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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연휴에 대구나 포항으로 여행을 가자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도동서원이었다. 하여 지난달 28일, 도동서원을 찾았다. 전날 대구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달성군 구지면에 있는 도동서원을 조망하기 위해 다람재 정상에 다다랐을 때에는 온통 안개로 휩싸여 동양화 같다는 도동서원 전경을 아쉽게도 볼 수가 없었다.

도동서원의 중정당과 사당은 간결하고 단정한 맞배지붕이다.
 도동서원의 중정당과 사당은 간결하고 단정한 맞배지붕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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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려왔을 때 우리를 맞은  것은 김굉필 나무로 이름 붙여진 400년 된 은행나무였다. 겨울이라 삭막할 것으로 짐작했던 서원은 잔디와 은행 낙엽으로 을씨년스럽지 않았고 밖에서 본 서원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면서도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산자락에 위치한 서원은 땅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고 경사면을 살려 지었고 수월루, 중정당, 사당을 중심축으로 해서 계단식 흙담장으로 포근히 둘러싸여있다. 기슭에 만들었기 때문에 계단과 축대는 필수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와 유사한 지형조건의 도산서원이 빈틈없이 잘 가꿔진 궁궐 같다면 도동서원은 좀 투박하면서도 은근히 정이 가는 반가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동방5현으로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꼽는데 김종직과 김굉필, 정여창이 사제지간이고 조광조는 김굉필의 문하에 들었다. 이언적을 기리는 옥산서원이 1574년 사액받았고 이황을 모시는 도산서원은 1575년 사액받았다. 반면 김굉필을 모신 서원은 지금 위치가 아닌 현풍면에 1573년 쌍계서원으로 서로 비슷한 시기에 사액되었다가 1597년 왜란으로 전소되었다. 이후 현재의 위치에 중건되어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된 것이다.

옥산서원이나 도산서원은 창건 당시 지방관청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하는데, 왜란으로 전소되어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쌍계서원도 규모면에서 대단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입의 수월루는 나중에 지어져서 중정당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을 가로막고 있다하나 수월루에 앉아서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와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와 굳이 조망의 이·불리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커다랗고 화려해서 자칫 본연의 강학공간을 위축시키거나 다른 건물과 생길 수 있는 부조화를, 뒤쪽에 배치된 환주문과 중정각 지붕을 개방되어 있는 2층 누각을 통해 끌어들여 해소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누각을 가지고 있는 다른 서원들보다 오히려 덜 답답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받는다.

누각 안에서 보면 여유롭게 늙은 은행나무와 낙동강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누각 안에서 보면 여유롭게 늙은 은행나무와 낙동강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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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방이 개방된 누각은 뒤쪽 환주문과 중정당 지붕을 끌어들여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그러나 사방이 개방된 누각은 뒤쪽 환주문과 중정당 지붕을 끌어들여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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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각을 지나 환주문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다. 계단석은 계획되지 않은 것처럼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폭이 맞다. 소맷돌도 꽃모양 조각을 해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긴돌, 짧은 돌로 이루어져 격식에 구애 받지않고 여유있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가파른 계단보다는 계단참을 둔 좀 더 완만한 계단을 두는 것이 궁합이 맞았을 것 같다.(수월루는 서원이 만들어지고 난 한참 후인 1855년에 지어졌으니 수월루 때문에 경사가 급해진 것은 아니다.) 

높이가 낮은 환주문은 머리 다칠까봐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눈이 가는 곳에는 문지방이 없고 꽃모양의 돌부리가 있어 문지방 역할을 하니 격식과 파격의 변화무쌍함에 마음을 추스르기 난감하다.

환주문의 지붕은 정자에서나 쓸법한 사모지붕이다. 키가 낮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라치면 문지방에 꽃모양을 한 돌부리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꽃모양 문지방이라니...  선비 버선코에 꽃자수가 들어간 걸 본 적 있는가?
▲ 수월루에서 본 환주문과 정중당. 환주문의 지붕은 정자에서나 쓸법한 사모지붕이다. 키가 낮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라치면 문지방에 꽃모양을 한 돌부리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꽃모양 문지방이라니... 선비 버선코에 꽃자수가 들어간 걸 본 적 있는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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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단은 무척 가파르다.  오른쪽 하단 소맷돌에도 꽃무늬를 새겨놓았다.
▲ 환주문 그러나 계단은 무척 가파르다. 오른쪽 하단 소맷돌에도 꽃무늬를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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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가로질러 강당인 중정당으로 간다. 도동서원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답사지로 선정했었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기단에는 시각장애인이 만져만 봐도 흥미로울 구조물이 많이 있다. 정말 17세기 초에 쌓았다면 엄청난 공사비가 들었을 완자쌓기 기단, 4개의 용머리 조각, 2개의 다람쥐와 꽃모양 부조 등은 '아름답다', '정겹다', '조상의 슬기에 미소 짓는다'라는 수식어는 여기서 딱이다.

