회사의 근원적인 한계다. 이런 보험회사의 속사정을 알고도 보험회사에 자신의 소중한 돈과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돈 벌이에 눈이 멀어 하는 보험업이 아니라 광고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보험업을 하고 있다면 고객도 설계사도 힘들게 하는 재무설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현실을 냉정히 살펴보자. 이미 고객들은 보험회사에서 하는 재무상담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종호 기자는 경제교육전문업체 에듀머니 본부장입니다.



태그:#재무설계, #재무설계사, #재무상담, #보험사, #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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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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