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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아침이 밝아 오기 직전의 어스름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이를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해준다.

 

이런 감동적인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면 그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명현(12)이는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동생 수연(11)이와 명수(7)와 같이 매일 함께하는 등굣길이 마냥 좋다. 두 동생들도 명현이와 함께 걷는 등굣길이 신나기는 매한가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시골 삼남매의 새벽녘 등굣길은 명현이의 양손에 꼭 잡은 동생들의 손처럼 따뜻하다.

 

작년 겨울 청주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남면 신온리로 주거지를 옮긴 삼남매는 가정 형편 상 부득이하게 조부모와의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주춤한 것도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위해 외국으로 출국하면서 삼남매의 보육을 전담하게 된 아버지가 삼남매를 보살펴주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약 2년 만에 삼남매의 시골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삼남매가 청주에서 학교생활을 할 때는 집 근처에 학교가 위치해 있고,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운행하는 등 비교적 등교가 편해 새벽공기를 마셔본 기억은 없다.

 

반면 시골생활은 달랐다. 학교도 멀고 스쿨버스도 없었다. 등교를 위해서는 새벽 6시 즈음에 일어나야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할아버지 말로는 아빠도 산 넘고 물 건너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과에 맞춰 기상하기 때문에 여느 아이들과 달리 비교적 일찍 일어나는 삼남매지만 누구하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늑장을 부리는 일은 없다. 삼남매에게 학교는 지겹고 싫증나는 곳이 아닌 즐거운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삼남매는 학교에 오면 책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도 할 수 있어 좋단다. 특히 밴드부 활동은 청주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놀이다.

 

또, 청주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이 많았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이 방과후 각자 학원으로 향해 친해질 기회도 적었고 선생님의 관심도 지금 다니는 학교만큼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삼남매는 지금 다니는 삼성초등학교가 좋다. 비록 2년 전 명현이와 수연이가 1학기만을 다니고 청주로 전학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명현이와 수연이를 기억해주고 다들 금방 친구가 돼주었다.

 

삼남매의 아빠 강주호씨도 아이들이 걱정이 되지만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고 장남인 명현이가 동생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명현이를 가끔 야단치기도 하지만 사실 많이 의지하고 믿고 있다고 한다.

 

올해가 지나면 명현이가 중학교에 진학해 삼남매의 아날로그 등굣길에도 작은 변화가 생겨 둘째 수연과 막내 명수만이 등굣길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학년이 거듭할수록 이들 삼남매의 등굣길이 계속 변하겠지만 손을 맞잡고 처음 걸었던 등굣길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억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영원히 기억될 추억로드(road)가 되길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삼남매, #태안군, #태안, #등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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