기단에 새겨진 다람쥐, 꽃문양 부조. 다른 쪽에는 올라가는 다람쥐를 새겨놓아 대칭속에서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 서원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는 듯한 이런 석물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기단에 새겨진 다람쥐, 꽃문양 부조. 다른 쪽에는 올라가는 다람쥐를 새겨놓아 대칭속에서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 서원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는 듯한 이런 석물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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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卍)자쌓기 기단. 그 옛날에 이렇게 돌을 쌓았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다. 올라가는 모양의 다람쥐와 꽃부조가 보인다.
 완(卍)자쌓기 기단. 그 옛날에 이렇게 돌을 쌓았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다. 올라가는 모양의 다람쥐와 꽃부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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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당 대청마루에 있는 정료대(판석위에 등불이나 기름불을 올려놓고 주위를 밝히는 구조물)에서 뒤를 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좁은 환주문을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오면 마당을 가로질러 디딤돌이 중앙에 일직선으로 놓여있어 이곳이 예를 갖추기 위한 공간임을 대번에 눈치챌 수 있다. 더군다나 중정당 아래 얕은 기단 장대석에서는 용머리가 솟아나와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게 만드니 누구나 잠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환주문 돌부리에서부터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배치된 판석 그리고 정료대.   이런 낯익은 광경을 어디서 봤을까?
▲ 중정당 정료대에서 본 마당. 환주문 돌부리에서부터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배치된 판석 그리고 정료대. 이런 낯익은 광경을 어디서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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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아래에서 보자.  마당을 가로지른 판석을 따라오다 이런 용머리를 만나면 잠시 주춤거리고...
 자, 다시 아래에서 보자. 마당을 가로지른 판석을 따라오다 이런 용머리를 만나면 잠시 주춤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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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를 쳐다보자. 

가운데 中, 바를 正. 어떻게 해야할까?  옷깃을 여며야지!
 그리고 위를 쳐다보자. 가운데 中, 바를 正. 어떻게 해야할까? 옷깃을 여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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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정당 곁에는 생단이라는 판석이 있어 제수로 올릴 동물들을 검수하는 구조물까지 있고 그 아래에는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꽤 규모가 큰 전사청이 있으니 성리학의 대종으로써 김굉필이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 도동서원은 강학보다도 제례를 올리기 위한 목적이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註)

중정당 곁의 생단.  사당에 국한된 제례를 강학공간까지 확장 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중정당 곁의 생단. 사당에 국한된 제례를 강학공간까지 확장 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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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선운사, 개암사 대웅전 대들보나 추녀머리에는 용장식이 많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이곳에는 웬 용이 그리 많을까? 정중당 얕은 기단 중앙에 하나, 높은 기단에 넷.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끄트머리에 또 하나. 절이라면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을 뜻 한다 라면 간단할 텐데.

중정당을 중심으로 동재, 서재의 숙소와 장판각이 있으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장판각의 전면은 마치 장롱을 짜듯 문설주와 기둥이 제비초리맞춤으로 되어 있고 측면은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트러스트 구조(X자 모양 구조)로 되어 있어 상당히 단단하고 정성들여 지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장판각. 이런 트러스트 구조는 한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장판각. 이런 트러스트 구조는 한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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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장농을 짜듯
 마치 장농을 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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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은 수월루에 이르는 계단, 환주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정당으로 이끄는 판석,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연결하면 정중앙에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서원을 지을 때 엄숙한 의도가 있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계단을 만들 때 흙을 파고 잡석으로 돋워 하단부터 상단까지 삼각자처럼 똑 같은 경사각을 가져야 계단 아래에서 볼 때 숨을 죽이는 경건함을 강조할 수 있는데도 서툰 석공이 계단을 만든 것처럼 경사각도 일정치 않고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인 돌로 계단을 만들어 자칫 경직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이것도 의도된 것일까?

좀 더 경건하게 보일려면 곧바른 계단 경사, 동일한 모양과 크기의 계단석으로 쌓으면 효과적이었을텐데 이와같이 투박하고도 들쭉날쭉하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좀 더 경건하게 보일려면 곧바른 계단 경사, 동일한 모양과 크기의 계단석으로 쌓으면 효과적이었을텐데 이와같이 투박하고도 들쭉날쭉하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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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이런 각도에서보면 그렇게 널널한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또 이런 각도에서보면 그렇게 널널한 분위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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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은 자유분방 하면서도 그 속에는 쉽게 흐뜨러지지 않는 위계질서가 숨어있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둘러보는 우리에게 행간을 읽는 재미를 준다. 문중이나 김굉필을 흠모하는 사람들에게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짧은 관직생활과 유배생활 그리고 사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왜 없었겠나. 문중에 대한 자부심과 임금의 부르심에 대한 열망이 왜 없었겠나? 서원의 6마리 용은 그들의 이런 마음을 반영하듯, 오늘도 북쪽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註. <계림의 국토박물관 이야기>에서 도동서원 참조. 도동서원을 둘러보고 서원으로써 강학이라는 역할보다는 제향공간의 역할이 큰듯하여 자료를 찾던 중 <계림>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의 블로그에서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동서원, #김굉필, #수월루, #중정당, #달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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